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리여행자 똥씨 Feb 05. 2024

심리치료자로 배워가는 삶의 여정

환자/내담자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 - 조건부 자기 가치와 두려움

상담 및 심리치료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다. 이 일은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나는 이 일을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오늘은 상담 및 심리치료를 하며 사는 것이 가져다 주는 의미있는 어려움들과 환자들을 통해 배운 것들을 나누고자 한다.


이 일의 어려운 부분들

이 일의 어려운 측면은 삶의 무거움과 개인적인 아픔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지속되는 책임감이다. 또한 삶의 어두운 부분에 항상 노출이 되는데, 원래 생각과 감정이 풍부하게 태어난 나에게 인간의 삶은 종종 무겁게 느껴진다.


물론 이 분야에서 10년 동안 쌓은 경험과 시간은 환자/내담자들의 아픔이 나의 개인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세션 중에는 환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공감하지만, 내 개인적인 감정을 섞지 않는 법을 배워왔다.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스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긴 해도 여전히 내 안에는 각 환자들에 대한 방이 있으며,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그 방들에 생각을 기울이곤 한다. 어떨 땐 의식적으로 어떨 땐 전의식적으로 어떨 땐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어려움과 아픔을 상상하며 그들을 어떻게 하면 더 도와줄 수 있을까 항상 생각하는 것은 나의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어려운 감정이 찾아올 때, 토로했던 환자들이 떠오른다. 내가 그들과 비슷한 이런 어려운 마음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 나는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을까? - 실질적 조언? 내 생각의 틀을 바꿀 수 있는 그런 신선한 새로운 관점? 아니면 그냥 온전히 수용되고 이해되는 경험?. 왜 이론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마음이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걸 아는데, 지금 마음이 압도당한 이 순간에는 말처럼 쉽지 않을까? 이럴 때는 어떤 접근법이 도움이 될까? 그러면서 내 환자/내담자들은 그때 어떤 것을 필요로 했을까 생각해 본다. 마음과 머리가 계속해서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일을 내가 사랑하는 이유

이렇듯 이 직업은 무겁고 힘들게 느껴질 때도 많지만, 여전히 아니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사랑한다. 이 일을 통해 환자분들을 통해 더 깊이 삶을 경험하고 배워가고 있다. 삶이 무겁게 느껴진 다는 것은 동시에 인간의 삶을 그만큼 진지하게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한번 사는 인생을 좀 더 깊이 음미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준다고 할까. 인생의 깊고 풍부한 색깔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누군가의 아픔을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가치 있고,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심리학 이론에서도 마음이 힘들 때 (특히 우울할 때) 남에게 도움을 주거나, 사랑과 평안을 빌어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따뜻함을 전달하는 것이 우울증 극복법 중 하나라고 하는데, 나는 직업으로 항상 남을 도우며 살아가니, 내 마음이 개인적으로 힘들어질 때도 이 일을 하는 자체가 나를 붙잡아 주기도 다. 내 삶의 평안함과 마음을 풍부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환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되고, 그것은 내 삶의 깊이를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내 생각과 감정을 더 깊게 바라보게 만들고, 나에 대한, 삶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해 준다. 오늘은 그런 배움의 예를 하나 나누고자 한다.


나의 호주 개인 클리닉에서 오랫동안 만나온 한 환자는 성공적이고 인정받는 30대 미국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랜 기간 동안 일상생활과 업무에 영향을 주는 식이장애와 기분 조절 어려움(불안, 우울)으로 심리치료를 받아왔다. 최근에는 1달간의 연례 휴가를 즐기기 위해 고향인 미국을 방문했지만, 다녀온 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녀는 휴가를 가기 전에 휴가를 통해 재충전이 되고, 휴식이 마음의 안정과 치료에 도움이 될 거라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휴가를 다녀온 후 마음이 더 힘들어져서 예상보다 일찍 상담을 신청했다. “휴가 후에 일상 복귀 후 겪어야 하는 우울감/적응 기간"이 예상보다 크게 나타나면서, 이에 대한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휴가 후 나아지지 않고 충전되지 않은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었다.


