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양육을 시작하면서부터 하고 싶은 게 더욱 많아졌다.
2020년 가을. 이제 올 한 해도 두 달 남짓 남았다.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 유치하지만 산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주의집중을 이끈다. 그래도 이르지 않을 만큼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나의 아이도 이제 네 살이 된다.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보고 나서야 나의 조리원 생활을 떠올릴 만큼 시간이 너무 쏜살같이 지나갔다. 조리원 시절을 일상에서 기억할 겨를도 없이.
나는 원래 하고 싶은 것을 추진하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고지식한 부모님 덕분이기도 했지만 대학 때도 그 흔한 해외여행 한 번 가보지 못했다. 학과에서 보내주는 일본 연수 외에는. 그런데 20대에 석사를 진학한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밀고 나간 첫 번째 시도였던 것 같다. 그 이전에 하고 싶었던 것은 반수였지만 역시나 부모님의 의견을 따라다니기로 한 학교에 머물렀다. 나 역시 학교와 전공이 나쁘지 않았다.
석사를 시작할 무렵 '시집은 무슨 돈으로 가냐, 학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 집에서 통학은 어떻게 할 것인지...' 지금도 읊을 수 있는 학업에 대한 염려를 모두 떠안았다. 아이를 양육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부모님은 나의 미래를 위해서 학업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에 오래 머물기를 바란 것도 있지만 전형적인 5060 세대였다. 여자는 공부보다는 가정을 돌보아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친정 엄마와 함께 아이를 양육하면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모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 결혼이었다. 신랑이 가지고 있는 배경, 조건, 상황들을 내가 끌어안기에는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결혼, 출산, 육아와 일을 하며 아이는 어느덧 세 살이 되었고, 나 또한 서른셋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끝 자리 4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요즘 들어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 졌다. 석사도, 박사도 아닌, 학부에서 특수교육을 배우고 싶어 졌다. 해마다 고개를 내밀었다가 상황에 직면해서 다시 넣었던 나의 꿈.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과 비슷한 것 같다. 해마다 이맘 때면 내가 접어두었던 꿈이 하나 둘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데, 경제적인 여건, 일, 육아라는 망치로 계속 그 꿈을 억누른다. 꿈이라고 하기엔 다소 오글거릴 수도 있겠다. 20대 초반에 고이 접어두었던 나의 소망들.
어떤 게 맞는 길인지 모르겠다. 누군가 보기엔 '저 사람은 참 욕심이 많구나' 여겨질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해서 언어치료를 떠난다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하나의 라이센스를 더 갖게 되는 것뿐인데. 언제쯤 시도할 수 있을까.
나의 일은 피크 시간이 오후 3시 이후이다. 나의 아이는 늘 어린이집에서 그 시간 즈음부터 하원 하는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온라인 상담은 그러한 부담을 확 줄여주고 있지만 앞으로 일을 계속 함에 있어서 어떻게 균형을 유지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이 일 뿐 아니라 모든 일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교사인 신랑 또한 빨리 퇴근해야 5시 이후라는 것도. 야근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단순히 일을 벌이는 게 좋은 걸까. 2007년 3월. 반수의 꿈을 고이고이 접어두었던 때가 요즘 들어 왜 이렇게 떠오르는 걸까. 단순히 육아에 지친 걸까.
그런데 더 문제는 육아를 한 뒤로는 나의 버킷 리스트를 갖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죄책감이 든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데. 엄마는 아이가 우선인데. 이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데.' 이러한 마음의 소리들.
자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는데 낮에 온라인 상담 답변을 쓸 시간을 주지 않았던 아이에게 짜증을 쏟아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는 그냥 주말은 엄마랑 놀고싶었던 것인데. 주말 정도는 낮잠을 패쓰해고 어린이집에서 주 5일 낮잠을 잘 잤다면 그것으로 된건데. 마음이 설레면서도 무거운 11월. 입동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