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을 사랑하는 이유
지난 한 주는 꽤 힘든 한 주였다. "비가 오려나, 삭신이 쑤시네"라는 말이 이제 나에게도 해당되는 나이가 된 것 같았다. 몸살은 아니었지만, 뼛속까지 몸이 쑤시는 느낌이 며칠 내내 계속됐다. 호주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계절의 변화, 여기에 더해 내게 찾아온 헤이피버 알레르기까지.
일정도 갑자기 바빠졌다. 많은 일과 나빠진 몸 상태로 인해 평소보다 더 생존 모드가 됐고, 마음의 에너지도 바닥나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몸의 쑤심이 너무 심해 파트너에게 목과 어깨 마사지를 부탁했다. 파트너의 따뜻한 손길에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그 순간의 따뜻함이 얼마나 필요했는지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지쳐있었는지,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얼마나 긴장되어 있었는지 실감했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그리웠었구나.
특히 지난주는 어른으로서의 책임감과 삶의 무게가 유난히 더 무겁게 느껴졌다. 올해 초부터 일 세팅에서 변화를 시도했고, 그에 따른 책임감이 내게 크게 다가왔다. 경제적으로, 직업적으로, 개인적으로 삶을 책임지는 것이 총체적으로 유난히 더 외롭고 무겁게 느껴졌다.
어쨌든 어른이 되었으니 어른으로 살고 있고, 나만 어른으로 사는 건 아니니 그러려니 하자고 머리로는 생각했지만, 내 안의 어린아이는 나도 모르게 좀 지쳐하고, 어딘가에 기대고 싶고, 위로받고 싶었나 보다. 파트너와 한국에 계신 부모님에게 내 마음을 조금 털어놓기도 했지만, 결국 이 길은 혼자 걸어가야 한다는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그 마음이 쓸쓸하고 무거웠다.
보통 이렇게 몸과 마음이 지칠 때는, 세션을 시작하기 전에 '아 오늘 하루 주어진 일들/세션들 제대로 해나갈 힘은 있어야 하는데, 제발 무사히 잘하기를' 하고 기도한다.
그런데 지난주 어느 날은 일 시작 전 항상 느끼던 '이런 몸과 마음 상태로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나 '제발 잘 해내야 하는데'라는 간절함 보다는, '잘할 거야'라는 뭔지 모를 평안함이 느껴졌다.
'내 마음의 무거움/지침은 내 마음인 거고, 상담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을 돕는 건 충분히 나는 잘할 수 있어. 내 마음의 상태와 상관없이 일을 할 때는 상담자로서 올인해왔잖아.'라는 불쑥 튀어나오는 든든함.
그리고 '미라야, 오히려 너 마음이 약해졌을 때 상담이 더 잘 됐던 적도 많아. 내담자들의 아픔이나 힘듦을 더 겸손하게 잘 공감할 수 있었었잖아. 약함이 니 강함이 되는'
이런 마음도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쭈, 어른으로서 사는 거 징징대면서도 어른이 되어가는 면도 있구나. 경력/짬밥의 힘이 있긴 있구나'.
그렇게 평소 나 같지 않게, 약해진 내 마음에 겁내지 않고, 덤덤하게 평안하게 일을 시작했는데, 시작할 때의 내 마음가짐처럼, 내 약함이 상담 시 더 큰 힘이 되고, 나의 공감 능력을 높여주는 것을 경험했다. 나의 진심이 내담자들에게 잘 전달되었고, 그들로부터 따뜻한 반응을 받았다.
한 예는, 한 중년 가장 아저씨 내담자와의 세션이 그러했다. 그의 고백은 나의 고백같이 느껴졌고, 어른으로서 살아가며 느끼는 인간의 공통적인 경험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이렇게 힘든 얘기 누구한테 나누겠어요. 아내한테, 자식들에게, 혹은 노부모님들에게 나눌 수도 없잖아요. 괜히 그 사람들 걱정만 시키고,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결국 제가 혼자 가장으로서 강하게 버텨야 되는 거니까. 머리로는 아는데, 막상 그 짐을 어디에 나누지 못하고 혼자 다 안고 살아가는 것이 감당하기가 힘들긴 했어요. 그런데, 이 공간에서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이렇게 날 것으로 마음의 힘든 부분, 혼자서 안고 있던 짐들 나눌 수 있으니 그것 자체가 큰 위안이 되네요. 혼자서 짊어지고 있던 삶의 짐을 털어놓고, 같이 상의하고 나눌 사람이 있으니 한결 가볍게 느껴지고, 나아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네요."
그분의 그 덤덤한 한마디 한마디 나눔이 그냥 느껴지고, 이해가 되었다. 또 그 말이 나에게 너무 따뜻하게 위안으로 다가왔고, 감사했다.
개인적으로 삶에 대한 책임감에서 오는 무거움, 혼자서 걸어가는 여정이라는 것에서 오는 무거움의 추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던 찰나였고, 기댈 수 있는 누군가의 따뜻한 품과, 지쳐있는 나의 손을 잠깐이라도 함께 잡고 걸어가 줄 누군가의 존재가 그리웠던 찰나에, 나와 다르지만 비슷한 마음 경험을 하는 누군가에게 내가 그런 위로와 따뜻함을 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무한히 감사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상담 공간을 안전하게 느끼고, 나라는 타인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기 힘들었던 내면의 깊은 아픔들과 힘듦을 믿고 나눠주신다는 것도, 나를 그분의 인생 여정에 잠깐 같이 걸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는 것도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그냥 그분의 고백이 내 마음 고백 같았고, 그래서 공감을 받았다. 나와는 다른 경험이지만, 인간으로서 공통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그 깊은 감정은 비슷하다고 느껴졌달까.
나만 그런 거 아니야. 어른으로써 우리는 다 그렇게 느끼고 사는구나. 정도와 디테일의 차이는 있어도.
나의 약함이 상담자로서 도구가 되는 걸 내가 깊게 믿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날.
나의 약함이 상담자로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은 날.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는 순간들 속에서도 - 인생의 모든 것들이 그렇듯 - 나는 심리상담이라는 일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날.
나의 약함이 소중하고, 이 일이 귀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