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보다 훨씬 어려운 브런치 일기
맹신 금지! 인스타그램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장문의 글을 올렸다. 사진을 공들여 고를 때도 있었고 글을 쓰기 위해 아무렇게나 고를 때도 있었다. 주제는 그야말로 다양했다. 마트에서 누가 두고 간 쪽지 얘기, 카페에서 구경한 할머니 이야기, 누구 만나서 웃긴 얘기한 이야기, 나를 휘몰아치는 내 생각과 감정... 시시콜콜하고 잡스럽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게 났을 이야기.
힙스터는 사진만 올려야 한다는데, 그런 면에서 내 인스타그램은 촌스러웠다. 그곳에 아무도 묻지 않은 내 이야기를 굳이굳이 장황하게 풀어냈다. 그것도 수년에 걸쳐서. 하지만 촌스러워서 어딘가 포근했던 것 같다. 나는 내 계정의 분위기를 애정했다. 중간에 계정을 갈아치우며 거기 있던 글을 백업도 없이 모조리 삭제한 것을 후회한다. 지금은 그때와 같은 재기발랄함이 부족하거늘. 그 당시에는 내가 그보다 더 좋은 글을 쓰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역시나 맹신은, 특히 미래의 자신을 향한 맹신은 금물이다.
인스타그램은 없고 브런치는 있다. 인스타로는 글을 척척 써냈는데 이상하게 브런치는 그러기가 어렵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니, 인스타그램은 제목을 요구하지 않는다. 내 생각을 주욱 펼쳐놓고 미괄식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브런치는 대문짝 만 하게 제목과 부제 칸까지 띄워주다 보니, 그게 일종의 진입 장벽으로 여겨진다. 정해둔 바가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붙이고 싶지도 않아서 제목을 한오백년 고민하다가 브런치를 종료하고 마는 것이다.
제목과 부제를 정해둔 뒤에 글을 쓰는 것의 장점은 아무래도 한결 정리된 글을 쓴다는 게 아닐까? 글감을 정했고, 윤곽도 잡았고, 흐름을 아우르는 제목을 뽑아낸 후 쓰는 글은 깔끔하고 맛깔질 것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쓰는 편은 아니다. 생각이 흐르는 대로 감정이 울컥대는 대로 쓴다. 그럴듯하게 표현했지만 실은 엉망진창 우당탕탕 내 맘대로 쓴다는 뜻이다. 일단 생각나는 것은 주루룩 펼쳐놓고 지우고 수정해나간다. 하지만 이게 꼭 나쁜 건 아니다. 펼쳐놓고 취사 선택을 하면 평소 사고방식과 다른 의외의 글 조합(문단을 기준으로 하는 말이다)이 나오기도 해서, 내가 쓴 글인데도 읽을 때 뿌듯하고 즐겁다.
두괄식으로 글을 잘 정리해가며 쓰는 사람들의 우수함이 부럽지만 우연이 가져다준 재미 역시 포기할 수 없기에 나는 방황하는 나의 미괄식 쓰기도 좋아한다.
더불어 인스타그램에는 있고 브런치에 없는 것도 한 가지 말해보자면 내 친구들이다. 인스타그램을 비공개 계정으로 했기에 거기에 올리는 글은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친구들, 팔로우하는 지인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스스로 검열하거나 꾸며내는 것들이 있었다. 브런치는 아마 평생 모를 불특정다수에게 쓰는 글이니만큼 훨씬 자유와 용기를 느낀다. 해외에 나가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들면 이상하게 솟아나던 기운처럼.
내가 브런치에서 대박을 칠 수 있을까? 아니 브런치가 아니더라도 내가 자비출판을 하고 글쓰기를 이어가면서 작가로 중박 이상 칠 수 있을까? 결과물에 한동안 매몰되어 있었다. 성공하지 않으면, 누군가 읽지 않으면 무용한 글쓰기 같았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글이 즐겁지 않았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설령 내가 대박 터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즐겁지 않은 글쓰기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나는 브런치에서도 우선 본문에 내 생각을 기나길게 나열해놓고 아무렇게나 말하다가, 제목도 아무렇게나 지을 거다. 나는 키보드에서 유영하는 미괄식 작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