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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의창 Dec 03. 2019

'장발장법' 위헌 결정을 받아낸 국선전담변호사의 기록

그에게도 가족이 있다

빙산의 일각에서 본 풍경


빙산의 일각에 서서 귀를 열어두는 일
국선변호사 세상과 사람을 보다.


이 일을 하면서 보고 들은 범죄 안팎의 풍경은 너무나 작고 사소하고 조각난 것들이었다. 사건의 본질이 흐릿해질 즈음에 비로소 시작되는 아주 짧은 만남을 반복하면서 수면 아래 저 깊은 삶의 실체를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썼다.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가 별로 전해지지 않아서였다. 기자라는 전 직업의 정체성을 다 잃진 않았는지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기도 했다. 신이 아닌 이상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직업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조각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을 테다. 빙산의 일각에서 본 이 사소한 이야기도 분명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사진 = movie LES MISÉRABLES



각자의 시간...


구치소 변호인 접견실에서 다시 만난 그는 왼손에 검은색 시계를 차고 있었다. “변호사님, 시계도 못 보는 애가 영치금으로 시계를 샀다는디 거기서 시계가 왜 필요해유? 시계 사느라 영치금을 다 썼대유”라고 하소연하던 그의 어머니 전화를 받고 접견을 온 참이었다. 그동안은 늘 그의 부모와 함께 만났기에 그와 1대1로 대화하는건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수용된 후 처음 보는 자리이기도했다. 수용자용 하얀 고무신 위로 맨발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추운데 왜 양말 안 신었어요?” 나는 아이에게 말하듯 물었다. “양말이 없어요.” 표정 없는 얼굴로 그가 말했다. 구치소에 들어가던 날 민원실에서 양말과 내의, 속옷을 두 벌씩 사서 넣어줬다는 이야기를 그 어머니로부터 분명히 들었는데 말이다. “지난번에 엄마가 양말이랑 내의 넣어줬죠?” “아, 내의, 있어요.” 40대 중반의 덩치 좋은 남자가 스스럼없이 윗옷 수의囚衣 지퍼를 열어 내의를 보여준다. 


그가 일곱 살 정도 지능을 가진 정신장애 환자라는 걸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급히 눈을 아래로 내리고 괜히 서류를 만지작거렸다. 양말은 같은 방 누군가에게 뺏긴 모양이다. 어리숙한 수용자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는 폐쇄병동에서 벌어진 사소한 싸움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가 과자를 먹는데 다른 환자가 뺏어 먹으려고 했고, 둘은 싸우다가 바닥에 뒹굴었다. 그가 일어나서 아직 바닥에 누워 있던 환자의 배를 걷어차고 과자를 지켜냈다. 그 환자는 심한 복통을 호소하다 이틀 만에 저세상으로 갔다. 얼마나 세게 찼던지 환자의 대장大腸이 끊어졌고, 그 자리가 세균에 감염돼 급성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이다. 그는 폭행치사죄로 기소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이런 사건에서는 피해자 유가족에게 용서를 받는, 이른바 ‘합의’가 가장 중요한 양형 사유가 된다. 그런데 피해자 유족 중에 연락이 닿는 사람이 전혀 없어 애초부터 합의가 불가능했다. 아직 경험이 별로 없었던 얼치기 변호인이었던 나는 선고 결과를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예상했다. 사람이 죽긴 했지만, 피고인이 정신질환자이고 우발적 범행인 데다 무엇보다 합의할 유가족이 없는 사건이어서 ‘설마 실형이야 나오겠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는 징역 1년6월과 치료감호 명령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 나는 당황했지만 그의 부모는 나를 원망하지 않았고, 변론을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미안한 마음에 다른 피고인을 접견하는 날, 이미 판결 선고까지 받은 그를 만나기 위해 변호인 접견을 신청했다. 그의 부모는 도시 중심부에서 좀 떨어진 작은 도시에 살았는데, 차도 없고 다리도 불편해 마음만큼 자주 아들을 보러 오지 못했다.


접견 날, 주된 용건인 시계를 왜 샀는지 그에게 물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인 그의 부모가 큰맘 먹고 넣어준 영치금이었는데 시계를 사느라 일주일도 안 돼 다 써버리다니 황당한 노릇이었다.


“시간 알아야 해요.”

“시간 알아서 뭐 하게요?”

“언제 나갈지… 시간 봐야… 하니까.”


