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윤은 도통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적은 없었다. 글은, 쓸 시간이 없었을 뿐 쓰고자 하면 언제든 튀어나오는 목소리 같은 것이었다.
목소리. 글과 말은 뭔가를 표현하고 뱉어낸다는 점에서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윤은 말보다 글을 좋아했다. 그건 꺼끌한 종이의 촉감과 함께 오래 남는 것이었다. 때로는 손가락 끝 체온으로 엷게 번져나는 잉크까지 포함해서.
써보려고 노트북을 또는 태블릿을 켰다가 자판 위에서 하릴없는 배회를 했다. 결국 무엇도 쓰지 못하고 그냥 끄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건가.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말할 것이 없어지는 사람이 되는 것. 자신에 대한 생각도, 자신이 가진 의견도 없는 사람이 되는 것. 생각의 자리를 생계가 꽉 채우는 것.
감정
얼음을 한참 문댄 피부는 고통에 무뎌지지만 다른 감각에도 무뎌진다. 그런 마음을 평정심이라 착각한 날들이 있었다. 부러 그런 마음이 되려고 부단히 애썼던 20대의 날들을 기억한다.
윤은 읽는 사람까지 행복해지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윤이 학교에서 상을 탔던 글의 과반은 축축한 이야기들이었다. 언젠가 윤은 의구심을 품는다. 그게 내가 잘하는 유일한 글인가?
아무렴 어때. 잘 쓴다 소리 들으면 됐지. 그땐 그랬다. 목소리를 내듯 언제든 쓸 수 있었으니. 지금은 그마저 쓰기가 어렵다. 윤은 계속 무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벼려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조잡한 브런치와 조악한 글을 정말로 접어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젠 꺼끌하지 않은 종이, 더는 체온으로 번지게 할 수 없는 잉크를 쓴 책들을 넘기면서. 그렇게 세상과 세대가 바뀌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윤은 눈물이 흐르고 있단 걸 깨달았다. 그건 글에 대해서까지 무뎌지고 만 슬픔이었을 수도 있고, 잃어버린 목소리에 대한 개탄이었을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아직은 접을 때가 아니다. 불씨가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