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험은 소중하다
일 시작 전 오전에 아침운동을 하면 무거운 몸과 마음이 좀 가벼워지고, 일을 할 수 있는 그래도 괜찮은 컨디션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새벽같이 체육관에 운동을 갔다가 일 시작 시간에 맞추어 부지런히 운전을 하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큰길에서 우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직전에서 내 앞에 가던 차가 갑자기 차선을 인도 쪽으로 바꾸더니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은 채 전봇대를 들이받았다. 그리고 바로 전복되었다. 나는 그리고 그 차 바로 뒤에 있었다.
길에서 자전거를 타던 사람들과, 우리 동네 주민들이 다 몰려나왔고, 곧 앰뷸런스, 소방차, 경찰들도 도착하고, 길은 통제되고, 나는 '유일한 목격자'여서 경찰들에게 인터뷰도 당하고.
전봇대가 뿌리까지 뽑혀서 이 동네 전기가 순식간에 나가버렸다. 집에서 비디오 세션을 하루 종일 하는 날이니, 전기가 안 들어오면, 방법이 없다. 직전에 내담자들에게 연락하여 하루 일 스케줄을 다 취소했다.
전봇대가 언제 쓰러질지 몰라 집 앞 도로도 통제되고 (우리 마을 주민들은 밖으로 못 나가는 상황이 되고), 전기도 나가고 (오늘 호주 멜버른은 37도였다),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나서, 경찰한테 진술까지 하고 바글바글 군중/마을 사람들과 이 사건 현장 속에 한참 노출되어있다 보니, 나는 정신이 없어졌다. 원래 에너지가 많고, active 한데 거의 hyperactive 지나친 흥분 상태였다. 쇼크로 인한 반응 같았다. 하지만 트라우마 반응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몇 시간이 좀 지나니, flashback 자동차 사고 난 그 장면이 갑자기 뜬금없이 훅훅 떠오르고, '으- 끔찍해' 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고 그러다, 오후쯤 되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설사를 하고 그러기 시작했다. 몸도 알게 모르게 놀랐나 보다. 아 이게 지연된 트라우마 반응이구나.
즉, 위의 상황은 전혀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다.
저녁이 되어 몸과 마음이 좀 진정이 되고, 파트너와 함께 정전 속에서 저녁을 먹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파트너에게 이렇게 마음을 나누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오늘 있었던 '유쾌하지 않았던 일' 속에서 너무 소름 돋게 감사한 순간들이 많았어. 나는 종교는 없지만, 하나님이 정말 나를 보우하고 있고, 나의 작은 신음 소리까지 다 듣고 계시다는 느낌이랄까?
생각해 봐.
1. 나는 오늘 체육관에서 운동 끝나고 집에 바로 올까 하다가, 체육관 앞바다와 하늘이 너무 예뻐서, 30분 정도 더 남아서 바다수영까지 하고 올까 고민을 잠깐 했었어. 나 보통 항상 체육관 트레이닝 끝나고 고민하잖아 - 바다수영까지 하고 올까 말까. 하기로 하면 하고, 말기로 하면 안 하고. 오늘은 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바다에 허벅지까지 담가보고 그 담에 결정하자 했지. 바다도 하늘도 오늘따라 너무 예뻐서, 허벅지까지 담그고 나니 이건 무조건 수영을 해야 할 느낌이었어. 그런데, 이상하게 그냥 집에 가야 할 것 같더라. 일 시작 1시간 전에는 가야지. 괜히 일 시작 전에 서두르지 않게, 오버하지 말고 집에 가자. 그래서 바다에 들어갔다가 그냥 차로 돌아온 거야. 나 한 번도 이러지 않았잖아.
만약 내가 그때 바다 수영을 했더라면,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쯤 사고 후라 우리 집 앞 도로는 이미 막혀있었을 테니 나는 길가에서 하루종일 피곤해하며 있었어야 했겠지. 왠지 모르게 집에 딱 그 타이밍에 온 게, 이 사건 사고 속에 그나마 집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게 만들어준 거 쟎아.