이러한 감정에 대해 나는 놀라움을 느끼지 않았다. 외국인으로서 고향으로 휴가를 다녀오는 것이 소중하지만 항상 즐겁지 않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현상이다. 오히려 휴가 후에 일상으로 돌아와서 동기 부여가 쉽지 않고, Holiday Blues라는 우울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환자의 경우, 휴가 후 자신의 에너지가 재 충전 되지 않은 것에 대해 자책을 심하게 하고 있었고, '나는 역시 망가진 사람이야. 나는 희망이 없어'라는 극단적인 자기에 대한 희망 상실에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이 환자는 에너지가 없고, 계속 우울하고, 의욕이 없는 자기 자신의 모습 중 유독 사회적인 에너지가 없는 것에 대해 자책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일로 복귀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자신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며, ‘누구나 일을 즐겁고 취미로 하지는 않으니, 휴가 다녀와서 일하기 싫은 마음은 당연하다’며 수용하고 있었다. 자책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와 심리치료 세션에서 자신의 '사회적 에너지 부족'이 자신을 비하하고 자책하게 하고 있는 핵심 이유이라는 점을 깊게 탐색해나갔다. 어린 시절의 경험 (이기적인 아버지와, 자기희생 패턴을 갖고 있는 어머니, 그리고 이기적인 아버지로 인해 고통받는 어머니를 보호하려는 어른 아이로 커야 했던 경험)은, 자신이 사회적 에너지가 부족해서 사람들이 연락해도 못 만난다고 거절해야 할 때마다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 (자기가 미워했던 아버지의 모습)으로 느껴지게 되었고, 그래서 사람들을 다 챙기고, 사람들의 연락에 적극적으로 응대할 수 있는 에너지가 부족한 자신을 보면, 자책/비난을 넘어서서 '자기라는 존재 가치를 부정하게 되는' 자신의 가치와 자아감이 흔들리는 두려움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날 세션 후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과, 두려움의 근원과, 자동적인 생각 패턴을 인지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자유로움을 얻게 되었다고 했고, 이를 통해 오래된 패턴에 덜 압도당하게 되고, 정신적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이 환자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반대경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사회적 에너지가 부족한 것은 오히려 ‘그냥 내 사회적 에너지가 그 정도로 타고난 거지’라고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런 나 자신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좀 아쉬운 점이라고 느껴지기는 하지만 나의 자아 존재 가치감을 뒤흔들 정도의 두려움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나는 반대로 일에서의 에너지가 부족할 때 두려워지고, 자책의 목소리가 나오고, 나라는 사람 자체가 가치 있는 사람인가 의심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사람마다 어린 시절 경험과 자신의 성격과 그 외의 수많은 요소들의 조합으로 인해 우리도 모르게 만들어 낸 나 자신을 정의하는 핵심 신념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반응과, 두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또 다른 환자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비난이 지나치게 심한 패턴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꾸준히 잘하지 못하는 나는 문제가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녀가 세운 새해 계획에는 많은 긍정적인 아이디어들이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는데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때 나는 그녀의 '꾸준히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신념에 대해 질문했고, 그녀가 당연하게 믿고 있었던 그 신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후 즉흥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개인적인 성향에 맞는 방식을 찾아보도록 같이 탐색해 나갔다. 그녀 역시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인해 위의 신념을 자동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는데, 너무 당연하게 믿고 살아가다 보니 한 번도 스스로 질문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XX씨, 뭔가 꾸준히 안하면 어때요? 큰 그림에서 카타고리만 잡고, 내가 가치를 두는 것들 (예: 마음 건강/ 몸 건강/ 자연과의 접촉/ 사람들과의 연결감/ 의미 있는 일 또는 공부), 그 안에서 매일매일 하고싶은 거 바꿔 가며 하면 어때요? 한가지를 꼭 꾸준히 안하고, 큰 그림에서 내가 원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하루를 살기 위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이것저것 바꿔가며 해보는 건 어때요? 그리고 xx씨가 만든 새해 계획안에 있는 하고싶은 행동들 다 너무 좋은데, 인간적으로 이걸 어떻게 다 해요. 우리는 인간으로써 시간과 에너지가 제한되어있는데. 한마디로 ‘꾸준히’ ‘다’ ‘잘’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그 말이 힐링 포인트가 되어, 그녀는 그 세션 이후로 오랫동안 짓눌러왔던 마음의 부담감에서 좀 자유로워지고, 마음의 부담감으로 인해 미루기만 했던 행동 패턴들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에너지 레벨, 동기 수준도 올라가고,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건강한/도움이 되는 행동들을, 더 이상 ‘미루는 행동 패턴’에 빠지지 않고, 해 나가기 시작했다.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어린 시절의 경험이나 성향에 따라 자아 가치감을 형성하고, 특정 모습에 나의 존재가치를 결부시켜 조건부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XXX 해야만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그럼 당연히 그 특정모습이 나에게서 나오지 않을 때 나라는 존재 자체가 믿을 수 없게 되니, 두려움과 여러 가지 건강하지 않은 행동패턴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패턴을 자각하고 단순한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궁금해하고, 질문하면, 우리가 그 패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고, 결국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한 발자국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점을 나는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