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 황금시대에 아이 키우기

AI 시대, 아이가 내게 가르쳐준 인간관계의 의미 다섯 가지

by miracle monica


릴스와 쇼츠가 시간을 쪼개 소비하게 만드는 이 시대, 우리는 매일같이 자극적인 정보와 맞춤형 알고리즘 속의 도파민에 취해 산다. 1분 안에 스쳐가는 수많은 최적화 콘텐츠는 편리하지만, 동시에 감각과 관계를 점점 무디게 만든다. 이런 시대에 아이를 낳고, 키우고, 하루하루 함께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가장 비효율적이고, 가장 ‘비현실적인’ 선택일지 모른다.



MZ세대를 중심으로 개인주의와 자아실현이 점점 더 강조되는 요즘, 결혼도 누가 더 득실이냐 따지는 현실 속 특히나 더 “아이 낳고 키운다”는 선택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그만큼 이 선택이 가지는 무게와 의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뜻이다. 나 역시 아이 둘을 키우는 삶을 살아가며, 다음의 다섯 가지 의미를 뼈 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암요. 같이 놀고, 맛있는 것 먹고 건강한 것이 행복이자 사랑이지 :)



첫째, ‘함께 살아가는 법’을 실천하는 결정이다. 요즘은 혼자 사는 것이 더 익숙하고, 더 효율적이라고 여겨진다. 그런 시대에 누군가와 ‘같이’, 무엇보다 아이를 온전히 책임지고 살아간다는 건 부모의 감정과 시간뿐만 아니라 재화와 에너지를 공유하겠다는 결심이다. 육아는 가장 친밀한 사회 안 관계를 현명하게 유지하는 법을 본능적으로 익히게 한다.



둘째, 나에서 ‘우리’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경험이다. 내 이기와 편의로 중심으로 움직이던 삶이, 아이와 가족 중심으로 재조정된다. 모든 선택에 내가 아닌 ‘우리가’ 들어가게 된다. 우리네 엄마, 아빠가 짊어졌던 희생이라기보다는, 요즘 시대에는 분명 우선순위의 전환이다.



사람에 따라 다른 면도 분명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이 둘을 키우며 아주 진하고 선명하게 삶의 해상도를 더 높이는 일이다. 고되지만 그 친밀함을 채워가는 과정이 재밌기도 하다.



셋째, 확실한 보상 없는 장기 투자자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육아는 실적이 바로 보이지 않는다. 관계는 언제든지 깨지고 틀어질 수 있다. 핏덩이를 낳아 사람으로 만들어 내는 수 십 년 동안 밤새 잠을 뒤척이고,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다. 그럼에도 내 새끼가 ‘잘 자라줄 거라는 기대’ 하나로 버틴다.



노후는 가능한 부모 스스로가 준비해 두고,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독립하여 안전하게 부모 품을 떠날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즉각적인 성과 중심의 비지니스 적인 사회에서, 관계라는 블루칩에 투자하고, 긴 호흡의 인내와 기다림을 배워간다.



넷째,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되는 거울 같은 시간이다. 아이 앞에서는 내 감정이 숨겨지지 않는다. 피곤함, 짜증, 초조함. 가끔은 너무도 해맑은 아이에게서 미운 내 모습 일부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해서 이게 바로 거울 치료가 아닌가 싶은 때도 있다. 그 와중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알게 된다. 아이를 양육하고, 훈육하고 교육시키며 의도하지 않게 매 순간 자기 객관화와 성장의 기회를 맞닥뜨린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AI 시대에도 대체 불가능한 ‘인간관계’가 있음(Human Being)을 실감하는 장이다. AI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바로 타자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능력이다. 기계는 나에 맞춰 학습되고, 정해진 알고리즘대로 반응한다. 하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다. 철저한 타자다.



아이들은 매일 다르게 반응하고,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보여주며, 때론 실수하고 때론 웃으며 되돌아온다. 매일 우리는 아이를 키우며 타자와 공감하는 법을 배우고, 갈등을 조율하는 지혜를 익히며, 이유 없이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을 역대급으로 훈련한다. 이건 어떤 이론서도, 앱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진짜 인간력'을 키우는 살아 있는 게임이다.



@Henri Matisse, Dance (I), 1909, MOMA

지금 이 순간,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남들과 꽤 다르게 사는 선택이다. 그 선택은 쉽지 않지만, 깊다. 릴스와 쇼츠, 그리고 AI가 취향을 정교하게 맞춰주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현실감 없이 고립되기 쉬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반복되고 불완전한 아이와의 일상이야말로, 누군가와 함께 연결된 존재로 살아간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가 된다. 결국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나는 누군가와 진짜로 연결되고 싶다”라고 말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일지도 모른다.



덧) 미치도록 살아있다는 감각, 같이 느껴보시겠습니까! 물론 그 이전의 삶으로는 절대 되돌아갈 수 없고, 그 선택의 결과는 철저하게 당신의 것입니다만 :)




따로 또 같이, 넷으로 지내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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