2. 그리고 나 며칠 전부터 이상하게 너무 슬프고, 지쳐서, 울고 싶었는데, 체육관에서 운동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드디어 울컥한 마음이 확 올라왔거든. 일 시작 하기 전에 너한테 (=파트너) 마음을 털어놓고, 울고 싶은 마음 울면서 풀어내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래서 집에 오는 길 너한테 전화해서 너한테 부탁했쟎아- 너 볼일 보러 어디 나가지 말고, 나 오전 세션 시작하기 전까지만 집에 있어달라고. 보통 그냥 바로 전화하면서 너에게 털어놓거나, 집에 도착해서 털어놓거나 하는데, 왜 갑자기 오늘은 너한테 전화해서 '집에 있어달라고' 부탁을 했을까? 나 그랬던 적 없잖아. 근데 그랬으니까 너도 집에 남아있었고, 하루종일 밖에서 집에 못 들어오는 일이 없었지. 너랑 내가 함께 집에 있을 수 있었지.
3. 여기로 우리가 이사 온 지 이제 1년 정도 되어가는데, 이 타운 사람들이랑 오고 가며 Hi How are you는 하면서 웃음과 친절함을 주고받지만, 사실 소속감이나 유대감은 못 느꼈거든? 그냥 예의상 서로 친절한 느낌. 그런데, 이 사고 오늘 났을 때 우리 동네 사람들 다 나와서 한 팀으로 같이 모여 있을 때 처음으로 소속감과 유대감을 느꼈어, 함께 공유하는 어려움 속에서. 그리고 나 사고 목격하자마자 우리 앞집 Richard가 막 출근하려던 참이어서 내가 사고 났다고 길로 못 나가게 했는데, Richard가 처음 한 말이 'are you okay' 였어. 그리고 줄줄이 나온 다른 동네 주민들도 제일 먼저 나 괜찮은지부터 체크하더라. 나는 내가 괜찮은지 체크하는 것은 전혀 우선순위가 아니었어. 사고당해 전복당한 차 안에서 부상당한 사람들 앞에서 내가 괜찮은지가 뭐가 중요해. 나 조차도 나에게 물어볼 생각 안 한 그 질문을 동네주민들은 제일 처음 물어봐준 게 나는 그렇게 감동이었어. 그리고 그분들이 나보고 오늘 중요한 일들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오늘 집에서 일하는 날이면 일 다 취소하라고.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도 이거 은근히 몸에도 마음에도 쇼크여서 오늘 생각 제대로 하기 힘들고, 정신없을 거라고. 오늘 일하면 안 된다고.
그 순간에는 '쇼크는 무슨 쇼크. 나는 괜찮아. 일 할 수 있어' 했는데, 뭐 전기가 나갔으니 어쩔 수 없이 취소하기는 했지. 근데, 주민들이 '일하지 말라고' 하는 게 그렇게 고맙더라. 내가 나름 정신없는 것에 대해서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읽어주고, 나의 안녕감을 위해 걱정해 주는 게 그렇게 이해받는 느낌과, 지지받는 느낌 들더라.
그리고 하루종일 모든 주민들이 종종 나와서 현재 도로 상황/전봇대 고쳐지는 상황 확인하고, 서로 대화 나누고. 그 때 여기 와서 처음으로 여기 주민 사람들과 한 팀이라고 느껴졌고, 소속감을 느꼈어.
4. 그리고 너랑 우리 옆옆 집 아저씨랑 한 달 전인가 약간 다툼이 있어서 우리 사이 어색했었잖아. 그런데 오늘 사건 이후에 주민들끼리 계속 나와서 사고 상황/사고 복구 상황 서로 업데이트해주면서, 너랑 그 아저씨도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 따뜻하게 말 주고받게 되었잖아. 인간관계에서 자잘한 갈등과 관계회복 반복하면서 관계가 끈끈해지는 거잖아. 그 과정을 너랑 옆집 아저씨가 하고 있는 걸 보는 것도 감사했어.
