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프로젝트하다Project HADA’라는 작은 공간이있다. 이곳은 시시각각 성격이 바뀐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일회용 컵 대신 유리병에 커피와 음료를 판매하는 친환경 테이크아웃 ‘보틀 카페Bottle Café’다. 평일 오후 1시가 되면 이 공간은 주인 정다운 씨의 친환경 디자인 스튜디오, ‘이베카ibeka’로 변신한다.
화~금요일 저녁 7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퓨전 파스타와 리조또를 주로 내놓는 심야 식당, '밤키친’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가,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여행과 요리의 만남을 지향하는 ‘트립 레시피 워크숍’이 개최된다. 토요일 오후 4시부터 일요일 새벽 4시까지는 캐주얼 프랑스 식당, ‘아셰프àchef’로,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브런치를 파는 ‘아침aachime’으로 다시 변신한다. 일요일 오후부터는 술집이다. 4시부터 전통주를 파는 ‘배반낭자’가 새벽 4시까지 시간을 채운다. 일주일에 일곱 번 정체성을 바꾸는 이곳은 여건에 따라 자유자재로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 같은 공간이다.
“특정 시간 외에는 노는 공간이 아까워서” 요리와 여행을 좋아하는 가까운 지인들과 공간을 공유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주인장의 소박한 인터뷰와 달리, 이 사례가 보여주는 의미는 작지 않다. 최근 상업 공간의 변화 양상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공간의 변화, 재배치는 매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연희동의 주택가에는 낮에는 작업실이던 공간이 해가 저물면 술집으로 변하는 곳이 있고, 강남역 근처에는 낮에는 옷가게였던 곳이 밤이 되면 옷걸이를 전부 위로 올리고 술집으로 둔갑하는 곳도 있다. 이 밖에도 낮에는 덮밥집, 저녁에는 술집으로 점포가 바뀌는 식의 매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제 공간의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전략이 되었다
우리나라만의 현상도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통 공간이 카페로, 도서관으로, 책방으로, 강연장으로, 전시회장으로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중이다. 현대의 소비 공간은 카멜레온이 주변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색깔을 바꾸듯이 그 용도가 바뀐다는 면에서 ‘카멜레존Chamelezone’이라 부를 수 있다. 카멜레온에 공간이라는 뜻의 ‘zone’을 합성한 신조어다. 카멜레존이란 특정 공간이 협업・체험・재생・개방・공유 등을 통해 본래 가지고 있던 하나의 고유 기능을 넘어서 새로운 정체성의 공간으로 변신하는 트렌드를 말한다.
카멜레존 현상은 현대의 시장 환경이 급변한 데 따른 필연적인 변화다. 온라인이 발달하면서 위축된 오프라인 상권의 고객 확보에 대한 절박함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롯데·이마트(신세계)·현대·홈플러스 등 최소 10곳 이상의 대형 유통업체가 폐점이나 구조조정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소식과 함께 ‘소매의 종말’이라는 충격적인 표현이 들려올 만큼 전통 상업 공간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또한 기상환경의 변화에 따라 실내로 모여드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위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과제도 생겼다. 주 52시간 근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며 직장인들의 늘어난 여가시간을 흡수하기 위한 공간의 업그레이드도 필요해졌다. 이제 공간의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전략이 되었다.
공간, 변화무쌍하게 색깔을 바꾸다
카멜레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