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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의창 Jun 19. 2020

어떻게든 가치가 있으리라는 확신 - 그게 잘되는 말든!

목표와 성실, 연대와 디테일이 낳는 더 나음(better)의 순환고리

다시 소설 페스트로 돌아가 봅니다. (이전 글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https://brunch.co.kr/@miraebookjoa/154


'이타적 현실주의자'

로 대변되는 소설 속 리유, 그리고 타루는 슈퍼 히어로가 아닙니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사실 리유와 타루는 페스트를 정복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꾸렸던 보건대에서 (늙은 의사 카스텔이 개발한) 치료제가 될까 희망을 품었던 새로운 혈청마저 실패로 돌아갑니다. 전염병은 그 끝무렵 타루라는 헌신적 인간을 하늘로 데려가기까지 합니다. 소설 속 페스트는 결국 소멸했지만, 이유 없이 창궐한 것처럼 소멸 역시 특별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허무하고 무기력한 결론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또 한편으론 지금 우리 상황과 오버랩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결론이기에. 불안과 두려움을 주는 강력한 전염병 앞에서 우리가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더욱 진지하게 곱씹어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 페스트의 은유를 빌려 여러분과 함께 논의해보고 싶은 '삶/조직에 대한 태도'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 가치 있는 목적과 실험 가능한 목표를]

 

 페스트 소설 주인공이 다른 일반 군중과 달랐던 가장 큰 차이점은 페스트라는 공포스러운 유행성 질병에 온전히 맞서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했다는 점입니다. 철학자 니체는 "삶의 이유를 아는 사람은 삶의 그 어떠함도 견딜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최신 뇌과학, 의학, 조직/경영, 사회과학 이론 역시 뚜렷한 목적/확신이 조직과 개인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동기를 근본적으로 자극하는 핵심 요소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목적'은 분명 분명해야 합니다.

 

다만, 그 목적, 이유는  '막연히 그저 잘되겠지', '이건 무조건 잘되어야만 해'라는 것처럼 막연하거나 단편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체코 출신의 극작가 바츨라프 하펠의 입을 빌려 말씀드리자면, "희망은 어떻게든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다. 어떻게든 가치가 있으리라는 확신이다. 그게 잘되는 말든 상관없이."

 

리유, 타루는 페스트를 자신들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고통 속에 죽어가는 또 다른 동료로서의 인간을 운명론에 기대어 방치할 수 없었기에, 나아가 이미 정해진 한계/실패라 하더라도 일말의 가능성을 두고 투쟁하는 것이 부조리한 세계를 창조한 '신'마저도 바라는 가치 있는 행동이라 믿고 목적을 향했습니다.



 

하나 더, '가치 있는 목적'은 구체적인 목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목적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루고자 한 결과라면 구체적인 목표는 그 결과(목적)를 낳을 수 있는 현실에서 실험/검증 가능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고 행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페스트 극복'이 목적이라면 리유의 동료 의사 카스텔이 수행한 '혈청'치료는 그들이 현실적으로 설정한 '실험 가능한 목표'입니다.


조직/경영에서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목표관리 방식 'OKR(Objective-Key Result' 역시
정확히 이러한 철학과 원리를 따릅니다.  

 목적과 목표는 막연한 희망을 강조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상황의 본질을 똑바로 바라보는 인식과 행동을 요구합니다. 두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움츠려들 거나 도망치지 않고 최소한이나마 우리에게 남은 여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입니다.


 

[둘, 포기하지 않는, 나아가 전략이 수반된 성실을]

 

 앞서 제시한 가치 있는 목적, 그리고 실험 가능한 목표를 관통하는 태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무조건 '해피엔딩'을 견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페스트 극복을 위한 구체적 목표였던 '혈청'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소설 페스트 말미 페스트는 사라졌지만, 말 그대로 사라진 것이지 리유, 타루의 보건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타루는 페스트가 소멸되기 직전, 질병에 의해 희생되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소설을 읽는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적/목표, 행동이 결코 헛되고 허무하고 허망한 노력이 아니었다는 것을. 소설 페스트를 통해 작가 카뮈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 그리고 우리가 동감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실존적 태도, 성실성에 있다는 것을.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중-


  

 다만, 이 성실성에 대해서 역시 우리는 '막연함'과 싸워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성실성은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과 맞닿아 있습니다. 캐럴 드웩 스탠퍼드 심리학 교수에 따르면 '삶에 대한 태도'인 우리의 마인드셋은 고정 마인드셋(Fixed Mindset)과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으로 나뉩니다. 고정 마인드셋은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반면 성장 마인드셋은 인간은 얼마든지 변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입니다. 이 관념의 차이에서 우리는 불확실성, 변동성 높은 그리고 심지어 공포스럽기까지 한 시대에 필요한 바람직한 '성실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적인 속성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적인 속성

  

 1. 최선을 다하고 배우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성공을 찾는다.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함으로써 타인을 정복하려는 함정에서 벗어난다)


2. 실수와 실패에서 좌절감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자극제로 삼는다.

