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는 어디든 가자고 대답할 거야

by 밈혜윤

16학번이랑 친구라고?

W는 나랑 무려 네 학번이 차이가 난다. W의 이야기를 할 때면 사람들이 놀라서 묻곤 했다. 그러니까, 네가 16학번이랑 친하게 지낸다 이거지? 같이 여행도 갔다는 거지? 어떤 친구가 얼빠진 얼굴로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이 사람 도대체 무슨 친목을 쌓고 다니는 거야...


W와 어쩌다가 친해졌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 얘기를 해본 건 아마 과 단체 술자리였던 것 같은데, 검은색-흰색 줄무늬티를 입었던 건 기억이 나면서도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까마득하다. 아무튼 우리는 번호 교환을 했고, 밥을 먹었다. 내 여동생과 동갑이라 괜히 마음이 갔던 W는 시종일관 무던한 얼굴로 있다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웃는 얼굴은 평소의 무심한 표정과 상당히 온도차가 있었다.


W는 빠릿빠릿했다. 테이블에서 휴지 쪽을 쳐다보기만 해도 두 장, 세 장을 뽑아서 건네주는 눈치가 있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에둘러서 신중하게 말하는, 그러면서도 자기표현이 확실한 면모가 있었다. 내가 그 새끼 진짜 싫어,라고 뱉는다면 W는 "아 그분... 저랑은 잘 안 맞는 편"이라고 말한다. 항상 차분했다. 아마 W의 그런 면면이 좋았던 것 같다.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나보다 차분하고 신중한 모습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히 배웠을 리는 없다. 친하게 지낸다고 배울 수 있을 것 같으면 진작 인성이 훌륭해졌죠.


W는 말이 많은 듯도 하고 적은 듯도 한데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나와 F, B, S 등은 W를 약속에 불러놓고 우리가 하는 말에 점점 흥분해서 우리만 말을 하는 우를 범해왔다. 집에 가는 길에 맨날 우리끼리 말한다. "야... W 오늘도 '저 새끼들 또 지 말만 하네', 그러면서 집 간 거 아니야?" 알 수 없는 점은 우리가 떠드는 걸 듣기만 하면서도 W는 꼬박꼬박 언니들을 찾는다는 거다. W의 훌륭한 인성을 기려야 한다고 본다.


W와 등이 푹 젖도록 땀을 흘리며 걸었던 교토

2017년, 그때 나는 여행에 미쳐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방학이면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날아갔다. 한 학기 내내 벌어 모아놓은 돈을 기껏해야 4박 5일, 3박 4일에 태워 버렸다. 후회는 없었다. 그때 낯선 땅의 공기로 숨통을 틔워놓지 않았다면,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손짓발짓을 해서라도 혼자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 것이다.


W와 한 번 여행을 같이 떠났다. 오사카-교토 여행이었다. 아마 W는 오사카 자체가 초행이었던 것 같고 나는 오사카는 서너 번 다녀왔지만 교토는 초행이었다. 우리는 먹는 것을 '돼지런히' 주워섬기다가 친해졌다. 역시나 우리의 여행지 목록에는 각종 디저트 맛집이 즐비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단한 목록의 90% 정도를 진짜 다 먹었다. 시간이 없으면 포장해서 호텔에서라도 먹었다.


다양한 곳을 도장 깨기 했지만 특히 교토에서 갔던 말차 전문 디저트 가게가 생각난다. 교토는 예스러움을 간직한 도시였다. 우리는 골목과 골목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여름의 일본은 매우 덥다. 흰 반팔티가 푹 젖도록 땀을 흘렸다. 필름카메라, 핸드폰, 디지털카메라 등 카메라만 서너 개를 지고 다닌 우리는 매우 지쳐 있었다. 더 이상의 사진을 포기하고 디저트 가게로 들어갔다.


말차 파르페였는지 뭔지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것, 말차 초콜릿, 아이스 말차라떼 같은 걸 테이블 가득 시켰다. 테이블이 작기도 했지만 잡스럽게 이것저것 시킨 터라 문자 그대로 테이블이 꽉 찼다. 하나씩 맛보면서 창 안팎으로 사람들을 구경했다. 묘하게 시원한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던 가게에서 지친 우리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고 좋은 시간이었다.


그 뒤로 교토를 간 적이 없어서, 내게 교토는 곧 W와의 추억 자체가 돼버렸다. 금세 다시 갈 줄 알고 교토는 하루만 일정을 잡았었는데 그 뒤로 이래저래 가지 못했다. 한 번의 교토 여행을 W와 갔어서, 더웠지만 편하고 맛있는 기억으로 채웠어서 정말 다행이다. 언젠가 또 같이 어디로 떠날 수 있을까? W는 이 글을 읽으면 카톡을 보낼 것이다. 어디든 가요, 언니.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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