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버리기, 아이들에게 배웁니다.

<위를 봐요, 정진호, 현암주니어>

by 말선생님

내가 다녔던 대학교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타 대학에 비해 장애학생 입학전형이 잘 되어 있었고, 학과 또한 일반학과보다는 장애인 관련 학과가 많았다.(이 글에서의 '장애'라는 단어는 누군가를 비하하기 위함이 아닌 말 그대로 전형 이름 그대로를 기록한 것이다). 기숙사 앞에는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 휠체어를 타고 수업을 이동하는 학생들, 타이핑으로 교수님의 수업을 전달해주는 학습 도우미 시스템도 꽤 잘 되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현장에 나와서도 휠체어를 탄 아이들, 어르신들을 대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어려울 것이 없었다. 몸이 불편할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휠체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줄지, 아이들의 시선은 어떠할지 궁금했다. 그래서 고른 그림책, 정진호 작가님의 <위를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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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는다. 그리고 밑으로 내려갈 수 없는 상황에서 늘 위에서 아래를 내려본다. 아무도 수지를 봐주지 않는다.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위를 봐요. 나 좀 봐주세요." 수지는 무엇보다 상실감이 컸을 것 같다. 건강한 다리의 소중함, 이전과는 달라진 삶, 사람들이 시선, 답답함.



그런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을 때에는 아무도 수지를 불쌍하게 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되잖아요."라고 말한 친구도 있었고, 이렇게 "함께 라면을 끓여먹고 싶어요. 몸이 불편하면 컵라면!"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었다.

수업 중에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이들은 그 어느 누구도 수지를 불쌍하다는 틀이 가두어두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아이들이 수지를 불쌍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고민에 빠져 있었고 그건 나의 생각이었기에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 예상했던 것 같다.



인생을 길게 산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누구나 몸이 불편해질 가능성을 안고 살아간다. 사고의 위험성, 갑작스러운 발병, 뜻하지 않은 일, 누적되는 스트레스로 인해서. 매 순간마다 편견을 버리고 그 시간을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배웠다고 하는 게 맞겠다. 나의 아이도 건강한 가치관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세상이 주는, 어른들이 주는 편견, 우월의식, 자랑, 비교, 열등감에 갇혀 살아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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