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 잊은 적 없는 친구에게
어제 서울시 마포구에는 갑작스런 비와 우박이 쏟아졌다. 1분 전까지 반팔을 입고도 그리 춥지 않은 날씨였는데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는가 싶더니 폭우와 함께 얼음 알갱이가 발 밑에 으드득 밟혔다. 우산을 써도 피할 수 없는 강수일이었다. 쏴아아 소리가 너무 거세서 바로 옆에 있는 동생과도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너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날에도 그랬다. 잊어본 적이 없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 사랑했던 나의 친구야. 여기까지 쓰고 나는 뭐라고 적으면 좋을지 몰라서 키보드 위에서 한참 방황했다. 여전히 깊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너와의 이별은 갑작스러웠다. 절교도 아닌 사별은 좀 너무했지 않니? 너의 갑작스런 부고에 나는 심지어 배신감을 느꼈다. 원망하지는 않는다. 배덕감과 원망은 네가 아닌 나, 너에게 좀 더 자주 연락해보지 않고 다 괜찮다고 믿어버린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다만 나는 오래도록 생각했다. 네가 떠날 수밖에 없었을 이유에 관해서.
죽음은 우리와 관계 없는 아주아주 먼 나라의 것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 만난 때를 기억하잖니. 나에게 우리의 관계는 스물둘인가 셋의 나, 갓 스물이 된 너였다. 이십대 초반 뽀얗고 말간 얼굴의 과 선후배로 서로 알게 되어 생동하고 호흡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 우리였으니 주어진 여생 또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쉽게 믿어버린 것 같다.
너는 언제나 뜻밖의 소식으로 나를 놀래켰었다. 갑자기 자르고 물들여 나타났던 너의 단발머리가 그랬고 네가 한동안 골몰했던 스포츠 댄스가 그랬다. 정 많고 눈물 많아 아주 가늘고 약한 줄만 알았더니 부모님과 담판을 지어 독립했던 너의 단단함이 그랬다. 캠퍼스에서 내 생각에 빠져 걷고있을 때 뒤에서 왁! 나타나는 너의 장난끼와 발랄함이 그러했다. 항상 놀랍고 신기했던 너는 오래도록 그렇게 살 줄 알았는데. 쉼표인 줄 알았더니 마침표를 찍어버렸구나. 너무나 가슴이 서늘하고, 놀랍게.
슬픔은 쏜살같이. 네가 정말 가슴 아파하겠지만 나는 많이 울었다. '잘한 것도 없으면서 왜 우냐'는 말에 언제나 반발심을 느껴왔지만 장례식을 다녀온 후 여태껏 스스로에게 수십 차례 물었다. 야, 잘한 것도 없는 게 왜 울어. 그런데 너 그것 아니? 잘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우는 것 외에는 달리 할 게 없는 거란다.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네가 알았으면 좋겠다. 동시에 몰랐으면 좋겠다. 남겨진 내가 후회하고 울건 말건 너는 그곳에서 즐겁고 따뜻하고 행복하면 좋겠다.
네가 떠났을 때 나 말고도 많은 아이들이 울었다. 또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울었다. 아들딸 둔 부모로서는 얼굴도 모르는 네가 그 순간만큼은 자식 같았을 거다. 너는 늘 사랑이 고팠지. 표현이 고팠지. 친구들이 정말 너를 사랑하는지 너는 걱정하고 듣고 싶어했다. 낯간지러운 표현은 자제하는 게 '쿨하고 멋지고 진짜 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모자란 우리들이, 아니 우리라고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겠다. 그렇게 모자란 내가, 너를 불안케하고 힘들게 했던 건 아니었나 생각한다. 네가 수십 번 건넨 예쁜 표현을 왜 나는 제대로 돌려준 적이 없는 것 같지. 불확실함이 살아생전 너를 힘들게 했고 남겨진 나를 힘들게 한다.
