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축구를 하다가 발목 인대가 찢어져 깁스를 했다. 한창 축구에 빠져있던 아들은 발목을 다쳤다는 것보다 축구를 못한다는 것을 더 걱정하는 걸 보니 '아이는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깁스를 한 후 평소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사이좋은 아들과 딸이 자꾸 다투는 일이 발생했다. 이유를 들어보니 아들은 동생이 자꾸 자신의 다친 발목을 아프게 해서 화가 난다는 것이었고 딸은 그럴 때마다 자신은 아프게 한 적이 없다며 억울함과 속상함의 눈물을 보이곤 했다.
아들이 다치지 않았다면 살짝 부딪힌 정도였겠지만 인대가 찢어졌기에 스치기만 해도 비명 소리가 절로 나고 화가 날만큼 아팠던 것이다. 하루는 아들이 깁스한 발로 딸의 새끼발가락을 밟아 퍼렇게 멍이 드는 일도 생겼다. 아들은 깁스를 했으니 감각이 둔해 동생 발의 거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밟은 것이다. 딸은 아프다며 자지러지게 울었고 아들은 자신이 밟은지도 몰랐다며 어깨를 들어 올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울고 있는 동생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시간이 지나 아들이 깁스를 풀고 나니 하루에도 몇 번씩 투닥이던 남매는 다시 이전의 사이좋은 남매 사이로 돌아왔다.
몸의 상처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신기하게도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있는데 상처를 준 사람은 없다. "내가 당신 때문에 상처 받았다." 고 말하면 상대는 자신은 그런 적 없다고 억울해하거나 도리어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은 격이 된다. 그러다 보니 표현하지 못하고 덮어둔 덧난 상처가 나를 더 아프게 하기도 한다.
마음의 상처는 심각한 사건으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의 감정이 상하는 모든 일을 마음의 상처라고 할 수 있다. 계획한 일이 틀어졌을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할 때, 믿고 있던 사람이 나의 뒷말을 했을 때, 맛집을 찾아갔는데 임시 휴무 날일 때 등 일일이 말할 수 없을 많은 일들이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아마도 살면서 단 한 번의 상처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상처 받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찌 보면 삶은 상처투성이다. 크고 작은 상처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같은 상황 속에서도 누구는 크게 상처를 입고 누구는 작게 상처를 입고 심지어 그것을 상처라 생각하지 않기도 한다.
과거의 나는 작은 일에도 크게 상처를 받는 사람이었다. 내가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는 사람이 된 이유는 나의 성향, 양육자의 태도, 성장 환경 등에 있을 것이다. 나의 성향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민감하고 예민한 편이다. 대화 도중 타인의 표정이나 말투에서 상대의 감정 변화를 잘 알아차린다. 상대방이 나에게 요청하기도 전에 그의 필요를 알고 먼저 챙겨주기 일수다. 때로는 상대방 조차도 몰랐던 숨은 의도까지 파악해내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이러한 성향은 나를 아주 피곤하고 힘들게 만들었다. 피곤하고 힘든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겉으로 괜찮은척하려다 보니 나의 에너지는 더욱 소진되고 집에 들어오면 그대로 탈진해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고갈시키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지경에 이르면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두절했다. 내 안의 굴을 파놓고 그 속에서 나만의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물론 연락 두절한 사람들에게 다시 연락할 생각을 하면 걱정스럽긴 했지만 내 안의 굴을 파는 게 그때는 나의 최선이었다. 시간이 지나 나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조금 잦아들 때쯤 온갖 변경과 핑계를 대며 먼저 연락하여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유지했다.
나의 양육자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내가 태어난 지 29개월 되었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때 내 동생은 9개월이었으며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슬픔보다 말도 못 하는 두 아이를 어떻게 혼자서 키울까에 대한 걱정과 막막함에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일을 해야 했기에 나와 동생은 이모 댁에 맡겨져 자랐다. 아들만 키우던 이모가 갑자기 여자 조카를 맡아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모는 우리에게 사촌 오빠들과 차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오히려 우리들을 더 잘 챙겨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잘해줘도 엄마와 이모는 달랐다. 더군다나 예민한 나의 성향 때문에 눈치 아닌 눈치를 보았고 나는 더욱 예민한 아이가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재혼을 했고 이모네 집을 떠나 새아버지와 함께 온전한 가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 기쁨도 잠시였다. 새아버지는 1년 365일 중 360일은 술을 마시는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술을 마시면 부모님은 이틀이 멀다 하게 싸웠고 한번 싸우기 시작하면 새아버지가 집안 물건을 부수거나 어머니를 때려야만 싸움이 끝났다. 어린 나이에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두렵고 공포스러웠다. 예민했던 나는 이것들을 다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 버겁고 힘겨웠다. 그렇게 상처가 하나하나 쌓여가는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내 안에 이렇게 많은 상처들을 가지고 있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툭하면 상처를 받곤 했던 것이다. 의미 없는 말과 행동 심지어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에도 상처를 받았다. 대학 시절 기숙사 생활을 했던 나와 동기들은 주말에 시내에 나가는 것이 하나의 이벤트였다. 그때 나는 일이 있어 함께 가지 못했고 시내에 다녀온 나와 가장 친했던 동기가 나에게 패스트푸드점의 케첩을 한 움큼 내밀었다. 내가 케첩을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고 햄버거를 먹으러 간 김에 챙겨 온 것이었다. 나는 동기에게 고맙다고 말하기는커녕 '너만 지금 햄버거 먹고 와서 자랑하냐? 차라리 챙겨 오지 말지 왜 챙겨 왔냐?' 하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때는 나를 챙겨준다는 생각보다는 나를 놀리는 것 같아 화가 났었다. 그나마 가장 친한 동기였기에 불평이라도 늘어놓았지 다른 동기가 줬다면 싫다는 말도 못 하고 형식적으로 고맙다 하고 마음속으로 그 동기에 대한 미움을 키워갔을 것이다. 그렇게 내 마음에서 아웃시켜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내 안의 상처가 나를 아프게 한 것도 모르고 괜히 그들이 나에게 상처를 줬다며 탓하고 원망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올라온다.
내 과거의 상처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이자 희생자(물론 지금은 나와 결혼한 것을 아주 행복해하지만)는 나와 9년간 연애를 하고 결혼한 지금의 남편이다. 남편은 평안한 가정에서 세명의 누나를 둔 귀한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늘 받는 것에 익숙했던 그였기에 나를 살갑게 챙겨주지는 못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고 서운함과 속상함을 토로했다. 그는 뭘 잘못한지도 모른 채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난 그의 사과를 한 번에 받아들이지 않고 연인 간의 다툼에서 흔히 등장하는 레퍼토리인 "진심이 느껴지지 않아." 하며 그를 더욱 난감하게 만들곤 했다.
내 마음에 상처가 가득할 때는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온갖 상처를 받으며 아파했는데 마음공부를 하며 상처를 치유한 지금의 나는 "상처 따위는 개나 줘버려!" 할 만큼 단단해져 상처로부터 내 마음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베르벨 바르데츠키의 저서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서 "누가, 그리고 어떤 일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가는 상처 받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고 했다. 상처 받았다는 것은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를 했다'가 아니라, 그 행위 때문에 '나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똥 보따리를 던진다면 그 똥 보따리를 끌어안고 더럽다고 불평을 하고 있을 것인지 똥 보따리를 멀리 집어던질지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상대가 아닌 오직 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