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4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남긴 그 유명한 말. 모든 것에 대한 철저한 의심을 골자로 하는 그의 방법론적 회의는, 결국 사유하는 자신의 존재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지점에서 멈춘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본다면 그 지점에서 데카르트 철학의 거의 모든 것이 시작된다고 볼 수도.
데카르트적 코기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생각'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성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몹시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을 요즘들어 자주 한다.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결국 나의 존재가 오롯이 나의 생각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이 없으면 나의 존재도 없다. 나의 존재는 나의 생각에 달려 있다. 나는 삶에 대한 어떠어떠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고 주위의 누군가와 마음이 잘 맞는다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누군가를 사랑한다. 그런 생각을 하기에 나는 나다. 그런 생각을 하는 한 나는 나이며 나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 했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죽고 나면 내가 존재했다는 흔적은 사라지지만,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므로.
철저한 회의가, 가장 날카롭게도 이성적인 사유가 감정적인 결론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어딘지 의미심장하다. 결국 이성만으로는 유한한 삶에 의미가 있는 이유를 논증해낼 수 없으므로, 가장 이성적인 사유는 "네가 의미있다고 믿으면 모든게 정말로 의미있어 질 거야", 하는 기가막히게 낭만적인 결론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 아닐련지.
데카르트는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 2018.03.04에 썼던 글인데 문득 생각이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