의미 없이 서류를 만지작거리던 손이 순간 멈췄다. 일곱 살 정신 연령이라고 해서 폐쇄병동에 있든 구금시설에 있든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자유를 갈구하는 마음은 여느 수감자와 똑같았다. 하지만 몇 시인지 안다고 출소할 날이 빨라질 리 없었다.그가 시계를 읽을 수는 있는지 확인하려고 지금이 몇 시인지 물었다. 접견실 벽시계를 보니 오후 1시 35분이었다. 손목시계를 보며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1시… 1시… 55분.”

“큰 바늘 한 칸에 5분씩이에요. 한 칸이면 5분, 두 칸이면 10분.

일곱 번째 칸에 바늘이 있죠? 그럼 몇 분이에요?”

“음…. 55분, 아니, 45분.” 그는 끝내 35분을 맞히지 못했다.


그가 일곱 살 수준의 지능에 머물게 된 것은 스무 살 때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면서부터다. 밤에 외진 곳에서 사고를 당해 늦게 발견됐다는데 이미 엄청나게 많은 피가 뇌 안에서 응고돼버려 병원에서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유순했던 그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 냈고, 그렇게 잘했던 부모에게까지 주먹을 휘둘렀다. 그 후 그는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다. 병명은 기질성 뇌장애. 주치의 소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두부손상{豆腐損傷}으로 인한 인격과 행태 변화를 보이는 환자로 지능 저하 및 인지기능 저하가 관찰되고 충동 조절능력이 결여되어 쉽게 흥분하고 충동 공격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 환자. 그는 나와 동갑이다. 내가 살아온 만큼 그도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그 세월이 나와 전혀 동떨어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40대 중반의 남자가 스무 살 이후로 흔히 겪었을 일, 군 복무를 하고, 먹고 살 일자리를 구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버지가 되고, 가장의 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다가도 자식새끼 자는 모습 보면 괜히 힘이 나는, 내 또래 남자들이 살아왔을 그런 평범한 삶을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그다. 스무 살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그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폐쇄병동에서 과자를 놓고 싸우는 일상과 읽지도 못하는 시계를 자꾸 들여다보는 구치소에서의 일상은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를까. 무엇보다 그에게 1년6월은 형사 재판이 의도한 당한 처벌과 반성의 시간이 될 수 있을까. 견을 마치고 나오니 칼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다. 구치소 민원실에 들러 그의 수용번호를 적고 면양말 두 개를 사며 속으로 되뇌었다. 



'동갑내기야, 이번에는 제발 양말 뺏기지 마라, 응?'



큰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로 부모의 삶은 늘 그를 기다리거나 찾아가는 세월이었다. 기다리다보면 언젠가 아들은 돌아왔다. 이번에도 아들은 돌아오겠지만 그때가 언제일지 아직은 모른다. 심신미약자에 대한 치료감호는 15년을 초과하지 않도록 돼 있는데 6개월마다 하는 심사를 통과해야 출소할 수 있다. 그는 국립법무병원으로 온 지 6개월이 지나 처음 받은 사에서 통과하지 못했다.


그의 부모와 수원역에서 헤어졌다.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가는 길은 잘 안다고 했다. “변호사님, 오늘 너무 감사한디 준비한 게 이밖에 없어서” 하며 가방에서 꺼낸 비닐봉지를 내게 건네고 가셨다. 집에 와 봉지를 열어 보니 큰 바나나 한 송이와 오렌지 몇 개가 들어 있었다. 단돈 만 원의 여유를 부리기 어려운 그 집 사정을 잘 알기에 코끝이 아렸다. 과일은 더운 여름날 뜨거운 차 안에서 폭 익었는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얼른 바나나 껍질을 벗기고 적당히 잘라 냉동실에, 오렌지는 찬물에 깨끗이 씻어 냉장실에 넣었다. 물러진 바나나는 얼려두었다가 우유나 요구르트에 넣고 갈아 마시면 되고, 오렌지는 과육만 갈아서 주스를 만들면 감쪽같을 것이다.



시든 과일의 시간은 이렇게라도 되돌릴 수 있는데, 부모가 그를 기다리는 시간은 되돌릴 방법도 없고, 잡을 수도 없다. 늘 막막하고 아득했을 20여 년을 두 분은 지치지도 않고 묵묵히 견뎌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시리라. 자식을 기다리는 모든 부모의 시간이 다 그렇듯이.







정혜진 변호사는 국선변호인으로 특별형법 조항의 위헌 결정을 받아낸, 예사롭지 않은 법률가다.

그에게는 '삶의 효율'을 요구하는 이 시대에 형사 재판의 프리즘을 통해 

외면받은 사람들로부터 '삶의 자세와 가치'를 길어내는 섬세한 감각과 통찰이 있다.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본질에 다가가는 뭉클함이 어느새 마음을 채운다.


- 강금실 법무법인 원 대표변호사(전 법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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