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벼랑 끝에서도 소중한 일상.

by 밈혜윤

몸이 말했다, 적당히 하라고

나는 일을 좋아했다. 특히 이직해서 온 이 회사를 꽤나 좋아했다. 점점 어려운 일이, 많이, 빠르게 닥쳐오는 것도 능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좋았다. 내가 개입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고 쌓여있는 일들도 내가 업무에 꼭 필요한 사람 같아서 나쁘지 않았다.


일은 눈덩이 같았다. 점차 불어나는 업무량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단순 작업은 밑으로 내려주고 판단 위주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들만 남겼다. 업무 구조를 바꾸니 한두 달은 괜찮았다. 그래, 원래 시니어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이런 일이 주가 되는 거지. 업그레이드되는 기분, 좋아!


오래가지 못했다. 계약 구조가 복잡한 일, 아무도 히스토리를 모르는 일, 혹은 회사에서 아무도 안 해본 일. 내가 히스토리를 파고 레퍼런스를 찾고 관계 법령을 찾으며 리스크를 찾아야 하는 일. 그래도 즐거웠다. 나는 단순 작업보다는 이쪽이 더 좋았다. 내가 결과물을 들고 찾아가면 다들 이런 걸 어떻게 했냐며 인정해 주었으니까. 그래서인가? 오후 다섯 시가 되면 진이 쪽 빠져서 기진맥진했다.


피곤해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면역력이 박살 난 것 같다. 한동안 잊고 살던 비염을 달고 살았다. 툭하면 감기에 걸렸다. 잔몸살은 늘 있었다. 운동은 진작부터 못 갔다. 주말이면 열 시간이 넘도록 침대에 누워서 겨우 유튜브만 보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다. 머리가 간헐적으로 깨질 것 같았다.


정말 심각성을 느낀 건, 전 같으면 1분 안에 답장을 보냈을 메일을 읽고 한참 동안 잠자코 앉아 있던 날이다. 다른 일을 하던 중도 아니었고 통화 중도 아니었다. 중력이 짓누르는 것 같은 어깻죽지의 고통을 느끼며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 메일에 답장하지 않으면 즉시 이슈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키보드를 타닥타닥 칠 힘이 없었다.

이 모든 건 번아웃의 전형적인 형태였다. 의사는 소견서 제출과 병가의 협상을 권고했다.


죄책감과 소중한 일상

의사의 권고를 듣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꼈다. 한참 말을 고른 끝에 저는 그럴 수 없어요, 말했다. 제가 그냥 하기 싫어서, 지루해서, 권태감을 느낀 정도를 갖고 번아웃으로 핑계 대는 것이면 어쩌죠? 내 질문에 의사는 말했다. 하기 싫어서, 지루해서, 권태감을 느껴서는 모두 같은 말이에요. 그리고 모두 번아웃의 증상이에요.


의사는 덧붙였다. 왜 핑계를 대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 말문이 턱 막히고 눈물이 났다. 상담은 그대로 종료되었다. 병원 밑에서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이 사준 정말 맛있는 닭칼국수를 먹었다. 동생에게 물어봤다. 너는 너한테 어떤 사정이 있어. 그러면 그 핑계를 좀 대도 된다고 생각해? 동생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사정이 있는데 왜 그게 핑계야? 사실이지.


나의 죄책감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아파도 힘들어도 어떤 상황이어도 책임을 지려고 했고 시간을 지키려고 했다. 왜 나의 성실함은 나를 향해 치켜든 독배가 된 거지. 그 독배는 회사가 쥐어준 것도 기대 많은 부모가 쥐어준 것도 아니었다. 나. 내가. 스스로에게 쥐어준 독배다.


한껏 추워진 겨울바람을 얼굴로 맞으면서, 동생과 버스에 카드를 찍으면서 들었던 안도감에 대해서도 말해야겠다. 심상찮음을 느끼고 병원으로 달려올 용기가 있어서 다행이다. 시간을 지켜 일하고 책임을 지려는 성실함, 원인과 해결책을 항상 강구하는 태도가 이번에도 나를 병원으로 이끈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그동안 내 일상을 훌륭히 지켜왔고 그게 나를 지켰다.


의사가 말했듯 번아웃이란 터널을 언젠가 빠져나가게 될 것이다. 그의 말대로 짧은 시간 안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먼 미래, 회복만 생각하면 마음이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하루하루의 자잘한 성실을 생각해 보자면 견딜 수 있다. 병원에서 오라고 한 때에 맞춰 갈 것이고, 먹으라는 대로 복약할 것이고, 시키는 대로 기록을 남기며 격파해 나갈 것이다.


그게 내가 아는 성실한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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