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여러분
지금도, 앞으로도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었어. H는 거듭 말했다. 앞으로도 너의 잘못이 아닐 거야. 설마, 생각하면서도 H의 말에 억 밀려오는 울음을 참았다. 세상에는 아무리 들어도 마음을 파고들지 못하는 말이 있다. H는 참을성 있게 말했다. 그건 정말로 너의 잘못이 아니야.
사랑했던 마음만 기억해. 잘해줬던 마음만 기억해. H의 목소리를 바닥으로 흘려보내면서 아득해졌다. 나는 과연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잘해줬던가. 답을 듣고 싶었지만 나는 남겨진 사람이었다. 지친 기분이 들었다. 누구도 내 잘못이라고 하지 않는데 나는 왜 이렇게 다 내 잘못 같지?
울고 싶지 않았는데 눈물이 줄줄 났다. 조수석에 앉을 때면 늘 그렇듯이 신발을 벗고 양반 다리를 하고. 창밖을 보며 진작 이쪽을 한 번 와볼걸, 와아아 울었다. H가 모는 차는 미아사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잘 다녀왔어? H가 밤에 전화를 걸었다. 비가 잠겨 죽을 수 있을 것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H는 그 뒤로 매일 전화를 걸었다. 나는 받지 않거나 난 괜찮아, 하고 금세 끊을 적이 많았다. 어느 날 H는 소금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다고 안 해도 돼. 거짓말하지 마. 또 지친 기분이 들었다.
괜찮지 않다고 말했다. H를 탓했다. 눈물 콧물 줄줄 흘리다가 H가 사준 떡볶이를 먹었다. 네가 괜찮다고 하지 않아도 된댔잖아. 솔직해도 된다고 했잖아.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H가 슬프고 막막해져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네가 수렁에 처박힌 나를 꺼낼 수는 없다는 것도, 탓할 사람을 찾는 내 마음이 부당했다는 것도. 알면서 그런 나쁜 짓을 했어. 용서해 줘. 모질게 너를 탓하면서 나는 무디게 살았어.
H는 마지막에도 말했다. 정말 네 탓이 아니야. 그 일도 이 일도.
몇 번을 되새겨봐도 이거나 저거나 내 잘못이 많았던 것 같아. 그래도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웠어.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네가 찬란한 하루하루를 보내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