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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Feb 12. 2024

언제라도 죽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모든 것은 빌드업

   시간 낭비가 어딨냐

   시간 낭비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공격적이다. 생산적인 일, 쓸모없는 일, 선을 딱 그어놓고 양쪽으로 갈라치는 기분이 든다. 조금이라도 결과가 남지 않는 일은 생산적이지 않은 일, 쓸모없는 일로 치부해서 사람들이 죄책감을 갖게 만든다. 옛날 사람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 부모님도 그런 분이셨다. 온전히 쓸모없는 일이라고 말해버리진 않았지만 자주 말했다. 너 언제까지 그렇게 시간 낭비할 거야? 지금은 그런 거 할 때가 아니야.


   부모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시간을 너무 펑펑 낭비했고, 부모님이 한 번씩 그렇게 잔소리를 해줬기 때문에 덜 낭비한 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간 낭비라는 말 뒤에 채 떨어지지 않고 나를 덮치던 수치심과 죄책감을 자주 생각한다. 언제쯤 시간 낭비를 해도 되는 '그때'가 오는 건지 궁금히 여기며 학생 시절을 보냈다.


   내가 하던 시간 낭비란 대단한 건 아니었다. 공부에 집중해야 할 때 친구들과 문자를 좀 주고받았다. 시험과 관련 없는 소설을 읽었으며 길을 걸어 다니며 영어 듣기를 하지 않고 아이돌의 음악을 들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 누워 있었다. PMP에 영화를 받아서 봤다. 대학에선 취업 준비를 않고 동아리 활동이니 학회니 소모임이니 취업에 하등 도움 안 되는 것들로 바빴다. 뭐... 그랬다. 나도 내 나름의 항변거리가 있지만 어른들 보기엔 부적절하고 게을러 보였을 수 있다. 인정한다.


   부적절하거나 게을러 보였을 수 있단 사실은 인정하지만 시간 낭비란 말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읽었던 소설과 들었던 음악, 감상했던 영화로 아직도 소소한 대화를 하고 있다. 그 대화는 동년배의 불특정 다수와 통하는 이야기다. 동아리와 학회에서 사귄 친구들과 지금껏 즐거운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보다 단단한 어른이 된 지금은, 내가 다시금 수치심을 느끼게 두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은 빌드업이라 생각하면 용기가 나지요

   우울과 무기력이 심했을 때 하루가 멀다 하고 좌절했다. 내가 하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여태 열심히 살았지만 손에 남은 결과가 없었듯이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 좋아했던 독서도 감상의 기록도 감흥이 없어졌다. 무채색 세상의 무색무취 공기 속에 팔다리를 저으면서 때론 뜨거운 절망과 차가운 냉담을 오락가락했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과 죽을 '것 같은' 같은 기분은 매우 다르다.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았지만, 또 내 죽음에 눈물을 흘리진 않을 것 같았지만 어느 날 정말로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출근 준비를 위해 잠자리에 누웠는데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너무 커서 잠들지 못했다. 그렇게 밤을 꼴딱 새우고 출근했을 때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심장이 너무 아팠다. 종종 숨이 막혔다. 숨이 너무 막히면 회사 옥상에 올라갔다. 회사는 대로변의 고층이었다. 차들이 달리는 널찍한 도로를 보면서 마치 다시는 숨을 쉬지 못할 사람처럼 하압, 공기를 잡아먹고 들어갔다. 또 숨이 막히면 다시 옥상으로 나왔다. 그러다 보면 해는 조금씩 멀어졌다.  


   언젠가 옥상에서 하압, 숨을 먹다가 프흐, 흘려버렸다. 눈물이 났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지긋지긋했다. 넓지도 않은 옥상을 뱅뱅 돌며 걷다가 뭔가를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퇴근하고 브런치를 개설했다. 모르긴 해도 뭔가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절망에서 조금 기어 나온 상황이었을 것이다. 정말로 절망이 폐포를 압사시키고 있을 때는 해야겠다거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매우 허접한 브런치 계획서가 통과되어 작가 승인이 났다.


   글을 썼다. 한 달이 넘게 한 편도 올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드문드문 올렸다. 열 개 전후의 좋아요가 나를 위로했다. 94편의 글을 올렸다. 삭제하거나 수정을 위해 발행 취소를 하고도 약 80여 편의 글이 남았다. 50편 정도 올렸을 때 내 지난 글을 쭉 읽었다. 하염없이 슬픈 자아의 무수한 자기 복제글에 불과했지만 용기가 났다. 적어도 30대의 나는 50편의 글을 남겼어. 그 생각을 하면 심장이 아프다가도 멀쩡해졌다.


   지금 내 손톱 끝에서 무르고 흩어지는 듯한 내 경험들, 운동, 공부, 취미가 사실은 아주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쌓이고 있다. 쌓이고 쌓여서 무언가를 이룬다. 이룸이 모여 내 이름을 만든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착실한 빌드업이다. 문화 콘텐츠도 빌드업이 잘 되어야 맛난 작품이 된다. 나는 보다 멋지고 맛깔난 캐릭터가 되기 위해서 지금 떡밥을 쌓고 있는 거다. 그리 생각하면 사는 게 좀 괜찮아진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만만하고 즐거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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