5. 그리고 이 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인간미가 있다는 것을 느낀 것도 너무 감사했어. 심리학에서 bystander effect (방관자 효과)라는 게 있는데, 사고가 났을 때 군중이 모여들면, 군중들이 많으니,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겠지 하고 결국 그 어느 누구도 사고당한/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막상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건데, 오늘 우리가 본건 그 반대였쟎아. 경찰, 소방관, 구급차 오기 직전에 그 짧은 찰나에 도로에서 자전거 타고 가던 세 남자분들이 우리 쓰레기 수거 날이라 내놓은 모든 쓰레기 통들을 이용해 도로를 막고, 지나가던 주민들이 다 모여서 차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사람들 보살피고, 경찰 등등 다 신속하게 연락하고. 지나가던 낯선 사람들이 다 한 팀이 되어 이 사고 현장을 도왔어. 이 세상 너무 따뜻하다 느꼈어. 막상 나는, 제일 처음 그 상황을 목격한 나는, 순간적으로 '나 얼른 집에 들어가서 세션 준비해야 하는데' 였거든? 그랬던 내가 부끄러워지고 반성하게 되더라
6. 나 그리고 사실 오늘 오늘 아침 너무 마음이 안 좋았거든. 할 일들은 많고, 머리도 몸도 빠릿빠릿 움직여줘야 할 때인데, 내 시스템이 며칠 전부터 너무 삐그덕 거리고, 정신이 가출한 느낌이랄까.
'미라야 정신 차려야 해. 너 지금 되게 바쁜 시기야. 해야 할 일들이 많아.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돼. 머리와 몸의 에너지가 충만해서 일을 많이 빨리 해야 할 때란 말이야' 계속 나를 재촉해 보는데, 나는 계속 힘이 부치고, 스트레스받고, 슬프고, 마음이 마음대로 안되더라구. 그래서 오늘 체육관에서 바다 보며 운동하며,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거든- '하나님, 저 오늘 하루 일 할 자신이 너무 없어요. 마음 에너지가 너무 충전이 안돼요. 충전 좀 시켜주세요'. 그러다가 또 나 스스로를 다독여보려고, '네가 이런 적이 한두 번이야. 언제 맨날 100% 좋은 에너지로 충전되기만 했니. 마음과 몸이 피곤하고,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 마음이 복잡해도 일은 항상 잘 해왔잖아. 그러니 괜찮아. 너는 할 수 있어.'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였어 열심히.
그런데, 정말 이 사고로 인해서, 정전이 되고, 전봇대가 언제 복구되고, 전기가 다시 들어올지 모르니, 어쩔 수 없이 세션들을 취소해야 했잖아. 근데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 하나님이 나에게 하루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강제로 일을 하루 쉬게 하신 건가.
여러모로, 오늘 하루 유쾌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고, 몸과 마음이 받은 쇼크로 좀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 유쾌하지 않은 일을 통해 감사한 일들을 더 많이 경험한 것 같아.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나 봐. 너무 감사하다 그렇지"
그리고 파트너와 인생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들도, 지나고 보면 다 얼마나 의미가 있었는지, 삶의 모든 순간들은 좋고, 나쁜 순간 없이 다 의미가 있는 순간들이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인생을 이끌고 가는 게 아니라, 인생이 우리를 이끌고 가는 여정에 우리가 몸과 마음을 맡기고 가는 거라고. 예상치 않은 불쾌한 일들도 다 우리 여정의 일부고, 의미 있는 순간들이라고.