    (그 때문에 실패 앞에서 초연하고, 이를 인정하고 공감을 구하며 다시 시도하는 데 거부감이 없다.)


3. 성공, 성장을 위한 '전략'과 프로세스를 관리한다.

    (실패를 딛고 다시 시도할 때 어떤 시도가 통하고 통하지 않았는지, 어떤 전략/전술이 유효한지를 끊임없이 되묻고 실험하고 개선한다.)


4. 1~3을 기반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근성(Grit)을 가지고 있으며, 이마저도 배울 수 있는 것이라 여긴다.

  

 캐럴 드웩 교수는 진정한 성장 마인드셋, 그에 비롯한 성실성(노력)은 목표에 다가서는 자신만의 구체적 전략과 프로세스를 창조하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실패로 귀결되었음에도 자신이 취한 전략, 행동, 사고를 바꾸지 않고 동일한 행동을 끈질기게 무한 반복하는 것은 참된 성실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진정한 성실성은 행동의 근성을 넘어서 '사고'의 성실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 생각과 긴장이 필요합니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중-

 

 세상의 악함 대부분은 악한 의도 때문이라기보다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한나 아렌트-



  

[셋, 불완전함에 대한 인정과 협력을]


  알베르 카뮈가 활동하던 시기(20세기 초중반), 시대를 둘러싼 학문, 이론은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주류 학문이 가정한 인간은 '호모 에코노미쿠스'였습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은 충분히 합리적인 행위자다.
2. 인간은 완벽한 정보를 소유한다.
3. 인간은 주관적인 효용성을 극대화한다.
4. 인간은 다양한 행위에 따르는 비용과 혜택을 저울질한다.
5. 그런 다음 비용 대비 최고의 이익을 주는 것을 고른다.

  

 

사실 이 같은 가정은 현실에서 온전히 작동하기 힘든 '허상'에 가까웠습니다.


완전한 인간을 가정하고, 그것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인간의 행위가 가능한 한 '변수'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인간의 '인간다움'을 최대한 지우고 기계처럼 표준화하고 평균화해 채찍질하는 당시, 그리고 현재의 조직/경영 이론에서, 현실적인 인간의 미덕은 둘 중 하나였습니다. 그 채찍을 쥘 수 있는 '슈퍼스타'가 되든지, 인간성을 지우고 철저히 조직의 명령에 순종하든지.


 과학, 이성을 내세워 찬란한 미래를 말하던 산업혁명 시기, 인류는 동시에 대 전쟁(제1, 2차 세계대전)과 대 공황이라는 부조리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인간의 삶, 사회는 불완전함의 연속임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삶은 더 이상 책이나 이론 안에서 끼워 맞춰져 본말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더라도 실제 현실 세계 속에서 실재하는 상황을 직면한 채 조직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코로나 이후 우리가 어떤 태도로 우리의 삶을, 그리고 조직을 경영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삶, 사회는
불완전함의 연속입니다.

 


 냉정한 현실은 슈퍼스타, 순종하는 무색무취의 인간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이기적으로 행위하면 자연적으로 사회/정치/경제적 선이 달성된다는 고전 경제/경영학적인 가정과는 거리가 멉니다. 분명한 것은 20세기보다 복잡, 불확실성이 훨씬 더 높은 지금 우리의 시대는 더더욱 그렇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우리 스스로가 불완전함을 겸허히 인정하고, 그로 말미암아 연대하는 것입니다.


리유와 타루가 실패,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인정하면서도 '보건대'를 통해 가치 있는 목적과 목표, 그를 향한 지독한 성실성을 동료들에게 '전염'시킨 것처럼 말이지요. 극의 초반 ‘관념적 담론가, 선동가’ 파늘루 신부도, '도피적 관망자' 기자 랑베르도 '연대'의 힘을 통해 완전한 방향으로 향합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인간을 구원할 유일한 것은 협력이다.'라 주장했습니다. '연대, 협력'의 힘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습니다. 펜실베이니아 와튼 스쿨 교수 아담 그랜트는 조직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슈퍼스타'가 아니라 '기버(Giver)'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에 따르면 조직의 생산성을 이끄는 인재는 자신의 분야에 정통하면서도 이타심을 바탕으로 조직 내외부와 원활한 소통과 협력이 가능한 사람,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에 자신을 연계시킬 수 있는 성숙한 사람입니다.


