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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Oct 26. 2024

우리가 쥔 어긋난 슬픔들

시간을 돌려보자

   나의 슬픔

   어디부터 시간을 돌려야 할까? 아무래도 병원 장례식장 안에서는 소용없겠지. 이마트 주차장에서 B의 전화를 받기 전. 아니 이마트에 수박을 사러 가기 전. 아니 떠들썩하게 이마트에 가니 마니 하면서 집에 누워있기 전. 아니 그전에 네 DM을 받기 전. 아니 아니, 그보다 더 전. 나는 머릿속에서 시계태엽을 앞으로 앞으로 돌려 봐. 얼만큼 시침과 분침을 앞당겨야 너를 살릴 수 있었을까 가늠하면서.   


   사람은 언제나 이상한 믿음을 가져. 과거에 뭔갈 했다면(혹은 하지 않았다면) 현재가 달랐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얼마나 쓸모없고 우매한 줄 알면서도 말이야. 때로 우리는, 그런 믿음이 잘못됐을 리 없는 것처럼 굴어. 나 또한 오래도록 그랬지.


   내 상상 속에서는 네 DM을 재빨리 읽어. 기다렸다는 듯이, 네가 보내자마자. 너를 누추한 우리 집에 초대해. 내 작고 따끈한 토끼를 핑계로 말야. 그 김에 너에게 맛있는 떡볶이와 핫도그와 꽈배기를 사 먹여. 그리곤 플라스틱 통에 거칠게 잘라 넣어둔 수박을 꺼내줘. 너는 내 동생이 난사하는 헛소리에 눈가를 찡그리며 웃어. 그리고…


   그리고. 너는 지금까지 우리 곁에 있어. 우리는 때가 되면 만날 거고 나는 너에게 일본이 좋니, 제주도가 좋니, 그럴듯한 여행지를 주워섬기면서 같이 가자고 공수표를 남발해. 지금의 나라면 절대로 공수표로 만들지 않겠지. 그때 나는 아니었지만.


   이 모든 생각은 오만이야. 내가 뭔가를 했다면 네가 기꺼이 살아줬으리라는 오만. 내가 너에게서 이 거대하고 불합리한 삶의 좌절을 몰아내는 구원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오만. 그게 나를 슬프게 해.


   네 슬픔

   난 물었었지. 넌 왜 그렇게 하는 거야? 넌 대답했었어. 살아있는 걸 느끼고 싶어서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한 답에 나는 내색은 않았지만 몹시 놀랐어. 누군가는 삶을 뜨거운 고통으로 체감한다는 사실이 나를 충격에 빠뜨렸고, 그다음엔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너울졌어. 너는 담담하게 웃으면서 내 담배꽁초까지 받아 쥐고 쓰레기통으로 걸었어.


   나는 무엇으로 내 삶을 체감하고 있었을까? 그 당시에 무엇으로 살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아니, 그해의 일들은 정말 애써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이상하지, 난 기억력이 정말 좋은 편인데. 너는 나랑 얘기할 때면 늘 박수를 치면서 ‘언니! 언니 기억력 진짜 좋다!’ 했었잖아.


   네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나는 거듭 물어야 했어. 너는 왜 그렇게 살아있고 싶었을까? 너에겐 이미 뜨겁게 흐르는 피와 쉼 없이 뜀박질하는 심장이 있었는데. 너는 무엇을 쥐고 너를 상처 입혔을까? 너는 얼마나 깊게 너를 상처 입혔을까? 그리고 나는. 나는 어떤 식으로 너를 상처 입혔을까.


   우리 각자가 쥐고 있던 슬픔을 생각할 때면 아득한 전생을 기억해 내려는 사람 같아. 애쓰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손에 잡히는 게 없어. 시계태엽을 감고 감고 감다 보면 나는 늘 같은 질문에 도달해. 나는 왜 너를 마음에 가득 품곤, 그 마음만큼 품에 안아주지 못했던 걸까?


   오늘은 제법 행복하고 즐거운 날이었어. 품에 안아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날이었어.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나는 네 생각이 났고, 슬퍼졌고, 속죄하는 마음이 들었단다. 내가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마구잡이로 돌려서 너를 더 살게 하고 싶었단다. 네가 떠날 때처럼 지금의 내 마음도 너의 것과 어긋나서 나는 몹시 슬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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