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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여행자 똥씨 Feb 07. 2024

"예민함"을 다시 생각하다.

'감정과 생각의 풍부함'의 슈퍼파워

나의 '예민함'과의 싸움, 그리고 심리학자로 살아가게 된 이야기  

내가 심리학 공부를 시작한 것은 벌써 21년 전이다. 그때는 심리학자가 되거나, 상담사가 되거나, 이 공부를 해서 사람들을 돕고, 밥벌이를 할 직업을 찾기 위한 의도는 전혀 없었다. 정말 단순히, 어렸을 적부터 매일같이  경험해야 하는 내 “예민함” (생각과 감정들이 항상 많고, 크고, 깊은 내 모습이) 힘들어서 이런 나를 이해함으로써,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법을 찾아가고 싶었다. 이것이 21년 전, 학부에서 심리학과를 전공하게 된 나의 유일한 동기였다.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는 동안과 졸업 후에도 내 마음과 생각, '예민함'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단순하게 살고 싶어 졌고, 나는 대학 졸업 후 몇 년간을 가능한 삶에 대해 진지해지지 않을 수 있는, 심리와는 가장 거리가 먼 직업들 (승무원 준비, 말단 사무직, 초등학생 영어학원 강사)을 탐험해 보았다. 남들이 고3 후에 자유롭게 풀어헤치고 신나게 노는 대학 시절에 나는 막상 마음의 어지러움으로 놀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대학시절도 고3 때처럼 열심히 공부만 하며 보냈는데,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가볍게 살기로 작정 한 대학 졸업 후 20대 중반의 삶의 챕터에서 드디어 한없이 놀아보기도 했다.  


10대와 20대 초반의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시도했지만, '예민함'과의 삶은 여전히 편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계속되는 “예민함” – 매 순간의 깊고 풍부한 마음과 생각들의 파티 속에서-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고, 매일을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느낌에 삶의 허무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20대 중후반쯤 되었을 때, '예민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이것이 내가 생겨 먹은 모습이라면, 내가 많이 괴로웠던 20대 초반의 경험과 지속되는 '예민함'을 이용하여 마음 아픈 사람들을 돕는 심리상담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면 나의 '예민함'과 10대, 20대의 어려움이 삶의 저주가 아니라 삶의 자원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20대 후반, 한국에서 상담심리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상과 달리, 내 '예민함'으로 인한 정신적인 방황은 계속되었고, 결혼과 한국에서의 심리학 강사, 상담사로의 안정된 직업을 통한 현실적 ‘안정감’은 막상 내 심리적 안정감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삶의 의미감과 방향성은 찾아가는 듯했지만, 그 정도가 지속되는 나의 정신적 방황의 크기를 덮어버리거나 상쇄할 만큼 크지는 못했다.  


이때부터는 나의 삶에 대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이 직업을 이용해서 (더 발전시켜서) 나의 삶을 좀 더 살만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의 20대 초중반의 삶의 챕터가 삶과 나에게 압도되어 마비되거나, 헤롱 되는 상태였다면, 20대 후반부터는 삶과 ‘투쟁’하는 챕터가 시작된 느낌이었다. 조급했고, 답답했고, 간절했다. 뭔가 맞는 방향으로 길을 들어선 것은 같은데, 뭔가가 아직 많이 부족했고, 뭔가 내가 원하는 해결책에는 아직  조금도 가까이 가지 않은 느낌.


나는 ‘도피’ 해야 했다. 이 현실로부터. 이때까지도 나는 심리적 안정과 삶의 질은 나와의 관계 회복에 달린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 변화라고 생각했다 (사는 곳, 문화, 내가 하는 직업).  


마침 내가 한국에서 상담심리사로 일하며 한국에서는 식이장애 치료에 대한 토대가 부족하다고 느꼈었는데,  내가 10대 말부터 사랑에 빠져 있었던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주)가 식이장애 치료 분야에서 트레이닝도 시스템도 잘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커리어 발전을 위해 호주로 유학을 가는 것은 나의 그때의 현실 ‘한국이라는 땅’에서 도피할 수 있는 납득시킬 수 있는 이유였다- 나 자신에게도 가족들에게도. 이후 호주로 유학해 임상심리 석사를 취득하고 식이장애 전문 분야에 진출했다. 호주에 도착하고, 임상심리 석사 과정만 시작되면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느껴질 줄 알았는데,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외로움과 언어문화 장벽, 열등감을 느끼며 현실의 벽을 매일매일 느끼며 6년 정도 지나니 이제 이 외국 땅 ‘호주’가 집으로 느껴 질만큼은 현실적 안정감을 획득했는데, 그것보다도 더 큰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수확은, 그 시간 동안 나와의 관계 회복을 하게 된 것이다. 