연대하는 인간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높은 책임감과 능동성을 바탕으로 탁월함을 추구한다.
2. 가치와 과정을 중시한다.
3. 안정적인 자존감을 바탕으로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지 않는다.
4. 겸손하고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으며 진솔하게 소통한다.(앞뒤가 다르지 않다.)
5. 자기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애쓰고, 이와 관련한 책임 편향 - 관계에서 자신이 상대에게 공헌하는 정도를 부풀리는 경향-을 극복할 줄 안다.
6. 자기 직무에 대한 전문성과 스스로에 대한 눈높이에 견주어 타인이나 타 직무를 예단하지 않는다.
7. 이타적으로 대가를 바라지 않고 타인과 동료를 돕고자 한다.
8. 동시에 높고 신중한 안목을 바탕으로 조직 내 이기주의자, Free Rider를 분별하고 대응할 줄 알며 이타심이 자칫 자신을 갉아먹지 않을 정도로 자기를 관리하는 전략을 갖는다.
9. 관계의 상호 의존성을 인식하고 주변을 빛냄으로써 전체를 빛나게 하려고 한다.(승리를 독식하지 않고 공유한다.)

  

 

[넷, 비로소 '더 나음(better)'을 낳는 일상의 디테일을]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요구되는 태도가 있습니다. '디테일'에 관한 것입니다. 혹여 앞서 제시한 일련의 내용에 공감하시는 독자가 계시더라도 분명한 진실은 현실과 그 현실에 마주한 우리의 모습은 여전히 혼돈 그 자체일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삶을, 조직을 영위함에 있어 수없이 가치 충돌에 맞닥뜨립니다. 가치는 당장의 이익 앞에서, 용기는 눈앞의 공포와 두려움 앞에서, 의지는 강력한 습관 앞에서, 때로는 미처 생각하고 어쩌고 할 틈도 없이 우리는 분명히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고 넘어질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태도는 바로 이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판데믹, 거대한 변화에 대처하는 태도


그 시작은 오늘의 일상, 일상 속 디테일에서 출발한 다는 것을 말이지요. 우리 개인은, 그리고 조직은 겉으로는 화려하고 매력 넘치는 다양한 포부와 가치체계를 표방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노력이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또 실천해야 할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품은 목적에 대한 목표, 그에 비롯한 전략과 프로세스, 협력과 연대의 길은 광활한 우리의 무의식, 상상 속 유토피아, 노트, 이 브런치, 혹은 또 다른 SNS에 있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진짜 삶, 문화를 규정짓는 일상의 작은 가치충돌 상황에 대해
책임 있고 확률적으로 일관된 대답을 할 수 있는 태도와 역량을 갖추는 것이 아닐까요.  


   의미 있는 변화는 오늘의 일상에서 수없이 맞닥뜨리는 서로 다른 가치의 충돌을 어떤 태도로 다루고 의사 결정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우리 스스로 내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 응답의 수준이 곧 우리 각자가 사는 세계의 '결'과 '질'을 결정합니다. 그런 면에서 '더 나음(better)'의 순환고리는 결국 일상의 디테일에서 잉태되는 것이 아닐까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첫 소절을 빌려 표현하자면, 이 시대는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요, 지혜의 시대이자 우매의 시대의며,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입니다. 우리는 편리하고 안전한 삶을 누리면서도 동시에 만성적인 불안과 공포 속에 살면서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서 참된 위안을 갈구합니다. 모순이 격화되는 이 시대, 우리의 시선과 에너지를 바깥에 두기보다 우리 내면, 태도(Attitude)에 좀 더 쏟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무게중심의 이동이 우리의 시절, 시대, 봄/겨울을 재정의 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정의한 방식대로.
 

  

<네이키드 애자일>의 공저자, 상효 이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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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창 저자가 함께 전하는  [Trend Letter]  


책을 넘어 독자분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책의 연장선에서 지금 시기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새로운 발견'에 함께해주세요.


#6 <네이키드 애자일> 상효이재 저자 레터 _1

https://brunch.co.kr/@miraebookjoa/154


#5 <배당왕>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저자 레터

https://brunch.co.kr/@miraebookjoa/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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