"인생은 후회할 일들이 없어. 다 우리가 거쳤어야 했던 일들이야. 그 일들을 통해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거야. 과거의 나에게 '조언' 해주고 싶은 거 없어. 그때 부족했던 대로, 모르는 대로, 그때 나는 그런 실수들과 아픔들과 경험들을 했어야 했던 거겠지. 그게 우리 인생의 여정이 우리를 이끄는 곳이었겠지. 그래서 지금 우리가 지금의 우리인 거겠지. 우리 나무의 나이테 하나하나가 참 소중하다.
오늘이 그리고 그런 좋은 예다, 그치? 모든 경험이 의미 있다는 그런 예"
그리고 우리는 하늘을 보며 ‘감사합니다!’ 라고 농담처럼 하지만 진지하게 소리내어 말하고 같이 웃었다.
"근데 궁금하다 벌써 저녁 8시인데 얘네 전봇대 고치고는 있는 거야? 오늘 안에 전기는 들어오는 거야? 우리 찜통더위 속에 자는 건가, 냉장고 냉동고 속에 음식은 어찌 되는 걸까? 궁금하니까 나가서 현재상황을 확인하자.“
집 앞 도로는 어느새 통제가 풀리고, 새 전봇대는 설치되어 있었다.
"음? 근데 왜 전기는 아직 안 들어오지?" 둘이 의구심을 품으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 들어온 순간 전기가 짠하고 들어왔다!
둘이 그랬다. "10분 전도 아니고, 10분 후도 아니고 어쩜 지금 딱 이렇게 전기가 들어오니. 마치 우주가/하나님이 우리가 감사하다고 한 얘기 듣고, '아구 기특하다. 트라우마 반응으로 힘들었을 텐데도 이 우주 섭리에 고마움을 느낄 줄 알다니 기특하네. 옛다 선물이다!' 하고 딱 그 순간에 전기를 들어오게 한 거 같이 느껴지지 않아? 타이밍이 기가 막히지?"
그러면서 둘이 소년소녀가 되어 깔깔대며 좋아했다. 행복해했다.
마음이 마구 어지러웠던 요 며칠.
딱히 꼬집어 특별히 나를 지치게 할 만한 특별한 상황도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모든 것이 힘에 부치고, 스트레스받고, 자꾸만 슬퍼졌던, 그래서 내 마음과 상태가 당황스러웠던 요 며칠.
그런데 해야 할 것들은 너무 많이 쌓여있어서, 요즘 자꾸 한숨이 푹푹 나왔었다. 요즘 병동 상황도 안좋아, 병동에서 일하고 오면 온 에너지가 다 빠지고, 심리검사 보고서들, 새로 시작되는 강의 준비, 슈퍼비전 준비 등 해야 할 일들 리스트에 마음이 압도가 되었었다. 마음이 너무 무겁고, 마음이 무거울수록 마음 관리가 안 돼 시간관리는 더 안되고. 내 시스템은 더 마비되고.
그리고 요즘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긴장을 하면 바로 잠을 설치기 시작하는데. 요 며칠 잠을 설치고, 어제저녁도 잠을 설치고, 그러다 오늘 새벽녘에 깨기 직전에 어렴풋이 기억나던 마지막 꿈의 장면 - 누군가에게 '인생 참 안 쉬운 것 같아. 관계도 그렇고. 사는 것 쉽지 않다' 그렇게 솔직하게 어떤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나누다가 깨니 새벽 4시 반이었다. 파트너가 내가 깬 걸 느끼고, 자기 품에서 더 쉬라고 자라고 안아줬는데 그때 갑자기 그 품 안에서 펑펑 울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러면 곤히 자고 있는 파트너도 깨울 것 같고, 어차피 오늘 할 것도 많고, 오전 세션 시작하기 전에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내기 위해 체육관에 가서 한바탕 운동도 해야 할 것 같고, 그냥 새벽에 깬 김에 하루를 일찍 시작하자.
