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낮짧밤
더 어렸을 때
30대 초반인 지금도 어리다고 볼 수 있지만 보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사회 통념상 어리다고 인정받을 때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만 생각한 것 같아요.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방학 숙제처럼 미루던 ‘되고 싶은 것’의 생각은 언제부턴가 생각을 할 수 없는 영역이 됐어요. 말 그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너무 어색하고 이상한 생각이었거든요.
되어야 하는 것은 많았어요. 주변 어른들은 끊임없이 내가 되어야 하는 것을 주워섬겼어요. 늘 양보해야 한다. 교회 열심히 다녀야 한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의사가 되어야 한다. 아니 판검사가 되어야 한다. 아니 아니 참한 며느릿감이 되어야 한다. 어른들은 자꾸 훌륭해지라고, 백점 맞으라고, ‘사짜’ 직업이 돼야 한다고 말했어요.
안타까운 일이에요. 저는 정확히 반대로 자랐어요. 양보도 안 하고요, 교회도 안 다녀요. 공부는 혼나지 않을 만큼만 하고 의사도 판검사도 못 됐습니다. 참한 며느리가 될 생각은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습니다. 그때 내 손을 쥐고 “반드시 취업 안 되는 인문대, 특히 철학과에 가거라” 했다면 철학과는 안 갔을 텐데(농담).
내가 학교를 고르는 게 아닌지라 자의보다 타의에 가깝게 철학과에 진학했지만, 충분히 시간을 주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게 두었어도 철학과나 사학과를 갔을 겁니다. 오늘날 취업 안 되는 분야에서 촌각을 다투는 과죠. 물론 과 때문에 취업이 안 됐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건 아닙니다. 취업 잘하는 애들은 얼마든지 잘했으니까 제 문제입니다. 중요한 건 제가 진정 원한 건 언제나 인문학 쪽이었다는 거예요. 학생 때는 그걸 알 겨를이 없어 몰랐지만.
마침내
대학을 다니면서도 내가 진정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알 겨를은 없었어요. 술을 퍼마시느라, 동아리 모임을 좇아 다니느라, 농활 가느라 바빴어요. 술에 취해서도 레포트를 쓰고 무슨 말인지 모를 텍스트를 포기하지 않는 인문학도로서의 하루하루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졸업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학사모를 하늘로 올리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원하는 걸 하고 있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더 열심히 해봤을 텐데. 통한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대학원에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대학원엔 가지 않았어요.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기엔 기량이 부족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서, 내가 되고 싶은 인문학도의 수준은 학부생 정도였습니다. 낯선 언어, 이를테면 라틴어를 공부해서 단어 하나하나를 쪼개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럴 자신도 없었고요.
철학과를 전공하면서 건진 행복은 비로소 질문을 인정받았다는 점입니다. 철학은 계속해서 질문해야 합니다. 그게 뭐지? 왜 그렇지? 초중고에선 허락되지 않던 질문입니다. 저런 질문을 했다가는 반사회적인 뺀질이로 치부되던 때가 있었죠.
묻고 묻다 보면 도달하게 됩니다. ‘나’에 대해서요. 나의 마음은 실재하는가. 나는 무엇으로 구성되며, 나는 어떻게 세상을 보는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런저런 학설이 워낙 많으니 결국은 어떤 식으로 나를 정의할 건지 스스로 ‘결정’을 하게 됩니다. 저는 결정했습니다. 나는 비록 의지와 관계없이 내던져졌지만 지금, 이곳에 함께 존재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겠다고요. 그게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고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요. 내가 결정한 것 말고 꼭 되어야 하는 것은 없다고, 세상에 나온 지 약 만 일이 되었을 때에 단언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고들 말하지만 또 쉽게 잊힙니다. 내가 사랑했던 순간들과 모습들을 자꾸 잊어버립니다. 특히 잘 잊는 건 스스로를 향한 것들입니다. 초중고 시절과 달리 공들여 되뇝니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은 대단한 사짜 직업이나 훌륭한 위인이 아니라 뿌연 안개 너머 등대빛처럼 거시적인 것을 고민하고 질문하며 사랑을 말하는 한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