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알아주었으면, 알았으면 하는 이야기.
이 책은 자주 가는 '책발전소'에서 진행하는 북클럽의 이번 달 도서였다. 얼마 만에 읽어 본 소설책인지. 소설책은 대학생이 된 이후로 아니 사회인이 된 이후로는 읽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좋은 영향을 끼칠 만큼 혹은 밤을 새울 정도로 깊이 빠져드는 소설책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나의 관심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서점 매대 베스트셀러 목록엔 늘 소설책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우리가 잃어버린 것> 책에 나오는 경주는 '경단녀'다. 육아휴직 이후 복직을 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아이를 선택했다. 하지만 아이를 선택했음에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한 이후로는 늘 카페 제이니에서 구직 활동을 한다. 연락이 오는 곳도 있지만 모든 직장이 그러하듯 변수를 안고 있다. 집에서 먼 곳으로 이사를 갈 예정의 회사, 주말 근무나 야근이 불가피한 회사들. 아이 엄마의 입장에서 그러한 변수들을 끌어안는 것은 너무나 큰 모험이다. 복직할 회사가 있었음에도 아이를 선택한 경주의 입장에서는 더 망설임이 컸을 것 같다.
20대 때 아이 엄마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도 알게 모르게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직업이었기에 육아 경력이 플러스가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이 엄마들이 엄마 치료사를 좋아하는 이유에 납득이 가지만 당시에는 괜한 오기가 있었다. '저들에 비해 나의 실력은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라는 오기. 그런데 초기 상담부터 엄마 치료사들이 주는 눈빛은 아이를 힘들게 기관까지 데리고 오는 엄마들의 마음을 단번에 녹여냈다.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있었다. 나도 언젠가 아이를 낳으면 저렇게 당당하게 인정받으며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예상대로 출산 이후 구직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그 구직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는 혼자 외출을 하기 위해서는 단 5분이라도 아이를 대신 봐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나의 일은 오후 3시 이후가 피크기에 마냥 어린이집만 기대할 수도 없는 바였다. 처음에 육아휴직을 받을 수 있었던 직장을 내 발로 나왔던 때가 원망스러웠지만 결국 나 역시도 휴직 이후에 그 직장을 퇴사했을 거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9시부터 6시까지 근무를 하기 위해서 혹은 8시부터 5시까지 근무를 하기 위해서는 아이와 함께 더 일찍 그리고 더 늦게 고군분투를 벌여야 했을 테니까.
출산 이후에 달라진 것은 비단 일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친언니와 친동생 급으로 지내왔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는 아이가 늘 존재했다. 육아의 경험을 먼저 겪은 언니들에게 연락을 했을 때와 싱글 언니들과의 연락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어딘가를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을 sns에서 보게 되면 처음엔 부러움이 앞서다가 이후엔 '애 낳아보면 이런 것도 끝일 텐데'라는 판단이 들기 시작했다. 그들을 판단하고 있는 내 모습도 마주하기 싫어졌다. 차라리 연락을 하지 않고 팔로우를 끊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 생각은 지금도 크게 변함은 없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벽이 조금 허물어지기는 했지만 미혼과 아이 엄마, 아이 없는 부부와 아이 엄마 사이의 보이지 않는 그 틈이 분명 존재했다. 이유를 계속 분석해보려 했지만 답은 경험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이는 잠시도 틈을 주지 않는다. 그 틈은 아이가 등원을 하거나 낮잠을 잘 때에만 주어지는데. 아이가 없는 삶에는 나의 의지대로 여유가 주어질 수 있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야근을 밥먹듯이 할 정도의 직장을 선택한 것도 나 자신이니까.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는 야근 이후에 휴식도 아이에게 달려있다. 일이 주는 긴장감과 아이에 대한 긴장감은 말로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했다.
선배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 더 바빠지면 바빠졌지 내 일을 할 여유는 더 없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엄마인 내가 들어도 겁이 나는데. 결혼을 고민하는, 임신을 고민하는 누군가가 들었을 때에는 어떻게 느껴질까.
사회에서 아이 엄마를 바라보는 눈이 많이 부드러워지고 차별의 벽도 사라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 안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아이 엄마가 아이를 안고 지하철을 탔을 때, 택시를 탔을 때, 카페에 갈 때. 어딘가 사회적인 약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 이나 될까.
남편이 경제적인 부분을 크게 담당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맞지만 그 시간에 집에서 아이와 함께 사투를 벌이는 엄마의 마음은 누가 돌보아줄까. 예전에는 많은 형제들도 엄마 혼자 감당해낸 시대가 있었지만 분명 내가 어린 시절엔 여자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나 또한 그 중 하나였다.
결혼 전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주말엔 자신의 시간을 갖던 한 개인, 친구와 주말에 놀러 다니며 에너지를 충전하던 한 개인, 혼자 취미 생활을 즐기던 한 개인. 그러한 일상을 축적해가던 한 개인이 갑자기 '엄마'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그러한 생활에 미련이 남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책 제목이 '엄마가 잃어버린 것'이 아닌 '우리가 잃어버린 것'인 이유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나 또한 나의 아이가 엄마가 되었을 때의 아주 먼 미래를 가끔 상상해보게 되는 때가 있다. 나의 아이도 자라서 전문성을 가지고 자기 일을 하는 개인이었으면 좋겠다. 사회 속에서 엄마라는 역할, 며느리의 역할, 아내의 역할을 함께 감당해내면서 혼자 눈물을 삼키는 경험을 우리 시대보다는 적게 했으면 좋겠다.
아이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고 한 사람, 두 남여의 삶을 바꾸어 놓는 귀한 존재인데.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이 과도기가 잘 지나가기를. 한동안 내가 경주인 것 같아서, 일치시키려는 마음이 너무 커질까봐 겁이 났었다. 이제는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글을 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