평생 질리지 않고 한 게 뭐냐고 물으면 내 답은 독서와 글쓰기다. 보여주기 식의 프로필에 걸어둘 만 한 취미들이지만 진심이었다.
어린 날 학교 쉬는 시간이 끝난 줄도 모르고 독서에 골몰했던 시기가 있었다. 나의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들은 그런 나를 혼내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도 책을 붙들고 있던 걸 잘못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몇 페이지를 마저 읽게 격려해주었다. 교내 시화전에 내가 쓴 동시를 전시했던 때, 학교 정원 한가운데 깨끗한 액자 속에 든 내 글을 읽으며 나는 곰곰히 직감했다. 내가 원한 건 바로 이것이었다고.
나의 자랑, 나의 좌절
글을 곧잘 썼던 것 같다. 알림장에 짧은 글짓기를 숙제로 적어갈 때면 기분이 좋았다. 결코 짧지 않은 글을 지어내면서 내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갓 지어낸 쌀밥 같이 따끈하고 고운 글자들은 내 순수한 자랑이었다. 내 자랑은 고교 시절까지 이어졌다. 얼굴도 특별히 예쁠 것 없고 공부도 그냥저냥에 예체능엔 절망스러울 정도로 재능이 없는 나에게 글쓰기는 유일한 자랑이었다. 대학을 논술 우수생으로 붙었을 때는 내 글솜씨에 특별한 확신마저 들었다.
하지만 인생은 머잖아 어중간한 재능을 시험대에 올렸다. 대학에서 첫 학기 논술수업 때 잘 쓴 글에 도통 뽑히지 못했다. 끝내 C+로 그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세상엔 글 잘 쓰는 사람이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도 다름 아닌 ‘무수한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아프게 인정해야만 했다. 문단 호흡이 길고 평범한 단어만 사용하는 글줄로도 매력을 폴폴 풍기던,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친구에게, 또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에게 질투 어린 부러움을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게 전부였다. 누군가의 잘 갈무리된 글을 읽고 이게 좋니 저게 좋니 말하면서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고민하는 것.
나는 언제나 쓰고 있었네.
글쓰기를 좋아한 것 치고는 진지하게 써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결코 쓸 수 없는 유려한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감히 글의 세계를 넘본 밀입국자가 된 것 같았다. 우연한 성공조차 기대할 수 없는 필연적 패배를 피해 도망다녔던 거라고 생각한다.
도망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스물일곱 쯤인가 여덟 쯤인가, 정확히 짚어낼 수 없지만 가랑비같은 우울에 본격적으로 젖어들고 있을 때에도 나는 끊임 없이 쓰고 있었다. 밤잠을 이룰 수 없게 만들던 무거운 불안과 거듭 실패한 여러 시도에 대해서. 나의 절망과 한줌의 농담에 대해서. 또 너무 빠른 하루와 영원 같은 한 해에 대해서.
내 에세이를 내보겠다고 결심하고 다시 찾은 그 시기의 글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몹시 거칠고 성글었지만 나를 발가벗기는 데 주저함이 없어 통쾌했다. 앞으로 펼쳐질 먹빛 미래와 낙담 속에서도 내 일기장에는 삶은, 인생이란, 사는 것은... 온통 '삶'이란 말로 가득했다. 살기 싫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견뎌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어떻게든 살아내고 싶다는 방증이 아니었을까. 그런 것들을, 지치지도 않고 매번 쓰고 있었다. 내 삶은 씀으로써 간신히 무너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절처럼 찾아드는 좌절감을 글로 쓰며 품에 안으리라. 이걸 알고 나니 질투는 여름밤 바람같이 포근한 얼굴을 하고 떠난다. 질투가 떠난 자리엔 의지와 열망이 찾아든다. 어느 날의 일기처럼.
“끝장이라고 생각한 순간 인생은 또 다른 시작점이라는 게 참 재밌지 않니 결국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 걸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