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이후, 면접을 기록하다.

6개월이 지나서야 하는 기록.

by 말선생님


#Intro.

2019년 10월. 아이가 24개월이 되면(2020년 2월 즈음), 정규직 또는 풀타임 직장에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다른 영역에 있어서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일'에 있어서는 준비가 철저하다 못해 너무 앞서서 설레발을 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신랑의 말에 의하면, 그 준비성을 돈에 들였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많이 모았을 거라고.


#1.

마침, 집에서 버스로 10분 거리, 날이 좋을 땐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의 종합병원에서 파트타임 채용 공고가 났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재활병원에서 근무하기엔 뭔가 잘 맞지 않았다. 유능한 언어치료사라면 모든 장애군의 아이들을 잘 케어할 수 있어야 하는데. 10년 차가 된 지금 느낀 사실은 그건 나의 욕심에서 나온 생각이었던 것 같다. '정신건강의학과' 단어를 보자마자 이력서를 냈다. 1급도 아니었고 1급을 준비하는 입장이었지만, 지역 내 장애인복지관에서 3년을 근무하고, 임신 때문에 한 학기만 근무했지만 특수학교 경험도 있고, 경력도 이제 10년 차니까. 그리고 거리도 가까우니까. 당연히 면접 연락은 올 줄 알았는데. 처참히 나의 이력서는 담당자의 메일함에 묻혀버렸다. '묻혀 버렸다'는 표현이 너무 직설적인 표현일 수도 있지만, 담당자는 답이 없었다.

요즘은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의 채용은 홈페이지 안에서 이루어지고 채용 담당자분들도 정말 친절하게 응대해주신다. 그리고 불합격 통지 메일도 메일을 받았을 때 기분이 상하지 않게 '본사의 비전과 지원자님의 비전이 맞지 않다고 판단되어...' 이런 뉘앙스의 문장 정도는 넣어 주신다.

그런데 답도 없다니. 분명히 '읽음' 표시였는데. 아무리 파트타임으로 구인을 한다고 해도 불쾌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무엇을 질문했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아이 하원을 조정해두어야 하니까 근무 시간 정도의 질문을 했었던 것 같은데.


6개나 이력서를 썼다니. 나의 열정에 칭찬을 ㅎㅎㅎ


#2.

그리고 1급 언어재활사 시험 준비에 몰입했던 것 같다. 시험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도 오기가 더 생겼다. '내가 시험만 붙어봐라. 난 적어도 중형 병원은 갈 수 있을 거야!'. 2019년 하반기가 채용 시장에 붐이 일어났던 걸까. 평소에 눈여겨두었던 복지관들도 정규직 TO가 났었나 보다. 골라서 이력서를 써야 할 정도로 채용 공고가 많이 올라왔다.

그런데 이력서를 발송하고 나니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다. 나는 '애엄마'였다.




* 현재의 직장

: 대기자가 많다, 거리가 무엇보다 가깝다(교통비 0원! 출근하다가 커피만 사 먹지 않는다면), 대부분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령기 아이들이다, 적어도 등원은 내가 시킬 수 있다.


* 정규직에 들어간다면?

: 아이는 7시 반에 1등으로 등원해야 한다, 페이는 안정적이다, 저축도 넉넉히 할 수 있다, 5호봉 정도부터 시작할 수 있다, 휴가도 있다, 명절수당도 있다.


아이의 하원은 친정엄마에게 부탁드린다는 전제로 이렇게 머리를 굴려보니 이러한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아이의 등 하원이었다. 친정 엄마가 아무리 가까이 사시지만 7시 반에 아이 등원을 위해 오시는 건 무리였다. 그리고 너무 죄송했다. 엄마도 엄마의 삶의 계획이 있는데. 무턱대고 엄마에게 "우리가 월 100만 원씩 드릴게요"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제안을 거절하실 만큼 엄마도 온이를 신생아 때부터 케어해주시는데 지쳐있으셨다. 처음엔 야속했지만, 돌이켜보니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그리고 신랑의 조언이 결정에 있어서 큰 역할을 했다. 신랑은 집에서 버스로 거리가 1시간 이상 걸리는 직장에 다닌다. 5시 반에 나와도 집에 오면 7시다. 오가는 길에 느끼는 초조함을 매일 어떻게 감당할까. 지하철이 지연되기라도 하면 나는 길에서 얼마의 시간을 버리는 걸까. 아이는 남의 손에 등 하원을 맡길 수 있을까. 여태껏 TV도 잘 보여주지 않고 참고 키워왔는데. 한 번에 무너지면 어떻게 할까.


지금 생각하면 웃픈 사실이지만, 코로나 19가 찾아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12월까지 나의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 3. 기억하고 싶은 면접.

그래도 기억하고 싶은 면접 자리가 두 곳 있었다. 한 곳은 낙방을 맛보았고 한 곳은 사정이 되지 않아서 내가 가지 못했지만.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1) 기억하고 싶은 면접 : ***병원

복지관에서 근무할 때부터 이 곳에서 진단을 받아오는 아이들도 많았고, 대학원 재학 시절, 그룹수업 관찰도 했던 곳이다. 뚜벅이만 아니었다면 차로 출퇴근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은 곳. 무려 6대 1의 경쟁률이었다. 정규직은 아니고, 2년 계약이었는데 나름 '공무원'이라는 단어가 붙었고, 연장 여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 기억나는 Q : 선생님, 1급은 취득하셨나요?