보통 눈 뜨자마자는 약간 멍하다가, 나의 아침 루틴 - 커피, 화장실, 베란다에서 아침 일기, 고양이 밥 주기 - 하다 보면 정신이 돌아오는데, 오늘 아침은 정신이 계속 멍했다. 정신이 없다고 하나. 그래서 핸드폰 보는 것 좋아하지도 않는데, 베란다에서 일기장을 펴놓고 한몇 줄 써내려 가지도 않고,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열어 멍을 때리고 30분 넘게 핸드폰 만지작하며 내 소중한 아침 시간 30분 넘게 보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놀랐다.
'뭐 하는 거야 나'
핸드폰에 멍하니 홀려있는 나를 구출할 정도만의 정신줄을 붙잡고, 준비해서, 운전하고 체육관으로 갔다.
운동하면서, 스쳐간 생각들:
-인생 참 안 쉽다. 관계도 참 항상 안 쉽다. 내 마음도 안 쉽다. 사는 거 그냥 너무 안 쉽다.
-요즘 종종, 담배를 피우고 있는 중간에, 담배나 펴야겠다 하고 담배를 찾고 있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삶에 지친다는 느낌이 들 때, 그래도 삶을 살아가야 할 때,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을 통해 잠깐의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맛보는데, 그 담배를 피우는 순간에도 담배를 찾으면,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끼게 위해 나는 뭘 더 해야 하는 거지. 그리고 그 때 나는 약간 길을 잃는 느낌을 받는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순간에, 담배를 찾는 내 모습이 지금 내가 얼마나 답답한지를 좀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예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다 잘할 수 있어.' 이렇게 나를 위로하다가 이 말은 내 안에서 튕겨져 나오고. '나 잘 못할 것 같아서 지금 괴로운 거잖아! 마음에 와닿지도 않은 사탕발림 말 하지 마!' 하고 나는 나에게 반항했다.
그래서 '괜찮아. 새로 시작하는 강의도, 슈퍼비전도 잘 못해도 괜찮고, 하다가 실수해도 괜찮아. 한동안 바보 같은 마음에 빠져있었던 것도 괜찮아. 이유 없이 자신감이 갑자기 뚝 떨어져도 괜찮아. 힘들어 해도 괜찮아. 인생 별거 없어' 이러면서 가까스로 나를 위로했다.
내 마음은 오늘따라 너무 슬프고, 힘든데, 오늘따라 내 눈앞에 바다와 하늘은 너무 예뻐서 그것도 너무 아이러니했다.
그렇게 나는 오늘 아침 엄청 센티하고, 마음이 힘들었다.
그래서 집에 운전하고 오는 길에 딱히 왜 우는 건지 나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그냥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도꼭지 열린 것처럼 눈에서 눈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뭔가 해소감도 느껴졌다. '괜찮다/괜찮아야한다/강하게 버텨내야 한다' 라고 스스로 알게 모르게 이야기하며 억눌러 놨던 힘든 마음들이 자유롭게 표현되는 느낌이랄까.
그러던 도중에, 저 사고가 눈 앞에서 딱 하고 난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충격적인 사건 목격, 그리고 그 이후 쇼크반응으로 인해, 요 며칠 나를 압도했던 슬픔, 지침은 난데없이 뒤편으로 사라졌다. 내 멋대로 해석하자면, '하나님이 나 이 기분에서 헤어나오게 해주시려고, 충격요법을 사용하신건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그 하루를 마무리하는 지금 이 순간은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들은 의미 있고, 오늘 하루 참 감사했다'라는 마음만 남는다.
인생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준비해 놓았는지 우리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불쾌한 순간들, 지치는 순간들, 힘든 순간들, 즐거운 순간들, 따뜻한 순간들, 감사한 순간들 종합선물세트를 우리의 인생은 랜덤 하게 매 순간 예측불가능하게 선사한다. 매 순간을, 인생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예측불가능한 경험들에, 겸손하게, 열려 있는 마음으로 살자. 이렇게 다시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