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쁘게 살아가는 이유는?
결혼 전에도 나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출산 이후의 내 시간을 갖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신생아 때는 아이가 밤낮이 바뀌어서 아이 잘 때 도무지 혼자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에너지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가 기고, 걷고, 뛰어다니기 시작할 때마다 나의 책과 노트북은 최대한 아이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1.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오다.
온이가 17개월이 되었을 무렵, 집 앞 가정 어린이집에서 입소 가능 연락이 왔다. 걷기는 약간 느린 편이었지만 이제 걸을 수도 있고, 인지도 또래들에 비해 느린 것 같지 않으니. 6살까지 가정 보육을 고집하시던 친정 엄마도 어린이집 등원을 반대하지 않으셨다.
돌 무렵까지는 내가 출근을 해도 친정 엄마나 시어머님의 도움으로 온이를 케어하는 게 가능한데. 시간이 흐를수록 갱년기를 지나고 계시는 두 어머님(?)께서 온이를 케어하는 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아이가 걷고, 뛰는 순간은 감사와 기쁨, 그리고 핸드폰 동영상 촬영이 있지만. 그 뒤는.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으리라.
#2. 아이가 처음 등원하던 한 달.
수족구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한 후, 그래도 몇 번의 감기를 제외하고는 온이는 어린이집 적응을 잘해주었다. 이전에는 온이가 밤잠을 들기 시작한 이후에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조용히 할 수 있었는데, 이제 오전에도 시간이 생겼다. 출근을 하는 요일을 제외하면, 오전은 내 시간인 것이다.
처음엔 가보고 싶은 곳들을 우선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림책 모임도 바로 신청했다. 그림책 모임 장소가 강남역과 멀지 않았기 때문에, 모임을 마치고 강남 교보문고에 가기도 좋았고, 싱글 시절엔 밤늦게도 걸어 다닐 수 있었던 강남역 그 거리를 혼자서 걸어 다닐 수도 있었다.
하반기가 지나갈수록, 1급 언어재활사 시험공부 덕분에 카페 죽순이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은 아무도 터치할 수 없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3. 어른들의 고정관념.
주변 어른들은 아이가 등원할 때 내가 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거나 다니고 싶었던 곳을 다니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 시간이 집을 청소하지', '그 시간에 반찬 하나라도 더 만들지.' 아. 지금도 친정 엄마의 이 멘트가 귓가에 맴돈다. 바로 직전에 들었던 것 같이.
그런데 내 생각은 달랐다. 반찬은 아이 저녁 먹이고 신랑이 아이를 봐줄 때 만들어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고, 집 청소는 아이가 다치지 않을 정도의 장난감들만 정리하는 정도. 그 정도만 정리해놓아도 아이와 하원 이후의 일상을 보내는데 지장이 없었다.
어른들의 생각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얌전히 집에서 청소를 하고 반찬을 만들고 장을 봐 두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었나 보다. 소위 말하는 '요즘 젊은 엄마' 중에 20대에 바쁘게 보내지 않았던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다들 자신의 자리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네가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렴!'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을 사람들인데.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하루 24시간을 아이에게 모두 집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아직도 이해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아이가 보지 않을 때에도 아이를 위해 내 일상을 올인해야 한다니.
#4. 나를 먼저 존중하는 것.
온이에게도 그런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너에게 이런 희생을 이렇게 해왔단다. 그러니 너는 엄마의 공을 알아주렴." 아이가 받아들이기에도 얼마나 부담스러운 말일까?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의 반응은 이렇게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엄마, 고마운 건 고마운 건데요. 내가 그런 희생을 부탁드린 적은 없잖아요." 그때의 공허함과 상실감을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나만의 시간, 나만의 충전이 필요한 건 분명했다. 아이가 등원한 시간조차 아이에게 올인하며 살아가는 건 한 여자의 인생으로 보았을 때도 측은하다고 생각했다.
#5. 프리랜서 엄마의 슬기로운 시간 활용 방법.
아이가 등원한 이후에 내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 드라마 종영으로 인해 이 문구는 요즘은 덜 사용되지만, 일명, "엄마의 슬기로운 시간 활용 방법."'
1. 아이의 등원 전, 하원 이후는 최대한 아이에게 올인한다. 출근 준비를 등원 준비와 동시에 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데. 이 때는 몸이 바쁜 것도 있지만 아이의 감정선을 잘 읽어야 한다.
"너 엄마가 양말 신으라고 했지!" 이 말을 하면서 엄마가 화장을 하고 있다면 아이가 과연 양말을 신을 수 있을까. 지금에서야 생각난 건데, 차라리 화장을 출근해서 하고 기본 베이스만 바르고 아이를 챙기는 게 더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2. 등원 이후, 집안일은 최대한 1시간 안에 끝낸다. 빨래는 전날 밤에 널고 잤으니. 아이 아침 먹은 그릇,
나의 아침 먹은 그릇 설거지. 그리고 아이가 오전에 어지르고 갔던 자리들. 1시간 안에 끝내지 못하게 하는 방해 요소는 당연 스마트폰이다. 오전엔 중요한 연락이 올 가능성이 적으니, 직장 연락이 아닌 이상은 살짝 폰은 충전기에 놓는 게 어떨까.