호주에 와서 드디어 내가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데 가장 크게 도움이 된 부분은 현실 지각이었다.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나는 나의 마음의 안정과 삶의 행복/의미감은 외부상황에 달려있다고 생각했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건 '내가 맞지 않는 한국 문화' (외부상황)이라고 생각했고, 나의 성격과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호주 문화에서 살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호주에 와서 아프게 마주한 현실, 그리고 그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다음과 같다.


1) 나는 한국문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라고 느꼈는데, 호주에서도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라고 느껴지는구나. 호주 문화는 내 성격 (개성있고, 튀는 내 모습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에 더 맞을 지라도, 나는 현실적으로 '이방인'이었다 (호주사람들은, 겉으로는 다 친절한데, 섬문화로 인해서, 대놓고는 아니지만 이방인이에게 투명한 유리 벽을 친다. 다문화 국가로 알려진 호주가 은근히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을 나는 이 곳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이 현실자각은 나를 아프게 했지만, 그 아픔을 통해 나는 큰 배움을 얻었다.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뺏어갈 수 없는 나의 내면의 자원/삶을 살아가는 도구는, 나 자신과의 건강한 관계, 그리고 나와의 관계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구나. 


2) 호주에서 지난 6년간 아주 열심히 노력해서 (첫 1-2년은 하루 4-5시간 이상 못잔 거 같다. 현실적인 세팅을 하느라 - 호주 심리석사 과정 따라가기, 병원 수련, 자격증 획득, 임상심리 레지던트 과정, 슈퍼바이저 자격증, 호주병원취직/내 클리닉 세팅, 영주권, 집 사기 등), 드디어 내가 한국에서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고 꿈꾸던 세팅을 다 마련했다. 그런데 그 후에 허무함과 혼란이 찾아왔었다. 내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었던 목표에 도달했는데, 나는 여전히 내 삶과 내가 부족하게 느껴졌고, 여전히 불안정하고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 때 생각했다. 

"잠깐, 이건 끝없는 루프 쟎아. 내 욕망은 끝이 없구나. 간절히 원했던 것을 얻어도, 더 채워가야 하는 부분, 부족한 부분, 그 것을 채워가야 하는 압박감에 또 사로잡히게 되는구나. 인간은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존재이구나. 노자 도덕경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 그 말이 참 맞다. 무엇을 더 채우려하나. 내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마음의 평안함/안정감은 외부적 환경이나 외적인 성공이 아닌나와의 관계 회복에 달려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과 삶을 감싸안자".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 유재하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쳇바퀴 돌듯 끝이 없는 방황에 오늘도 매달려 가네 거짓인 줄 알면서도 겉으로 감추며 한숨섞인 말 한 마디에 나만의 진실 담겨 있는 듯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나는 나와 평생을 항상 함께 살았는데도, 나 스스로와의 관계는 항상 나에 대한 미움, 비난, 채찍질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는 나는 “예민함”을 포함한 내 생겨먹은 모습 그대로를 처음으로 비판 없이, 평가 없이, 온전한 호기심과 궁금함을 가지고 말을 건네주고,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치 평생 적이었던 존재와 ‘우리 이제 그만 싸우자. 처음부터 서로를 다시 알아가 보자. 어차피 너랑 나랑은 평생 같이 살아야 하잖아. 그러니 우리 이제 친구가 되어보자’라고 평화협정을 시도하기 시작한 느낌. 나의 “예민함”은 여전히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예전처럼 나를 압도할 만큼 괴로운 존재가 아니다.   


나는 이제 나 스스로를 ‘예민하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감정과 생각이 풍부하고 깊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이 사회에서 ‘예민하다’라는 표현은 (한국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sensitive’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쓰이는 듯하다. ‘예민하다’라는 표현 대신 ‘나는 생각과 마음이 풍부한 (Rich in feelings and thoughts) 사람이라는 표현을 의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언어가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은 이미 언어심리학자들이 증명했는데, 정말 이렇게 내 머릿속에서 또는 입 밖으로 나 자신을 서술하는 방법을 바꾸는 순간, 나는 나의 깊고 많고 풍부한 마음과 생각의 경험들과 조금씩 더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건 장점도 아니고 단점도 아니고 그냥 나의 모습인 거고, 그 모습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도움이 되는 ‘자원’이 될 수도 있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남들보다 더 많이, 깊고, 풍부한 생각과 감정들을 매일 경험해야 하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크니 불편하기도 하지만, 자원이 되기도 한다. 특히 심리상담 일을 하며 다른 사람들을 도울 때에.


