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 않음을 가려준다는 것.

<아나톨의 작은 냄비, 이자벨 카리에> 그림책을 읽고.

by 말선생님

오래간만에 마음의 위로와 함께 어깨가 무거워지는 그림책 한 권을 만났다. <아나톨의 작은 냄비>. 아마 특수교육이나 그 외에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분들께는 익숙한 그림책일 것 같다. 나 또한 책을 알게 된지 거의 1년 만에 구입한 책이다.



아나톨은 냄비를 달고 다닌다. 냄비의 의미는 '장애' 혹은 '평범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있을 것 같다. 나는 현장에서 일을 할 때보다 오히려 신랑과 연애를 할 때 '평범함'에 대해서 더 고민하고 싸워왔다. 첫 연애여서 그러했을까. 남자를 보는 기준은 그저 머릿속 이상형, 그간 스쳐 지나간 썸남들, 혹은 교회나 동아리 오빠들이 전부였으니. 신랑의 습관, 특히 좋아 보이지 않는 습관을 마주할 때는 늘 이야기했다.


좀, 평범하게 살 수는 없어?


어쩌면 그 평범함의 기준은 내가 만든 기준일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에 아니, 내가 보기에 이상해 보이고 틀을 벗어나는 듯한 행동은 모두 '독특함'이라는 상자 안에 집어넣어버렸다. 다리를 심하게 떨거나 식사를 할 때 꽤 많이 흘리고 먹는 습관들. 때로는 시도 때도 없이 콧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았을 때에도 독특함이라는 틀 안에 그 습관들을 넣으려고 했다.


상대방에게 스트레스가 되고 숨 막히는 말이 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틀을 벗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연인을 만날 때, 남편이 되었을 때에도, 한 개인 그대로를 인정하기보다는 남들의 시선과 내가 정한 틀이 우선이었다. 사실, 지금도 그 틀을 깨기가 쉽지 않다.



나의 아이를 양육하면서 느끼는 감정도 비슷했다. 억양이 단조롭거나 행동에 있어서 절제가 되지 않는 순간을 마주할 때에도 '쟤는 왜 이리 독특하지?' 생각을 먼저 마주하게 되고, 밖에 나가서 아이가 조금이라도 틀을 벗어나는 순간엔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더라도 혼자 등에서 식은땀이 났던 적도 있었다.

현장에서 부모님들께는 숱하게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세요.' 이야기했지만 정작 나는 내 옆사람도, 내 아이도, 나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 틀을 깬다는 것이 쉽지 않다.


<아나톨의 작은 냄비>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주인공은 아나톨이 냄비를 넣고 다닐 수 있는 예쁜 주머니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나톨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해간다. 비록 여전히 삶이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적어도 자신의 냄비를 숨기려고 애쓰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 옆사람에게 어떠한 존재일까? 생각해보면 사회적으로 자신만의 틀이 강하다고 알려진 자폐성 장애 아이들도, 그리고 나도. 나의 아이를 보았을 때에도. 그 틀은 스트레스가 큰 상황에서 유독 더 고집되는 것 같다. 나 또한 쉼 없이 밤까지 상담 일이 진행되거나 아이가 내 공간을 침범할 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아이들 또한 그러한 것 같다. 학교에서, 혹은 유치원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거나 환경의 변화를 갑자기 맞이했을 때. 자신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는 작은 순간들이 쌓일 때. 오히려 자신만의 틀을 찾고자 더 텐트럼을 보인다. 바닥에 눕거나 물건을 던지는 경우도 있고 아예 침묵을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를 '저 사람은 ( )(이기) 때문에 ( )하다'라는 색안경을 끼고 관계를 시작하는 것은 가장 최악의 관계를 맺는 지름길인 것 같다. 아이들도 내 옆 사람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각자 개인을 그대로 존중해주고 받아들여준다면. 잠시 숨 쉴 여유를 만들어 준다면. 조금 더 유연한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11월은 시작부터 너무나 숨 가쁘다. 엄마로서도 언어치료사로서도 잘 해낼 에너지가 열흘 만에 바닥이 나고 있다.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잠시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글을 쓰는 시간이라도 있음에 감사하다. 나의 분주함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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