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요일?
대수롭지 않아
2024년 10월, 완전히 낙담해 있었다. 2025년 4월에도. 뿐만 아니라 2025년 7월과 8월에도. 아니 근데 낙담이 너무 자주 드는 거 아니야?
번번이 완전히 낙담해 버린 밈혜윤 씨는 스스로의 낙담을 감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전방 발사를 하고 말았다. 미숙하기도 하지. 누가 들을 테면 듣고 아니면 말아라- 체념에 가까운 마음으로 지른 고함을 누군가 잡아채 들어주었다. 들어준 사람은 내 인생에 오래 머문 친구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었다. 그때 마음을 쓴 사람들과는 서로의 인생에 한 발짝 더 깊이 들어갔다.
사람이 꼭 고난을 돌다리 삼아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경우는 나를 낙담으로 밀어 넣은 고난이 우리의 징검다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간혹 생각해 본다. 내가 그때 침묵했다면. 그들에게 SOS를 보내지 않았다면. 그들이 피로에 쩌든 얼굴로 잠든 척했다면. 우리는 얼마큼의 시간이 지나야 지금의 우리가 되었을까? 혹은, 될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면 우리란 것은 정말 대수롭지 않은 선택이 우연히 겹치고 겹쳐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품이 나올 만큼 지루하고 작은 선택이, 아주 운 좋은 잠깐의 짬이 모여 만든 우리란 것. 그래서 어떤 날엔 황망할 정도로 어수룩해 보이는 것. 그러나 일부러 만들고자 하면 이상하리만큼 내 손아귀를 피해 도망치는 어떠한 것.
우리의 연쇄적 우연
한 관계가 박살 날 때마다 가슴이 메어졌다. 밥을 먹다가도 눈물이나 분노가 왈칵 차올랐다. 눈물이든 분노든 그게 중요치는 않았다. 그 밑에 깔린 마음은 언제나 서운함이었다. 내가 떠났든 그가 떠났든, 혹은 서로를 떠났든 많이 서운했다.
서운함과 섣부른 감정을 가리려고 그 관계가 별 것 아니었던 척을 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라거나 우리는 그냥 우연히 만나 찰나를 함께 하는 사이였을 뿐, 이라거나. 인간관계의 유한성을 말하는 여러 문장을 주워섬겼다. 그래도 마음에 푸른 기운이 가시지 않은 이유는 여러 희박한 확률의 우연이 겹쳐서 만든 어수룩한 관계가 가슴에 심이 박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관계가 생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 사람과 일어났던 사건들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어떤 관계가 박살 날 때 우리가 함께 가졌던 우연의 역사가 끊어지고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마음에 어설픈 고통을 남겼다. 그 고통이 대수롭지 않은 척을 했고, 나아가 어렴풋해지는 관계가 대수롭지 않은 척을 하면서... 점점 더 외로워졌어.
내게 마음을 구걸하는 것 같아 고통스럽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솔직함과 대담함에 깜짝 놀라서 주저앉았다. 나라면 그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늘 해오던 대로 대수롭지 않은 척하며 깊은 굴 속에서 외로워졌을 것이다. 무수한 연쇄적인 우연이 나를 충만하게도 외롭게도 했다. 모든 건 그렇게 잠시였다.
이제 나는 마음을 바꾸어 먹으려고 한다. 모든 건 그토록 잠시이기 때문에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고, 채움과 비움은 늘 다른 형태로 아픈 것임을 받아들인다. 우리의 역사는 이렇게나 우습고 보잘것없는 요인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졌지만 되풀이될 수 없는 것이기에 소중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