생각과 감정의 풍부함이 나의 자원이 될 때

호주 공립병원 식이장애 전문 정신병동에 지난 2년간 여러 차례 입퇴원을 반복하는 환자 A가 있다. 현재 40대 가까이 되는데, 10대 초반부터 거식증을 앓았고, 거식증으로 생명이 위험해질 순간들을 반복하며 살아,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며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있는 환자다. 그녀는 자신의 거식증은 자신에 대한 처벌의 목적으로 쓰인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은 가치가 없고,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그래서 자기는 예쁜 옷을 입는 것, 침대에서 자는 것, 머리를 예쁘게 꾸미고, 화장하고 등등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없고, 먹는 것도 허용할 수 없다고.

“왜 당신은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없어요? 왜 당신 스스로는 가치가 없고, 그렇게 안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질문하며 시작된 이야기에서 그녀는 자신이 왜 ‘나쁜 사람’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증거를 댔는데, 그중 하나가 “예민함”이었다. “나는 너무 예민해서 내 주위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해요”.  


원래 상담자는 심리치료 장면에서 ‘자기 개방’하는 것을 윤리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조심해야 하는데 – 개인적인 정보든, 자신의 심리 상태든 – 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는 선택적으로 나눌 수 있다. 치료 도구로 안전한 수준에서만. 그래서 나는 내가 나의 불편한 점이라고 느끼는 것들 (‘나는 생각과 마음이 항상 많고, 깊어서 피곤해요’, 나는 표현을 엄청 많이 해요, 사람들이 오버한다고 생각하고 부담스러워할까 봐 걱정을 하는 경향이 있어요’ 등)을 같이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에게 나의 그런 점들이 자기에게는 긍정적인 부분으로 보인다고 했고, 나의 생각과 마음이 풍부한 점이 자기를 포함한 환자들이 깊게 이해받고 공감 받는 다고 느끼게 만들어준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표현이 풍부한 모습은, 따뜻함,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와서 환자의 입장에서 심리상담가/심리학자에게 마음을 여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A씨도 스스로의 ‘예민함’이 자신의 단점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럼 A 씨의 ‘예민함 – 생각과 감정이 풍부한 것’도 A 씨의 긍정적인 면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


그리고 "예민함" 대신 "감정과 생각의 풍부함 - richness in feelings and thoughts "으로 다시 이름을 붙이고 이것이 불편할 수 있지만 동시에 나만의 '슈퍼파워'가 될 수 있는 부분을 함께 탐색했다.


 

그녀가 상담 후에 그녀의 유머스러움과 창의력을 이용하여 만든 리마인더 카드 :)

What is your superpower? (너의 슈퍼파워는 뭐니?)

Can you fly? Can you turn invisible? Can you time travel? (날 수 있는 것? 투명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것? 시간 여행 할 수 있는 것?)

No! I am rich in feelings!! (아니! 내 슈퍼파워는 감정이 풍부한 거야!)



그녀는 아직도 뿌리 깊은 자기 비난/혐오를 극복하는 과정과 식이장애 치료를 병동에서 받고 있지만, 최소한 자기 비난/혐오에서 ‘예민함’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자유로워지고 있는 듯하다. 이제 ‘자신의 풍부한 감정과 생각’에 대해 괴로워하는 것이 아닌 ‘슈퍼파워’라는 표현을 쓰며 나와 농담도 주고받는다. 그만큼 그녀는 자신의 그런 부분에 대해서 조금씩 편안함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나는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감싸 안으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오늘 글의 주제에서 다룬 ‘예민함’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모든 특징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모습조차도, ‘좋고, 나쁘고’  또는  ‘장점, 단점’으로 나누어서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주고,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 즉 내가 나와 편하게 동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이자 의미, 과제가 아닐까 싶다.  


덧.

이 글에서 다루는 "예민함"의 정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예민함"이라는 단어는 '감정과 생각이 풍부함 (sensitive)'을 뜻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상황을 과도하게 해석하고 반응하는 모습(overthinking/overly reactive)'을 의미하기도 한다. 내가 이 글에서 나누고 싶어던 이야기는 바로  '감정과 생각의 풍부함'의 측면에서의 예민함에 관한 것이다.  

'특정 상황에서 과도하게 반응하는' 예민함은 '감정과 생각의 풍부함'과는 별개로(?) 자신의 과거 경험이나 여러 이유로 생겨난 자동적인 왜곡된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를 인식하고 보다 현실적인 해석으로 바꾸는 노력을 통해 다스릴 수 있다. 나의 '과도 반응하는 모습'으로서의 '예민함'을 다루는 이야기는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고,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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