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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여행자 똥씨 Mar 18. 2024

운수 안 좋은 날들

극단적 수용 + 결과물에서 자유로워지기

그럴 때가 있다. 모든 일이 이상하게 자꾸 꼬일 때.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자잘하게 신경 쓰이는 일이 계속 일어나지?' 싶을 때. 요즘 내가 그런 시기를 지냈다/지내고 있다.


한 가지 한 가지 일을 보면 그렇게 스트레스받을 일도 아니었고, 그냥 처리하면 되는 일들이었는데, 이런 일들이 자잘하게 몇 주동안 계속해서 일어나면서, 이미 해야 할 일들이 많은 상태에서 나의 한정된 에너지와 시간을 조절하기가 어려워졌고, 며칠 전 아주 작은 시스템 에러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내 스트레스 레벨이 너무나 높아져버렸다. 이 사건 하나에 대한 반응으로는 좀 지나친 스트레스 반응. 일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잘한 문제들에 대해 너무나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는 나를 보고 나는 정말 놀랐다.


"나 왜 이렇게 반응하지? 나 뭔가 문제가 있나? 왜 이렇게 작은 일에 쉽게 스트레스받고, 그 스트레스 관리를 못하지?"

내가 뭔가 문제가 있는 건지 (내적 요인인지), 아니면 계속되는 자잘한 스트레스받는 상황에 계속 노출이 되어 나오는 당연한 반응인 건지 (상황 요인인지), 이 중 어느 것 때문에 내가 이러는 건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위의 '원인'을 찾아내려는 노력 속에 수치심, 자책 목소리가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가뜩이나 스트레스 관리가 안돼서 힘들어하는 나를 '내가 뭔가 잘못됐나? 나 왜 이러지?'라는 수치심과 자책 섞인 목소리로 추가적으로 더 힘들게 아프게 하는 것을 그만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왜 이러는지 원인 찾는 것 그만하고, 대신 해결책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유가 어쨌든 상관없이 앞으로  이런 나를 앞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하지?"

 

며칠을 곰곰이 생각하다 떠오른 생각.

"맞다. 인생은 항상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지, 그게 인생이지"

그럼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을 나는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까?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나는 이 상황에 알게 모르게 온몸을 다해 저항하고 있었다.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자잘한 문제들이 툭툭 튀어 날 때마다 자동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는 거쟈나. 왜 일어나면 안 되는 일들이 나한테 일어나. 인생이 나를 이렇게 대하면 안 되는 거쟈나!" 하고 거부, 저항,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다시금 말해줬다.

"항상 인생이 나를 '잘 대해줘야'한다는 법이 없어. 누구의 인생도 항상 완벽하게 문제없이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 게 세상 이치인데, 내가 인생의 자잘한 힘듬에 불평하고, 삶에게 저항하고, 인생의 이치를 거부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그런 나의 태도가 내 에너지를 더 빼앗아 가서, 스트레스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태가 되었던 거겠구나"


이런 생각이 든 후에는 갑자기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 수용'하고 싶어졌다.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지금 이게 내 '운세'라면, 그냥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 운세를 맘껏 품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RADICAL ACCEPTANCE" - 극단적 수용

다 덤벼봐. 문제들아, 나를 더 찾아와라.

삶의 운세가 원래 up and down이 있는 거라고 하는데, 사주팔자에서도 우리는 그런 흐름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거라고 하는데, 내가 지금 이렇게 자잘한 어려운 일들을 경험할 시기를 지나야 하는 '팔자'라면, 그 팔자를 내 온몸으로 환영해 주겠다!



그리고 치료자로서 일하면서 배운 교훈을 내 개인적인 삶에도 적용해 보기.

환자들/내담자들과 일을 하다가 보면, 그들의 심리적 아픔에서 오는 행동들에 내가 자극이 될 때가 있다.


특히 식이장애 병동에서는 그런 순간들이 더 많이 찾아오는데, 식이장애로 감정 조절, 인지 능력, 신체적 상태 모든 면에서 기능이 저하된 환자들은 '식이장애와 동반하는 다른 심리적 장애'들로 '어려운' 행동들을 많이 보인다. 치료자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려고 해도, 환자들이 나아지지 않거나, 혹은 그런 치료를 제공하는 우리에게 화를 내거나, 공격적으로 나올 때. 그럴 때는 정말 다반사이다.


그래서 처음 식이장애 병동에서 일하게 되는 치료자들은 그런 환자들의 반응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려고 하는데, 오히려 환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는, 또는 환자들이 나아지지 않는)으로 인해 환자들의 반응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여 감정이 다치게 되거나, 치료자로서의 스스로의 자질을 의심하게 되거나, 스트레스에 압도당해 번아웃이 오거나, 무기력해지거나 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지난 2년 조금 넘게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그런 스트레스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차분히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고, 치료자로서의 내 역할에 전념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했다.


치료자로서 마음 평정심을 유지하고, 꿋꿋이 내 일을 해나갈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는
세 가지 기본 마음 가짐


내 마음 반응 읽어주고, 인정해 주고, 이해해 주기: 나도 인간이니, 저런 환자들의 반응이 나올 때 자동적으로 스트레스받거나, 다양한 어려운 감정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임상적 사례 개념화 사용하기: 환자들의 어려운 행동들/치료의 차도가 없는 상황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여 지나친 감정 압도를 당하지 않게, 환자들의 케이스를 항상 머릿속으로 사례개념화 하는 연습. 환자들의 어려운 행동을 환자들의 '질병' 또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방법'(가끔 공격적인 행동도 도움을 요청하는 울부짖음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등으로 임상적으로 해석하기.


결과물/성과에서 자유로워지기: 지금 내가 하는 행동/내가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내가 접근하는 방식이 내가 되고 싶은 치료자의 모습인가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것에 대해 환자들이 반응하는 결과물에서는 자유로워지기.환자들의 반응은 수많은 요인으로 인해 나오는 거고 (그들의 성격, 히스토리, 질병), 그 모든 것을 내가 다 통제하고 고칠 수는 없다. 나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그러니 나는 환자들의 반응/결과물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오늘도 내가 지향하는 '치료자'의 모습으로 환자들을 대하고 있나에만 초점을 맞추자.


그래서 요즘 다시금 다짐했다.

지금 이런 똥멍청이처럼 느껴지는 내 마음반응 (스트레스 쉽게 받는)을 읽어주고, 인정해 주고, 이해해 주자.

나의 이런 반응을 '가능하다면' 사례 개념화를 해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무엇보다, 결과물/상황/사람들 반응에 신경을 덜 쓰자. 나는 내가 오늘 하루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 내 가치에 초점을 맞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만 초점을 맞추자.


삶의 투닥투닥 자잘한 골칫거리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것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자.

아,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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