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으로서의 남편

#1 남자도 '육아휴직' 해도 되나요?

by June

어느덧 시간이 흘러 6개월.


작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고, 나는 예상치 못한 발령에 심난함을 이어가던 날들 가운데 많은 고민과 함께 그리고 심지어 비장한 마음으로 "그래 내가 살길을 육아휴직뿐이야"라는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사실 꽤나 매사에 열심히였던 나는 지난 7월의 인사이동은 꽤나 충격 적이었다.

회사에서의 성장을 목표로 서류와 면접까지 거쳐 원하는 부서로 이동을 준비했고, 인적 네트워크로 사방팔방 알아보며 거의 확정이라는 확실함을 가진채 간절히 기다렸던 7월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항상 불안한 예감은 나를 감싸 안는다.

생각지도 못하게 나는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버렸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생전 하지 않던 업무와 맞지 않는 상사(마음이 이미 모났기에)들과의 내적갈등 속에서 태어난 지 12개월 된 사랑하는 딸을 위한다는 아주 진중한 마음으로 당당히 부서장 실을 찾아가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었다.


육아휴직을 시작하기 전 내 상상의 그곳 휴직의 세상은 천국 그리고 그 이상이었다.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대면하지도, 그리고 필요이상의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아도 될 무한한 자유 속에서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 파도에 서핑을 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글로써 현실고증을 하고자 한다.


육아휴직 초기에는 많은 이들이 나에게 연락이 와, "너무 좋겠다" "진짜 좋겠다" "정말 좋겠다" 등의

좋겠다 시리즈의 축복이 이어졌고, 나조차도 10년 만에 느끼는 새로운 방학에 가슴 설레어하며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허니문은 늘 짧다.


잠시 취해있던 그 시간이 지나자 나에게 '업'으로서의 남편이라는 진중한 과제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業' - 업 업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종(鍾)이나 석경(石磬)을 걸어 사용하던 악기의 일종을 그린 것이다. 그러니까 業자는 악기를 들고 다니며 생업을 이어가던 모습에서 ‘직업’이라는 뜻을 갖게 된 글자인 것이다. 業자에 아직도 ‘위태롭다’나 ‘불안하다’라는 뜻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당시 악사들의 삶이 순탄치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위의 '업' 자의 자세한 뜻이 보이는가.


우리는 흔히들 '전업주부'라는 말을 많이 쓰고 듣게 되는데, 사실상 나는 '전업 남편'이 되었던 것이다.

전업주부의 보편적인 이미지는 가정일을 아주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교육 와 성장 그리고 가정의 대소사를 전적으로 챙기는 것일 터.


나 또한 전업남편으로 그러한 과업을 전적으로 하게 되기 전 '업'의 자세한 뜻을 한 번이라도 찾아보았다면 나의 에세이의 메타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삶은 늘 예상한 데로 흘러가지 않고 내가 시작한 전업남편 생활의 시작 또한 서투름 그 자체였다.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약 3개월 정도의 수습기간 동안은 베테랑 '장모님'이 옆에서 진두지휘 또는 전담하며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셨지만, 본격적인 홀로서기가 시작된 이후로 나는 '직장인'과 '전업남편'으로서 자아 사이를 하루에도 수십 번 헷갈려하며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기저귀는 알아서 갈아 입는다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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