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메뉴 통일 좀 하지 마세요. 나는 다른 거 먹고 싶단 말야…….” 페이스북의 ‘대신 찌질한 페이지’에는 대놓고 찌질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다. 페이지의 운영자는 감정 제보자의 상황에 맞는 게시물을 만들어주거나 어울리는 상황들을 찾아 업로드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보는 이들이 직접 경험한 듯 생생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디테일’에 있다. 사람들은 찌질함을 대리해주는 게시물에 공감하며 “내가 쓴 글인 줄”이라는 댓글을 덧붙인다.
최근 페이스북에는 이와 같이 감정을 대신 표출해주겠다는 페이지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대신 화내주는 페이지’, ‘대신 욕해주는 페이지’, ‘대신 뻔뻔한 페이지’ 등 대행해주는 감정도 다양하다. 대다수는 그저 재미로 만들었거나 자극적인 콘텐츠로 사람을 끌어보려는 시도이지만 제대로 공감을 얻은 페이지는 팔로워가 수만 명에 이를 정도다. 직접 감당하기에는 후폭풍을 책임질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타인의 사연에 이입해 대리 해소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감정대행을 ‘감정의 외주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섣불리 경험하기 힘든 감정을 느껴보기 위해 감정대리인을 찾는 경우도 있다. 최근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퇴사 방송’이 대표적이다. 퇴사 전 고민과 갈등을 털어놓기도 하고 마지막 출근길에서 느끼는 감정과 퇴사 후 만끽하는 자유 등 퇴사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생중계한다. 마음속에 사표 한 장씩 품고 산다는 직장인들에게 이러한 퇴사방송은 판타지인 듯 판타지 아닌 간접경험을 통해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감정대행은 소비욕을 대신 풀어주는 것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최근 유행하는 ‘명품 하울’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보통 이런 영상에서는 구찌・프라다・에르메스 등 명품 신상을 방 안 가득 쌓아놓고 포장부터 하나하나 열어 보여준다. ‘1,570만 원’, ‘8,000만 원어치 쇼핑’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는 “이것은 돈 자랑이 아니고 예쁜 것을 함께 보고 힐링하자는 것입니다”라는 취지를 소개하고 그와 함께 어느 부분이 예쁘고 눈길을 끌었는지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단다.
이러한 영상에는 실제로 200만이 넘는 조회수와 함께“예쁜 것 잘 봤다”며 만족을 표하는 댓글이 달린다. 한편으로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법도 하지만 이러한 하울 영상을 찾는 소비자들은 정말 예쁘고 귀한 것을 ‘영접’해보는 감정에 충실할 뿐이다. 현실에서는 소확행에 만족할지라도 대리 감정만큼은 최고로 누리고자 하는 이들은 페이크슈머의 진화형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