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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Aug 16. 2024

좋아할 결심

골프 도전!

   못하는 것을 미워하던 버릇

   잘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저는 별로 없습니다. '그냥 그런', '평범한' 같은 형용사들을 사람으로 뭉쳐놓는다면 그게 바로 접니다.


   잘하는 것보다 잘 못하는 게 더 많은 인생.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당연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과히 엄격한 분이었어요. 뭐든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또 극복해야만 한다고. 남들은 다 하는데 네가 게을러서 못하는 거라고 꾸짖곤 했습니다. 제 일생의 타임라인을 정리한다면, 부모님께 받은 비난이 칭찬의 10배쯤 될 겁니다. 


   그 결과가 어땠는 줄 아세요? 회피형 인간이 되었습니다. 한 번 해보고 잘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극한의 앙심을 품고 달아나는 사람. 잘할 수 있는 것만 하는 사람. 최선을 다했는데 잘하지 못할까 봐, 마음이 다칠까 봐 최선을 외면하던 애. 


   내가 못하는 것을 미워했습니다. 부모님의 비난에 화가 난 마음을, 잘못한 것도 없는 세상의 여러 일에 전가하여서 화를 냈습니다. 너무 많은 것에 분노하며 자란 것 같습니다. 그때 나는 잘하는 것도 없었지만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을 원망하고 성토하는 과정은 지나갔습니다. 엄격한 부모님 등쌀에 떠밀려 이룬 것도 분명 있다고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비난한다고 해서 스스로까지 비난할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뭔가를 좋아하는 것도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못하는 것을 좋아할 결심

   정신과 상담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선생님과 나눈 대화가 생각납니다. 무엇을 좋아하나요? 먹는 거 말씀이세요? 그런 것도 좋지만 취미 같은 거, 뭐 좋아하는 거 없어요? 그런 것... 어,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선생님은 빠르게 타자를 타다다닥 치면서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같이 찾아보죠. 


   금세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질문은 생각보다 오래도록 메아리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천천히 스스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면서 비로소 알았습니다. 좋아할 결심을 해야만 진정으로 좋아할 수 있는 거구나. 다짜고짜 좋은 것을 찾으려고 애쓰는 건 잘못된 접근이었습니다. 잘하지 못해도 미워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제가 아는 것은, 아마 세상만사의 대부분을 미워할 때도 진정으로 미워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의 나는 나에게 너그러워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한 번 해보는 거야, 더럽게 못해도 돼.


   홀가분해지자 부모님의 비난, 취준, 직장생활에 떠밀려 몸을 웅크리고 있던 또 다른 자아가 허리를 세웠습니다. 나는 이것도 하고 싶었어. 저것도. 사실은 요것도, 조것도... 그렇게 시작한 여러 가지 중 제일 재미를 붙인 것은 골프예요. 


   왼팔을 편 채로 어깨를 돌려 공을 치는 건 생각보다 너무 어렵더라고요. 아이언을 강하게 휘두르며 굿샷을 뽐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볼품없는 샷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매일 가서 연습합니다. 골프를 아직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겁내지 않는 지금의 스스로가 많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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