3. 집안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고 생각된다면, 나는 기분에 따라 근처 카페를 가거나 집에서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편이다. 요즘은 오후부터 출근 일정이 잡혀서 오전 시간을 더 규모 있게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록"이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적어둔다. 오전에 적어둔 기록은 아이가 잠이 든 이후에 다시 점검해볼 수 있다.
4. 업무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있지만, 그 와중에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한다. 나에게는 블로그 포스팅, 글쓰기, 독서, 혹은 서점 나들이가 해당되는데.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사러 나가는 것도, 네일아트를 받는 것도, 누군가와의 약속을 잡는 것도. 일주일에 하루, 그리고 그 하루 중 1-2시간 정도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5. 스마트폰과의 거리두기. 중요한 연락에 대한 답장도, 관계 유지도 너무나 중요하지만. 오전 시간은 '나'에게 집중한다. 나의 지인들도 오전 시간은 사실 연락할 겨를이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아이의 등원 준비를 할 수도 있고, 직장에 출근해서 한창 바쁜 오전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예전에 대학교 재학 시절, 교목 목사님께서 '새벽기도'를 추천하시던 이유 중 하나가,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스마트폰과 하루 종일 함께하는 우리인데, 오전 시간 중 일부 정도는 잠시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아. 오전 10시 핫딜 행사가 있을 수도 있다.
#6. 직종의 차이가 있다면.
이는 어쩌면 내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정 조율과 팁일지도 모르겠다. 정규직. 풀타임. 9to6 근무를 빼박 해야만 하는 경우는 또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쩌면,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더 나태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출근 시간만 지킨다면 그 이전엔 내가 무엇을 하든 어느 누구의 터치를 받지도 않을 것이고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더 시간 관리와 나 스스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것 같다.
#7.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에 대하여.
그렇다면, 나는 왜 이리 열심히 살까?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올리면 '관종' 이야기를 들을 텐데. 나는 왜 이리 시간 관리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것 또한 내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나의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내가 읽고 쓰고 공유하는 모든 것들이 '나의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sns 계정 관리라는 게 화려한 디자인도 있을 수 있지만, 무언가를 올리면 올릴수록 더 많이 소통하고 싶어 지고, 새로운 것들을 업로드하고 싶어 지니까.
'글쓰기'라는 것 또한 그런 것 같다.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인데, 한 번쯤 시선이 더 머무르게 하고, 더 잘 쓰고 싶어 진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신기하다. 글을 썼을 뿐인데, 왜 더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는 건지.
#8. 20대의 부끄러운 추억팔이.
프리랜서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기관이 내리는 지시에 따라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제시간에 퇴근을 하거나 야근을 하고. 등 하원 도우미를 썼을지도 모르겠다. 아이 또한 그러한 일상에 금세 적응했을지도.
나의 20대는 '독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미움받을 용기' 책도 앞 장만 읽고 업무 속에서 미루어두기만 한 채, 구입 후 1년 뒤 퇴사를 할 때야 다시 책을 꺼내볼 수 있었는데. 글쓰기 또한 싸이월드 일기장이 전부였다. sns는 가끔 연애 이야기를 올리기에 좋았고, 페이스북은 내가 속한 공동체 사람들과의 소통에 큰 재미를 주었지만 속 깊은 이야기를 적을 공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싸이월드 또한 20대 초반에는 내면 깊은 이야기들을 기록했지만 싸이월드 유행이 시들해져 갈 무렵부터는 나 또한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직장 욕을 적던 공간으로 변질시켜 버린 것 같다.
아. 한 가지 놓친 게 있다. 하원 이후 시간 활용 방법. 방법은 내가 만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어도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는. 산책을 나가는 것도, 집에 머무르는 것도, 아이의 선택에 따라 달려있다. 그리고 아이의 요구에 따라 맞추어준다. 안전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 이상은.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안에서는 내가 정한 틀은 큰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기관을 옮길 때마다 또 다른 패턴이 만들어지겠지만.
#10.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며 일상을 보내는 엄마는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아이가 등원을 했을 때에도, 등원을 하지 않을 때에도, 엄마의 머릿속은 '오늘은 뭐 해 먹지'부터 시작되니까. 그리고 아빠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성차별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해도 할 말은 없다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더라도 엄마에게 쉬는 시간은 쉬는 시간이 아닙니다. 아빠가 퇴근하기 전까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에너지를 만들어가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엄마가 일을 하고 와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는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할 때가 더 많거든요. 이건 저희 집 이야기인데 제가 너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걸 수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