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의 시들지 않는 당근

친애하는 여러분

by 밈혜윤

내 어깨엔 당근이 있어

정말 딜레마다. <친애하는 여러분>을 출판해서 주인공들에게 나눠주려면 반드시 엄마아빠에게도 줘야 하는데, 그러면 엄마아빠에게 이 글을 통해 타투 커밍아웃을 하게 되는 셈이다. 30대 먹고도 엄마아빠한테 타투 얘기를 못하냐고 누가 비웃을까 봐 덧붙이는 말이지만 웬만하면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세상에 있는 것이다....


여하튼 내 어깨에 당근을 그려준 Q는, "언니가 내 그림을 사줬잖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타투가 Q의 그림이 맞기는 한데, 심지어 당연한데, 그 문장으로 들으니 묘하게 느껴졌다. Q가 얼마나 본인의 그림과 타투업을 사랑하는지 담뿍 느껴졌다고 할까. 그래서 Q에게 받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니지. Q에게 그림을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림의 'ㄱ'도 모른다만 감히 말해보자면 Q의 타투 그림체는 '힘숨찐' 같다. 힘을 빼고 느슨하게 흔들리며 있지만 안에는 강한 에너지를 숨기고 있는 사람. 선이 얇고 그림은 수채화 같이 곱지만 이상하게 생기가 넘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한때 Q의 타투 아카이빙 계정을 매일 들여다 봤다. Q의 활력과 의지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내 어깨에도 그러한 힘을 담아 당근을 그려준 것 같아서.


일부러 첫 타투는 감추기 용이하면서도 원하면 잘 볼 수 있는 곳에 새겼다. 그리고 굉장한 의미 부여를 해서 새겼다. 사는 게 그저 그래지면 나는 어깨의 타투를 골똘히 본다. 마트에 흔해빠진 야채에 불과하면서도 ‘죽음도 아깝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꽃말을 가진 당근은, 내가 그것을 새길 때 처했던 상황과 가졌던 마음을 생각하게 한다.


어깨를 덮은 옷을 입고도 불측의 시간에 나는 내 어깨엔 당근이 있어,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새겼어, Q가 내 뜻을 존중하고 헤아리며 그걸 그려줬어, 생각한다. 그러면 기이한 평온함과 용기가 생긴다.


딱 하나만 더해야지

준비하고 있는 중요한 시험이 여름에 끝난다. 시험이 끝나면 나는 딱 하나만 더 하고 타투는 그만 하려고 한다. 평생 지키기 어려운 결심은 인생에 두 개면 족하다. 두 번째 타투는 그림이 아닌 레터링을 하려고 한다. 스물다섯부터 정말 좋아했던 말로 정해두었다. 그 말에 대한 두근거림은 거의 10년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아서, 몸에 새겨도 괜찮을 것 같다.


Q의 타투 작업은 그림이 주가 되지만 해당 레터링 타투도 Q에게 의뢰하고자 한다. 그만큼 Q의 실력을 믿는 것도 있고, Q라면 내가 소중히 여기는 말의 무게를 충분히 헤아려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Q는 스스로 자랑스러이 여기는 마음과 전진하기 위해 힘 주는 마음을 두루 갖고 있다. 내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새기고자 하는 말을 깊이 이해할 것이다.


Q는 국내외로 쏟아지는 의뢰에 정신 없이 바쁘지만 아마 내 두번째 의뢰를 받아줄 것이다. Q와 이야기된 바는 아직 없다. 그러나 일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주변인을 아낄 줄 아는 그녀라면 얼마의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내 팔뚝에 내가 사랑하는 말을 예쁘게 담아줄 것이다. 본인이 삶을 사랑하는 마음과 시간을 부지런히 살아내는 힘까지 덤으로 담아서.


Q에게는 내가 내 타투를 쓸어보며 새겨준 Q의 마음을 건너다볼 적이 많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 여름에 시험이 끝나면 꼭 말해주어야겠다. 사실 입으로 드러내서 말할 일은 없고, 글의 링크와 책을 건네주며 마음을 대신할 것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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