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싶은 어느 날에

공백 연습장

by 밈혜윤

아무것도 아닌 하루가 나를 집어삼킬 때

이 브런치를 꾸준히 읽어온 사람이라면 너무나 잘 알겠지만... 인생의 암흑기가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니. 하지 못하고. 눈은 떴지만 몸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누워서 무기력하게 보내는 날. 그런 내가 한심하고 미워서 땅 밑으로 푹 꺼지고 싶은 날. 매일매일 나를 보면서 또 다른 나는 말했다. 너는 그 보잘것없는 숨만 겨우 내뱉으며 지내다가 죽게 될 거야.


뾰족한 생각으로 나를 푹, 푹, 찔렀다. 실체 없는 폭력을 휘둘러대다 보면 야속하게도 배가 고팠다. 그제야 몸을 일으켜서 대충 끼니를 해결했다. 아무것도 안 했으면서 밥은 잘만 처먹네. 또 폭력을 자행하면서 밥을 먹었다. 그러고 나면 피곤한 몸을 일으켜서 집을 나섰다.


정처 없이 걷기도 하고 목이 마르면 커피를 한 잔 사 먹었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기를 썼다. 밤이면 무덤 같은 침대에 기어 들어갔다. 삐-. 귀를, 아니 온몸을 찢어놓을 것 같은 이명이 자주 들렸다. 시간이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잘 몰랐다. 아는 건 단 하나. 내가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


어떠한 계기로 그 수렁을 빠져나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건 단지, 어느 날의 내가 노을에 감탄하며 걸음을 멈춰 세웠으며 물장구치는 참새를 구경했다는 거다. 몇 개월 동안 켜본 적이 없던 카메라를 켜서 풍경 사진을 찍었다. 필요한 공부를 했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이명이 안 들리기 시작했다. 내게 좋은 옷을 사입히고 때로 음식을 해 먹였다.


성공적(?)으로 복귀한 일상은... 뭐 그리 대단할 것 없었지만 충분히 좋았다. 그런 게 삶이니까.


괜찮다는 말이 닿지 않더라도

생각해 보면 침대를 관짝처럼 여겼던 시기에는 패배의식이 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실제 세상을 보지 못하고 커뮤의 말들이 전부인 줄 알았다. 월급 300도 못 받으면 패배한 인생, 여자 나이 몇에 뭐 안 했으면 나락, 통장에 얼마도 없으면 어쩌구, 뭐 웃기지도 않는 그런 말들 있잖아. 나는 그게 세상 다수의 절대 의견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집밖으로 나서서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에는 진짜 삶이 반짝거렸다. 월급을 얼마를 받든 그 월급으로 스스로의 삶을 차곡차곡 꾸려나가는 성실함이, 일을 사랑하고 고민하는 마음이, 터무니없는 집값을 성토하면서도 미래의 집을 상상하고 준비하는 설렘이... 진짜 삶은 커뮤에서 떠들어대는 것과 몹시 달랐다. 진짜 세상에서는, 커뮤에서 줄 세우는 뻑쩍지근 화려한 인생과 거리가 멀어도 성실하고 단단한 사람들을 쓰다듬어준다.


이 글을 찾은 당신이 얼마를 벌고, 어떤 집안과 자산을 가졌고, 어떤 투자를 했고... 그런 건 당신 삶의 진짜 이야기가 아니다. 소위 말하는 '사짜'가 아니어도 괜찮고 나이 먹고 통장에 한 푼 없어도 괜찮다. 할 줄 아는 게 없어도, 그래서 진짜 삶으로 나가는 게 무서워도 괜찮다. 일단 노을과 참새를 구경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안다. 지금은 괜찮다는 말이 피부로 와닿지 않겠지. 혹은 자신이 사회로 나갈 수 있을지,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길 날이 올지 자신이 없겠지. 그런데 나는 그냥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도 한없이 무섭고 무기력한 날들이 있었으니까. 그때는 하다못해 사주 어플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에서 위로를 찾고 싶었으니까.


그냥,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이명에 시달리며 시간을 죽이기만 하던 저도 활기찬 일상을 보냅니다.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웃음과 농담을 되찾고 친구들을 웃기는 데에 사명감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특정 커뮤에서 숫자로 매긴 제 인생은 과장 보태서 실패자의 삶이겠지만, 그러나 저는 제 삶을 사랑하고 때때로 행복합니다. 당신에게도 분명 그런 날이 올 거예요. 지금은 상상하지 못해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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