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의 영현이 서른 살의 영현에게
10년 전 서른 살의 나에게
영현 씨, 결혼과 취업을 앞둔 지금 불안한 마음이 가득하죠? 만일 사람이 미래를 알았다면 불안을 내려놓고 살 수 있었을 텐데. 10년은커녕 10분 후도, 10초 뒤의 일도 모르는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모든 미래를 알고 있었다면 인생에게 주어지는 눈물도, 웃음도 없었을 거예요. 마흔 살 중년인 영현이 이제 막 가장이 되는 서른 살 영현에게 미래에서 편지를 보냅니다.
2010년 올해는 당신에게 정말 값진 한 해였을 겁니다. 좌절과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중독되었던 술, 도박을 끊게 되었지요. '교회라도 한 번 가볼까?'라는 생각으로 새벽기도부터 해외선교까지 열심히 신앙생활했던 당신에게 영화제 수상과 아내가 될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신 것은 기특하다고, 내게 오길 잘했다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일 겁니다. 예상치 못한 많은 것들을 받았지만 당신 수중에 돈도 없고, 오히려 갚아야 할 빚만 있는 것이 참 한심하게 느껴질 거예요. '그때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면...' '객기를 부리지 말고 그 일터에서 계속 버텼다면...' 청춘의 혈기로 돌이키고 싶은 경솔했던 삶의 선택을 쓰라리게 후회하고 있는 당신을 위로하고 싶어요.
10년이 지나 보니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의 삶의 조건은 비록 한심할지라도 당신 존재 자체는 결코 한심하지 않다고. 이제 내년에는 결혼도 해야 하는데 직장 부서는 없어졌죠. 서른 살이 되어 여기저기 이력서를 쓰고 다시 신입사원처럼 일해야 한다는 것이 절망스럽죠. 그 마음이 추운 날씨만큼이나 당신의 마음을 차디차게 합니다.
하지만,
비록 많은 돈이 없을지라도 당신에겐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집이 주어질 겁니다. 소박하지만 날마다 먹을 양식과 철마다 입을 옷을 살 수 있는 직장도 얻을 거예요. 무엇보다 당신에겐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가족이 생깁니다. 가장 큰 축복이죠. 가족은 대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고 능력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 가장 귀한 것이죠.
소박한 살림살이에도 정갈하게 가정을 꾸리는 아내와 당신을 닮아 장난기와 정이 넘치는, 두 딸들이 바로 그들이지요. 당신을 닮아 붉고 두터운 입술을 닮은 첫째 딸. 고집스러운 눈빛을 닮은 둘째 딸. 이제 몇 년 후면 예은, 주은이란 이름을 지을 당신을 생각하면 입가에 웃음이 지어집니다.
영현 씨,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삶은 쉽지 않네요. 그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뒤덮고 있어요. 하지만 내일도 변함없이 여전히 아침이 올 것을 믿고 잠자리에 드는 것처럼 마흔 살의 영현에게 쉰 살의 영현이가 위로하고 격려하는 날이 올 것을 믿습니다. 희망을 가져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되, 당신 자신을 사랑하기도 멈추지 말아요.
당신은 존재 자체로 사랑받기 충분한 사람입니다.
2010년 겨울밤 거리를 걷고 있을 서른 살의 청년 영현에게
2020년 겨울밤, 마흔 살의 중년 영현이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