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요일?
대학원의 꿈은 어쩌다...
대학생 때는 친구들과 맨날 이런 농담을 했다. ‘대학원을 가겠다고? 뭔가를 아주 잘못한 대학생만 대학원 가는 거 알지?’, ‘무슨 큰 죄를 지어서 대학원을 가려는 건데?’, ‘조심해라, 너 그러다가 대학원 간다’... 그리고 학사 졸업을 앞두고 이뤄진 교수와의 면담 자리에서는 교수님도 일부분 인정했다! 대학원 진학할래? 어.. 제가 뭐 잘못했나요? 껄껄껄, 그렇진 않았지! 이제 와서 내가 대학원에 원서 접수를 하고 면접까지 보다니 별일이다.
학사 때는 대학원에 갈 자신도 없었고 이유도 없었다. 대학원은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기 좋아하는 모범생들, 혹은 아주 똑똑한 소수의 자리라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내가 공부를 좋아한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아주 똑똑한 소수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망설임 없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 대학원은 내가 몸 담을 곳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때는 졸업해서 돈을 벌어 사회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또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원은 여러 모로 선택지에 없었다.
그렇다면 대학원의 꿈은 언제부터 비죽이 내 마음을 찔렀을까. 추측하건대, 감정평가사 공부를 하던 때부터였다. (결과적으로 똑 떨어져 버리긴 하였으나) 책상에 앉아서 내가 모르던 이론을 접하고 사례에 접목하며 공부하는 게 즐거웠다. 다만 시험을 포기하고 다시 회사로 발을 돌리면서, 또 공부를 하고 싶을 리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돈이나 커리어를 목표로 걸지 않은, 뚜렷한 목표 없는 공부? 그런 지겨운 짓을 내가 또 원할 리가 있겠냐.
있다!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나는 공부를 좋아하는 부류였다!(아직도 놀라움). 회사에서 하루하루 영혼이 쑥 빨리듯이 일을 하고 녹초가 되어 침대에 딱 붙어 지내는 일상을 반년 정도 되풀이하자, 내 마음에는 스멀스멀 질문이 똬리를 틀었다. 이런 거. 이렇게 하루하루만 바라보고 사는 거... 너 괜찮아?
눈꺼풀과 어깻죽지를 땅 밑으로 끌어내리는 피로에 마음속 질문을 애써 외면해 왔다.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 다들 이러고 살아. 다들 이러고 산다고. 다들...
미래를 바라보기
평소처럼 침대에 딱 붙어서 누워있는 어느 날이었다. 한 친구와 대학생 때 일화를 카톡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대학생 때 도서관에서 답답한 공기와 졸음을 이기며 레포트 자료를 찾던 기억이 팍- 떠올랐다. 어찌나 생생했던지 그 무겁고 텁텁한 공기 냄새가 일순 느껴질 정도였다. 이상한 기분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출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누워있기만 했으므로 침대에 앉아 있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갈 바를 모르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책장 구석에 꽂아둔 대학 졸업증에 눈이 닿아 꺼냈다. 졸업증 옆에는 우수 학점 졸업자임을 치켜세우는, 별 것 아니지만 수년째 볼 때마다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종잇장이 또 있다. 두껍고 까끌한 졸업장을 만지작대다가 결심했다. 대학원, 한 번 알아만 보자고. 알아볼 수는 있잖아?
내가 진학하려던 대학원은 2026년 수시 모집을 진행 중이었다. 대학원 홈페이지를 이곳저곳 다니면서 학비도 보고, 규정도 보고, 공지사항도 보다가 끝내 접수를 해버렸다. 원서 접수 때 제출한 서류를 출력해서 등기로 보내는 것도, 서류를 보완 제출하라는 연락도 귀찮지 않았다. 퇴근하고 졸음에 푹푹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면서 면접 준비를 조금 하고, 어제는 토요일의 금싸라기 같은 늦잠도 포기한 채 일찍 일어나 면접까지 보고 온 것이다.
물론 피곤했다. 면접 대기실에 앉아서 하품을 수십 번이나 했다. 그래도 간만에 미래를 얘기하는 면접을 마친 발걸음은 산뜻했다. 어찌나 가뿐한 마음이 드는지, 나는 오래도록 방치하고 묵과해 온 브런치까지 열어서 이렇게 글을 쓴다. 너무 오래 접속하지도 글을 쓰지도 않아서 브런치 작가 자격을 박탈당했을까 봐 내심 무섭기도 하였다.
회사에서는 매일매일 오늘을 과거로 죽이면서, 과거의 자료만 들여다보면서 산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적어도 내 인생의 한 귀퉁이는 과거에서 눈을 돌려 미래를 바라보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한다.
희망을 셈하기
20대의 나는 내가 대학원에 간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취직, 돈이 먼저였다. 이 어려운 불경기에 돈과 시간을 퍼부어서 인문대 석박이 된들,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며 얼마를 벌 수 있지? 그래, 그때는 딱 그런 셈을 했었다. 대학원을 취업 양성소쯤으로 생각했던 거다.
지금의 나는 모종의 향수를 품고 대학원을 선택했다. 온통 모르는 것 속에 둘러싸여 차곡차곡 성실히 앎으로 치환해 나가는 감각에 대한 향수. 누군가의 실수, 누군가의 배 아픈 성과급, 미국 주식 같은 얘기에서 벗어나고 싶다. 문제의식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 더 나은 상태를 지향하는 연구자들의 열정과 논리에 대해 다시 논하고 싶다.
그런 것들을 계속 접하는 것은 중요하다. 단순한 공부의 차원을 넘어서,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 또한 무의식적으로 평소에 자주 보는 것과 수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대학원을 간다고 해서 그런 인생에 정말로 가까워지는 건지는 모른다. 나는 앞으로도 그저 개 피곤한 직장인일 것이고, 아마 어떤 날엔 대학원에 원서를 넣은 나를 몹시 원망할 테니까.
다만 몇 가지는 분명하다. 매일의 오늘을 과거로 접어 넣는 삶 말고, 아주 조금이라도 미래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삶을 나는 다시금 살아보고 싶어 졌다는 것. 스무 살 때나 하던 짓을 30대 중반이 되어서, 스무 살 때보다 큰 정성으로 하고 싶다는 것. 한때는 우연이자 실수라고 생각했던 철학과 전공은 아주 놀라울 정도로 나라는 사람의 성향에 정확히 들어맞는 선택이었다는 것. 인생의 어떤 질문들의 답은... 수년이 지나서야 주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 주말, 나는 개 피곤한 직장인인 채로 대학원 면접을 보고 돌아왔다. 합격 소식이 나서 등록금을 납부하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대학원 일기를 연재해 볼까 하는데... 제가 아주 판 벌리기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