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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선희 Nov 03. 2019

누구나 자신의 상처가 가장 아프다.

상처를 드러내는 용기


얼마 전 출근하여 업무 준비를 하는데 지인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바쁘십니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에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지금은 안 바빠요.

라는 나의 대답에 


안 바쁘면 저랑 데이트 안 하실래요?


 답이 왔다. 알고 보니 주말에 있을 나의 마라톤 대회에서 먹을 파워젤(강도 높은 운동을 할 때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먹는 액체의 식품)을 전해주기 위해 나의 직장을 방문했던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이의 나를 위한 방문에 들뜨고 설렜다.


그와는 한 달에 한 번씩 독서 모임도 하고 비정규적으로 달리기 모임도 하며 종종 만나는 사이었지만 이렇게 단 둘이 만난 적은 처음이었다. 많은 사람이 있을 때는 나누기 어려운 진솔한 대화가 오갔다. 그러다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다양한 치유 관련 활동을 학교에서 소위 문제아라 불리는 아이들에게 적용하며 그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나의 말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한테도 적용해주세요. 오히려 그 아이들이 더 필요하고 좋아할 것 같은데요?"라고 했다. 교사의 시선으로 공부 잘하고 모범적인 아이들은 딱히 문제 될 게 없다고 여겼던 나는 그의 말이 흥미로웠다. 그는 말을  이어가며 자신의 학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전라도의 한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전교생의 숫자가 150명 남짓 되는 학교에서 줄곧 전교 1등만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칠 때까지 전교 1등을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학교에는 소문이 파다했을 터이고 그를 시기 질투하는 친구들은 직접 대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네가 언제 그 자리에서 내려오나 지켜보겠어' 하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곤 했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그는 전교 1등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공부했을 것이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일부 몇 과목만 보는 시험이 있었던 모양이다. 중요하지 않았던 시험이라 방심을 했는지 그때 처음으로 전교 1등의 자리를 내어주고 2등을 했던 것이다. 힘들게 지켜오던 자리를 중요하지 않은 시험에 내어주게 되었으니 얼마나 분하고 억울했을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는 그때 교실에서 울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그것이 아주 큰 상처였고, 교사들이 그를 대할 때 S대 실적 대상자 취급하는 듯 느껴지는 것도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S대 진학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많은 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을만한 그였지만 그것이 그에게는 상처였던 것이다.


나는 오랜 시간 내 상처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프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에게는 '니들이 감히 내 상처의 크기를 헤아리기나 할 것 같아?' 하며 나의 아프고 힘든 얘기를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오죽하면 20년 지기 고등학교 친구들도 내가 아버지와 성이 다르다는 것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알게 되었다. 친구들이 몰랐던 것은 내가 말을 안 했기에 당연한 거였는데 고마운 친구들은 괜스레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세상 누구도 내 상처를 이해할 수 없다' 생각하며 온몸을 단단한 갑옷으로 두른 채 살았다. 혹시라도 누가 나의 상처를 건드려 덧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마음공부를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마음에 누구나 하나쯤의 상처는 있고, 그 상처는 객관적으로 크고 작고를 떠나 자신에게 가장 아픈 상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 내 상처만 바라보느라 타인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고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 '니들이 감히 내 상처를 헤아리기나 할 것 같아?' 하며 상처를 자랑삼아 우월감을 느끼고 거만하게 굴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내 상처가 가장 아프다며 타인의 상처를 무시할 것도, 내 상처는 타인에 비하면 별 것 아니라고 무시할 것도 아니다. 상처는 아픈 것이며 치유해야 하는 게 중요할 뿐이었다. 그 후로 내 상처는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고 숨길 일도 아니었다. 상처가 덧날까 두려워 갑옷으로 꽁꽁 싸매고 있을 때는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을지 모르나 그 속의 상처는 곪고 썩어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나의 상처를 드러내니 조금씩 치유가 되었다. 상처를 치유할 때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뿐이다.


상처를 드러내는 용기



당신 상처가 당신을 쿡쿡 찌르며 아프게 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돌봐주고 치유해달라는 상처의 메시지다. 당신의 상처를 드러내라. 그때 비로소 당신의 치유가 시작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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