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록
광화문에서.
오랜만에 동생과 종각-광화문-경복궁-사직단을 걸으면서 초가을쯤 된 것 같은 공기 냄새에 코를 벌름거렸다. 당시 3주 동안 속을 썩였던 이사 문제가 해결돼서 기분이 좋았고 코딱지만 한 투룸 전세가 2억이면 싸다 소리 듣는 서울의 미친 집값과 일부 중개사들의 양아치스러움을 잠시 말했고 서울공화국 한국의 얘기도 한 소큼 얹었다.
그렇게 당도한 광화문 광장 잔디밭의 풀 냄새를 맡고는 “어릴 때 자전거 타고 롤러스케이트 타고 뛰어다니던 양재천 생각난다 그치?” 얘기했다. 또 우리 살던 동네에 판자촌과 아파트가 마주 늘어서 있는 극명한 대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빈부의 격차는 내가 대출을 받아 집을 구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경복궁과 사직단 사이에서. 경복궁에서 사직단으로 향하는 골목의 작고 귀여운 가게에 앉은 사람들 웃는 얼굴을 구경하면서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언젠가 오늘 이 날을 맥락 없이 떠올리면서 그리워할 거야. 너무 평화롭고 좋잖아. 나이 먹어갈수록 특별한 사건보다 이런 일상이 예쁜 기억인 것 같아.
동생은 그랬다. 언니, 언니는 대략 13년 전에도 그런 얘기를 했어. 정말 맥락 없이 언니는 그런 말을 했어. 그리고 우리는 맥락 없이 웃었다.
변하지 않는다는 건.
인간은 안 변한다는 말은 부정적으로 쓰이기 일쑤지만 어떤 면으로는 좋은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나는 더 좋은 인간까진 못 되어도 못나게 인생을 증오하면서 살지는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확신 이후로 1년, 나는 잠시 삶을 증오했지만 절망과 싸우고 사랑을 가꾸고자 애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언젠가 마침내 소설을 쓰면 이 대화를 한 장면으로 넣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나 짜임새 있는 구성을 할 줄 모르는 내가 과연 소설이란 것을 쓸 수 있을까 생각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릿하게나마 하고 싶은 게 있는 하루하루는 제법 맘에 든다고 생각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 글의 마무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럴 때는 마법의 문장이 있다. 벅차고 순수한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