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여러분
30대도 무서워요 응애
나는 이 글의 주인공들 덕분에 팟캐스트를 한다. 지금 하는 팟캐스트 이전에 이들과 정신 건강을 다루는 팟캐스트를 했다. 혼자 글 쓰는 것을 제외하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만들어 본 일이었다. 이 사람들 덕분에 스튜디오를 처음 가봤고, 녹음을 했고, 녹음한 방송을 업데이트하는 과정을 알게 되었다.
옛날에 한 달 남짓 다녔던 전 회사가 동기의 연으로 맺어준 그들은 길을 걷다가 절대로 시비가 걸리지 않을 '빡센' 외모를 가졌고 풀꽃 같이 여린 마음을 지녔다. 그들에게 좀 미안한 말이지만(그리고 다소 애정을 가지고 하는 말이지만) 이 세 남자가 무섭다고 말하면 아주 웃긴 농담을 하는 것 같다. 외양에도 불구하고 지나는 바람에 뿌리까지 들썩대는 이 사람들은 사는 게 무섭고 무서웠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지.
혼자 무서워하기가 지겨웠던 그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같이 무서워하기로 결심했다. 같이 무서워하기로 결심한 세 남자의 정신 건강 팟캐스트에 수저를 얹었던 나는, 사실 그 모임에서 대단한 역할을 소화하진 않았다. 그리고 우리 넷의 팟캐스트는 시즌을 마치고 한 명의 탈퇴 선언, 셋의 활동 중단 선언으로 멈춰둔 상태다. 다시 해야지, 꼭 다시 해야지. 인사말처럼 오가는 말엔 다들 진심이 얹혀 있지만 셋이 각자 너무 바쁘다. 그래도 당시에 나는 참 든든했다. 사는 게 무섭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마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넷이 모여든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적이 있었다.
우리는 살아남아온 거라고 생각한다. 인생이 너는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느냐고 손가락질할 때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농담으로 버틴 사람들이다. 음악을 만들고 영상을 만들고 캐리커쳐를 그리며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이어 붙였다. 함께 한 시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내가 이들을 다시 붙들고 싶었던 건 모종의 동질감 때문일 거라고 종종 생각한다. 남 모르게 무너지는 사람들. 기꺼이 농담거리를 자처하며 웃는 사람들. 내가 아는 한 가장 겁이 많은 이 세 친구가 얼마나 용기와 영감을 주는지.
중용 만세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기를 가리켜 만용도 비겁도 아닌 상태, 즉 중용이라고 말했다. 두려움이 없는 상태는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자신의 두려움을 알고 마주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개념이다. 살면서 언제나 나를 슬프게 했던 건 나의 비겁이었다. 각자의 공황과 두려움을 꺼내놓고 용기를 나눠갖는 우리 넷의 모임에서 한 친구가 중용이란 말을 꺼냈다. 우리 네 명의 겁쟁이들은 적어도 비겁하지 않았다. 아마 나는 살짝 만용의 상태였을지도.
두려움에 굴복해버릴까 봐 늘 겁내는 우리 겁쟁이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의 연약함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를 잠식해 오는 두려움에 돌팔매질을 했다. 죽을 것 같은 불안과 수치심을 느꼈지만 그런 게 우리를 눌러 죽일 때까지 목 빼고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것만 해도 겁쟁이들의 놀라운 반란이 아닌가? 게다가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어. 앞으로도 죽을 것 같을 때 그들에게 이야기하면 된다. 최후의 보루가 생긴 것 같다.
우리는 두렵다. 우리가 삶을 두려워한다는 사실마저 우리를 옥죈다. 놀랄 만큼 개방적이지만 또 놀랍도록 폐쇄적인 대한민국에서 각자의 우울과 수치심을 꺼내놓는 건, 그것도 유튜브에 떡하니 얼굴을 내놓고 이야기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도 나누고자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되어준 용기가 얼굴 모를 타인에게까지 번져나가길 희망하면서.
친애하는 겁쟁이 여러분,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언젠가는 또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