A. 아니요. 이번에 시험을 보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Q. 선생님은 '학령기' 교재도 만드셨고 관심이 많으시네요. 난독 수업도 들으신다고 하시고...

그럼 자폐아동 치료는 경험이 있으신가요?

A. 네. 적지는 않았지만 계속, 간간히 치료해왔습니다. 관련 연수도 종종 들었습니다.


Q. 아, 네. 그럼 공무원이란 무엇일까요? 청렴이란?

A. 아.. 아무래도 대기자가 많다 보니 로비를 받지 않거나 정직하게 순번에 따라 치료를 진행하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조직에도 잘 젖어드는..


Q. AAC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이전에 복지관에서 근무할 때 지원받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부모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발화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아서요.


Q. 요즘 이른둥이 중재가 대두되고 있는데, 해보신 적 있으세요?

A. 네.. 24개월 아이도 해보았는데...(여기서부터 내가 일부러 답을 끼워 맞추는 기분이 들었다.)


'아. 소아정신과에 지원하면서 자폐, 사회성 그룹, AAC에 대해 자세히 공부도 안 하고 오다니! 그리고 이른둥이? 나는 24개월 아이 수업을 할 때도 애를 먹었던 것 같은데... 돌이켜보니 질문의 의도는 내가 영유아를 얼마나 잘 치료하느냐가 아니라 이른둥이의 조기중재에 대한 자세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하셨던 것 같다.


2) 기억하고 싶은 면접 : **센터


너무 기억에 남아서 집에 오자마자 적었다.


이 곳은 화용 언어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한참 '난독'에 관심이 많아서. 난독 케이스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원했다. 치료진들도 거의 박사 학위 이상의 분들이셨다.

면접을 보면서, 너무 내가 '학령기' 즉, 내가 하고 싶은 영역에만 초점을 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관의 오너 입장에서는 두루두루 잘하는 치료사를 원할 텐데. 지원하는 입장은 어찌 보면 '을'인 건데. 너무 내 입맛에서만 생각하려고 했다.



#4.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면서 느낀 점.


우선, 내가 어떻게 10년을 보냈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다. 한 편으로는, 한 기관에서만 오래 근무하지 않고 한 2-3년 터울로 다양한 기관을 경험한 게 다행이기도 했다. 이 부분은 오너마다 입장이 다를 것 같다. 한기관에서 꾸준히 근무한 사람을 원할 수도 있으니까.


자기소개서 안에 다양한 경험을 술술 풀어써야 하는데. 한 때는 무거운 돌덩이를 매고 출근하는 것 같이 느껴졌던 직장 안에서의 그룹치료, 부모교육 프로그램 사업 진행이 자기소개서 안에 한 두줄을 채워줄 수 있다니. 잘 버텨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즐겁게 일을 했었다면, 여행도 많이 다니고, 새로운 취미생활도 만들고, 그렇게 살아왔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취미가 독서랑 피아노 치기는 내가 봐도 90년대 이력서인데. '등산' 조차도 솔직하게 적을 수 없는 나 자신이 참...'너 그동안 뭐하고 살아왔니?'.


석사 타이틀은 특히 언어치료, 심리치료 파트에서는 너무 일반화되어 있기에, 석사 타이틀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너무 당연해서 그냥 넘어가는 정도. 차라리 그 안에서 심리 파트를 더 공부했거나 다양한 자격증을 따두었더라면. 조금 더 면접 때 할 이야기가 많았을 텐데.


학부를 처음 졸업하고 이후에 이직을 할 때 이력서를 쓸 때에는 사설 기관이었기 때문에 보는 시야도 넓지 못했던 것 같다. 이는 사설에 대한 무시 발언이 아니라, 사설 기관은 내가 치료의 질만 높인다면, 기관 오너의 역량에 따라 아이들을 치료하고 급여를 유지할 수 있다.

석사 수료를 하고 이력서를 쓸 때, 컴퓨터 자격증이 있는지, 토익 점수는 있는지, 그 외 무얼 잘하는지, 관심이 많은지, 돌이켜보면 2014~2015년 즈음에도 점점 이런 다양한 요구가 있었는데. '언어치료', '내 분야' 하나에만 몰입하다 보니까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았다. 물론 내가 즐거워서 배워야 의미가 있지만.

이력서를 나중에 잘 쓰기 위해 무언갈 배우는 건 투자가치가 너무 떨어진다.


#5. 앞으로 무얼 하며 살아갈까?


결과는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유지하면서 새로 오픈한 소아정신과를 병행하기로 했는데. 코로나 19가 터졌다. 사실, 처음엔 면접을 가지 않겠노라 연락을 드렸던 (정규직 ) 채용을 했던 복지관이 생각나서 한편으로는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다시 되돌아가더라도, 그때의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아이였기 때문에. 지금도 아이가 건강해야 내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 코로나가 터지고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았을 때 붙들었던 건 '말씀'(난 기독교인이라 이렇게 써야 하는데.)이 아니라 유튜브였다. 앞으로를 전망하는 사람들, 공부하시는 분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분들이 하시는 이야기의 공통점은 이거였다.


"앞으로는 안정적인 평생직장은 없습니다. 내가 직장이 되어야 합니다. 외부적인 요소가 아닌 내가 브랜드가 되어야 앞으로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을 이용하세요."


#6.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모르는 케이스가 있다면 그때 그때 공부하면서. 그리고 '내가' 찾은 답은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브랜딩'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이 없어져가는, 학벌이 무의미해지는, 학군이 무의미해져 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내 분야에만 몰입하며 지낸다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인생에 정답이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