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추석에 가수 나훈아 씨가
소크라테스를 빗대어
삶의 고단함을 노래한
<테스 형!>이 큰 인기를 얻었다.
우리 집에 티브이가 없어서
공연을 보지 못했지만
한동안 인터넷 뉴스며
설교 예화로 등장해서
그 파급력을 알 수 있었다.
올해 설 특집에는
테스 형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 설 연휴 동안
나는 테스 형에 대비하자면
누스 형이라고 할 수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었다.
실제 그가 이 책을 저술했을 때는
지금 내 나이보다 3~4살 많을
40대 초중반으로
형으로 부를 수 있을 나이다.
오래전 살았던
아프리카 형이 쓴 책이라고,
젊은 시절, 혈기 꽤나 부렸던,
성공에 목말랐던 사람이 쓴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니 몰입도가 높았다.
독서를 통해 시공간을 뛰어넘어
만나고 싶은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요즘 핫하다는 클럽하우스보다 낫다.
학창 시절 단답형 문제로 주로 등장하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고백록>을
읽고 난 후, 난 누스 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누스 형 쓴 <고백록>은 인류 최초의 자서전이다.
사실 이 책을 접하게 된 계기는
수잔 바우먼의 <독서의 즐거움>이다.
장르별로 독서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이 책을 읽는 도중 책이 두껍기도 하고
지루해서 술술 넘겨보다가 자서전 장르에서
<고백록>을 보게 된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초'에 마음이 끌린다.
그래서 어떤 제품을 출시할 때,
'세계 최초', '국내 최초'를 강조하는데
'인류 최초' 라니 좀 너무한 거 아닌가.
근데 일리가 있다. 누스 형이 이 책을
쓰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썼지만
자기 이야기를 진지하게 담은 책은,
<고백록>이 최초이다.
누스 형은 파격적 이게도
태아와 영유아 시기의 모습까지도
길게 묘사한다. 물론 기억해서 남기는 것이
아니라 추측해서 남긴다.
충분히 젖을 먹었는데도 옆의 아이가
유모의 젖을 먹는 것을 보고
얼굴이 새파래져서 시기하는
아기를 보고 사람은 죄된 존재라는 것,
자기도, 인류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논리로 접근한다. 주로 논리로
말하고 글 쓰는 학문인 수사학을
배우고 가르쳤던 직업의 특성을 잘 살린 것이다.
<고백록>을 읽으면서 신학자도
신에게 투정을 부릴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누스 형은 소년기 때 복통이 심해서
죽을 뻔한 일이 있어서 죽기 전에
세례를 받고자 했으나 기적적으로
나아서 세례를 받지 않았다.
그가 신에게 질문을 빙자해서
투정 부린 부분이 이 내용이다.
그때 세례를 받았다면,
이후에 죄를 좀 덜 짓고 살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뭐, 결론적으로는
God only knows.
그 분만의 계획이 다 있으셨겠지.
신을 만나기 전, 그도 방탕한
생활을 했는데 그 결과는
나중에 함께 세례를 받게 되는
그의 아들이다. 누스 형은
결국 뒤늦게 30대에 세례를 받는데
10대인 아들이 있었다면
청소년 기에 사고를 쳤음이 예상된다.
누스 형이 자기 아들을 보고 고백하기를
'나는 아들을 낳는데 기여한 것이라곤
죄 밖에 없는데 선하신 하나님께서
잘 자라게 하셨다'는 것이다.
사랑스런 두 딸들의 자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곤 했다.
생명을 낳기 위해 내가 기여한
것이라고는 고작...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누스 형은 수재였다.
부모님은 아들의 출세를 위해
무리를 해서
카르타고로 유학을 보낸다.
재능도 있고 노력도 했으니
카르타고에서 로마로 온 누스 형은
당대 잘 나가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다.
그러던 어느 날, 누스 형은
성공가도를 달리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도 신을 믿고 싶었지만
성공에 대한 열망 때문에
비로소 30대에 이르서야 로마에서
맡은 수사학 교수직을 내려놓고
이제는 신앙을 갖게 되어
고향으로 떠나게 된다.
누스 형은 신을 믿기 전,
친구에게 자신의 고민을 토로한다.
"이렇게 열심히 해도
우리가 세상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종국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법정에서의 비열한 승리를 위해
말과 글을 가르치고,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고 웅변하는 모습을
칭찬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성공을 갈망하며 달려온 누스 형은
30대에 신에게 돌아왔다.
그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던
어머니 모니카는 지금도
설교에서 꾸준히 회자된다.
부모 속깨나 썩였지만
재능을 발휘해서 성공의 길을 가던 누스 형,
30대에 신앙을 가진 누스 형,
40대에 자신을 돌아보며 자서전을 쓴 누스 형.
내 삶과 닮은 부분이 많아
더욱 공감되는 형이다.
76세까지 책을 썼던 누스 형을
본받아 나도 노년기까지 꾸준히 쓰고 싶다.
하나님이 내게 일하신 일들을.
책을 아직 덜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사야겠단 생각이 든다.
기독교 인이라면 테스 형 대신
누스 형이 어떤가.
악법도 법이라며 가오 잡고
독배를 마시는 것보다
마지막 때까지 주어진 일들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누스 형이
내겐 더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