괜찮은 것 같았다. 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한동안은 정말로 너무 괜찮은 것 같아서 나는 동생에게, 친한 친구에게, 또 정신과 의사에게 물어봤다. 나 혹시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물이 왈칵 터질 때, 주변 사람들이 은근히 내 눈치를 볼 때면 나는 알량한 내 안위를 위해 너의 죽음을 이용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너와 작별한 지 꽉 찬 5개월이 지났다. 지난 두 달은 가슴이 아프지도 않고 눈물이 줄줄 터지지도 않고 세상에 비워진 너의 자리를 생각하지도 않았다. 너를 잊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생각이 났다가도 하늘나라에서 잘 있겠지, 하고 넘어가곤 했다. 오늘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다가 갑자기 네 생각이 났다. 냅다 냉동실에 떨어진 것처럼 가슴이 몹시 시려웠다. 무방비하게 틈을 내보이면 슬픔은 쏜살같이 달려와 가슴을 꽝꽝 무두질한다.
한편으로 안도감이 든다. 나는 너를 잊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너는 생생히 내 슬픔으로, 고통으로 살아 숨쉰다.
그날엔 억수같이 비가 왔지 어제 꼭 그날처럼 폭우가 내리고 번개가 쳐서 감정이 조금 마실을 다녀왔나 보다. 장례식장에서 괴롭게 너와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엄청난 비가 내렸다. 장례식장을 나오던 때에는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귀갓길 지하철 역에 내리고 보니 앞을 볼 수 없을만큼 내리고 있었다. 천둥이 번쩍하고 번개가 쉴 새 없이 쳤다. 몹시 슬펐다. 꼭 네가 우는 것 같아서.
천둥번개만 없었어도 덜 슬펐을 것 같다. 네가 가슴을 쾅쾅 치면서 오열하는 게 아닐까 걱정됐다. 너는 너 때문에 사람들이 힘들어할까 봐 항상 힘들어했던 아이니까, 장례식장에서 우리가 우는 걸 지켜보면서 괴로웠던 건 아니었을까? 닿을 수 없는 손짓으로 우리 눈물을 한참 닦아주고 우리보다 네가 더 울었던 건 아닐까? 그래, 나는 그런 생각들을 했었어. 편의점에서 산 오천원짜리 투명비닐 우산 아래에서 아무렇게나 빗물을 튀기고 걸으며 한참 혼잣말을 했다. 나는 괜찮아, 우리는 괜찮아. 우리보다 너가 힘들었잖아... 골백번 외치면 혹시라도 네게 그 말들이 닿을까 해서 오래도록 중얼거렸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날을 생각하지 않기가 어렵다. 게다가 갑작스레 쏟아지는 빗줄기라면 더욱 그렇다. 오늘도 나는 형벌처럼 묶여 그날의 붉어진 눈들을 마주했다. 어릴 때 어느 어른이 내게 진짜 슬픔은 눈물 나는 게 아니라 가슴이 시린 거라고 말했었다. 이제는 무슨 말인지 안다. 유서 한 장 없던 갑작스런 이별의 날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고 가슴이 시리다. 네가 그날 우리 옆에서 오열하고 후회한 게 아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수없이 반복하면 답을 알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덜 시릴 수 있는 방법이 오직 그 뿐인 것처럼.
아마 네 성격상 너는 내가 이럴 때마다 미안해하겠지. 하지만 가슴 아파하면서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주억거리기보다 너는 그냥 웃어주면 좋겠다. 네가 흘리지도 않은 눈물을 상상해서 괴로와하는 나의 어리석음을 네가 살아서 그러했듯 그냥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고 아니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왜, 그런 말 있잖아. 사람이 죽으면 12축생의 길을 걸어 저 세상으로 넘어가는데 그럴 때 제일 먼저 마중나오는 게 개라고. 난 그 말을 착하고 순수해서 업보가 없는 동물들이 마중나오는 것으로 이해했다. 너도 착하고 순수해서 웬만한 동물들마냥 업보가 없을 테니 내가 죽으면 네가 사랑했던 강아지, 내가 사랑했던 토끼들과 마중나와주면 좋겠다. 그리고 오랜만에 크고 시원하게 웃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