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달라진 것들 중 하나.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관계가 재정비된다고들 한다. 나는 출산 전까지도 이 말에 크게 공감하지 않았다. 청첩장을 주었는데 결혼식이 오지 않았던 친구에게도 크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았고, 결혼 이후에도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만나서 이야기하면 마음이 풀릴 것 같은 답답함이 있으면 서로 시간을 조율해서 만나면 되었고, 서로가 속한 환경 또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나는 같이 사는 남편이 생겼을 뿐 아침에 눈을 뜨면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하고 퇴근 시간이 되면 퇴근을 하고 가끔 남편과 데이트를 하는 일상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출산 직후였다. 입덧이 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만날 수는 있었고 누군가의 삶을 한번 더 들여다보고 관계를 돌보는 것 또한 큰 제약이 없었는데. 출산 이후의 모든 삶은 아이에게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출산 이후 100일 정도는 마음 놓고 외출을 하기엔 아이를 돌보아줄 누군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 아직 빠지지 않은 붓기, '너 예전엔 나 입었잖아!'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은 바지들, 염색은 커녕 앞머리조차 길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내 모습을 거울로 마주하면 한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우울감이 몰려왔다.
점점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한 누군가에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로 연락의 방향성이 바뀌기 시작했다. "미안, 이제야 퇴근해서 톡을 지금 봤어. 아가 참 예쁘다. 잘 크고 있지?"라는 답을 주는 싱글 친구들과 연락을 하는 횟수가 의도치 않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더 큰 자괴감을 주는 것은 sns였다. 처음엔 자유로운 외출이 부러워서, 그 시절이 그리워서 sns를 한 달 이상 활동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 팔로워들이 하나둘씩 정리되어 가기 시작했다. 결혼식, 출산을 겪고 나니 선배들이 말했던 '내 사람'의 경계가 확연하게 보였다.
가장 속상했던 것은 대학생 때는 마음을 나누다 못해 서로 눈물을 나누던 사이가 각자의 환경이 달라짐으로 인해서 이제는 서운함을 넘어서 언팔의 관계까지 나아간 것.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출산과 육아의 과정이 고되었더라도 상대방의 연애 과정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선을 긋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에게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더 솔직히 적자면 이전에 상대방에 대한 좋지 않았던 감정들이 출산 이후에 그대로 올라왔던 것 같다.
싱글 시절, 일을 할 때에도 출산은 늘 발목을 잡는 부분이었다. '아이를 낳은 것이 벼슬도 아닌데 왜 아이 있는 치료사를 더 원할까?' 이 질문은 내가 아이를 낳으러 병원으로 가기 직전까지도 갖고 있던 의문점이었다. 하지만 지옥 같은 입덧과 출산 과정, 구직 과정을 거쳐보니 그 벼슬의 의미는 '희생'이었다. 나의 것을 포기하고 견뎌내는 그 시간들을 통해 엄마들은 자신들만의 보이지 않는 교집함을 점점 확정 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한 희생을 거친 치료사가 나의 아이를 더 엄마의 마음으로 돌보아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미경 강사님의 책 <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를 읽다가, 인연을 잘 보내주는 것도 지혜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출산을 한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나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거부하는 누군가와 고리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일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게 되는 것은 임신 이전에는 몰랐던 것들이다. 인연이 고리 하나하나는 출산 이후에 되돌아보니 특히 일에 있어서는 더욱 더 내 삶에 다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신혼 때는 신랑과 함께 무인도라도 가서 살 수도 있다는 패기와 당당함이 만랩이었지만 출산 이후 신랑이 출근한 후에 아이와 함께 혼자 남겨졌을 때에 그 막막함, 일자리를 다시 찾기 시작할 무렵에 그 장벽은 혼자서 뚫어갈 수 없다.
누군가의 삶에 대해 함부로 조언하지 않고 지나간 인연을 잘 보내주는 것. 나의 옆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는 것. 36개월이 되는 아이를 보며 다시 한번 인연에 대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