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아이'를 읽으며.

숨기고 싶은 '나'를 발견하다.

by 말선생님

#Intro.

지난 주일은 담당하시던 목사님의 사임 소식을 듣고 정말 오래간만에 남편과 아이와 함께 영아부 예배에 갔다. 나름 고심해서 간 예배. 다행히(?) 몇 가정 참석하지 않았고, 충분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목사님의 기도 멘트가 계속 마음에 남았다. "아이가 단지 건강하기만을 바라던 때를 잊고..." 아이가 커갈수록 이 말이 깊이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1. '엄마라는 아이'와 처음 마주하던 날.

기관 휴관의 마지막은 '책모임'으로 장식하고 싶었다. 지난가을 그림책 전문가 자격증을 발급받았던 기관의 블로그를 들어가 보니 이번 책 나눔 주제는 <엄마라는 아이> 책을 읽고 나누게 될 이야기들이었다. '내면 아이'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고 예측은 했었는데. 생각보다 책이 술술 읽히지 않았다. 잊고 싶었던 기억들을 계속 떠올리게 하는 책. 참 좋아라 하는 강남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책이었는데. 책장을 넘기는 내내 그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내용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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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과격해진 행동과 짜증을 감당하는 게 점점 버거워지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단순히 나의 힘듦을 공감해줄 누군가 보다는 육아 선배들의 조언이 듣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내면에 대해서 상담을 받고 싶었다. 왜 나는 아이의 예상치 못한 행동과 나의 틀이 깨지는 걸 견디지 못하는 걸까? '아이'니까 그건 당연한 건데. 왜 그런 걸까?


#2. 책을 읽기 시작하며.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아무리 좋은 책이나 강의도
완벽한 엄마로 만들어주거나,
엄마의 고통을 덜어주지 않는다.

왜? 엄마의 마음에는 아직도
돌봄이 필요한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의 이름은 '엄마라는 아이'이다.



책을 읽기 전 한창 정혜신 선생님의 <당신이 옳다> 책을 읽던 때였다. 어린 시절 누군가의 공감과 지지가 필요했던 자리에서 충분히 공감받지 못했을 때의 상처가 어른이 되어서까지 간다는 걸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정혜신 선생님의 책 보다 조금 더 실제적인 상담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특히, '엄마'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른 엄마들의 삶, 가족들의 삶을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엄마들이 그럴 것 같다. 어린 시절에 상처를 받지 않고 자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자라면서 꽁꽁 숨겨가거나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잊고 지내게 되는 거겠지. 나의 엄마도 그랬다. "엄마가 너를 키우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사람이 정말 간사한 존재라서 그런 걸까. 지독한 입덧을 겪어보기 전까지는 임신이 얼마나 힘든 시간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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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의 내면 아이, 원가족을 되돌아보기.


사실, 독서모임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거였다.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어느 순간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는 더 힘들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고작 28개월 된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을까.

책모임 자리에서 내가 밑줄 그은 부분을 나누기 시작했다. "저는, 엄마가 너무 통제를 많이 하시면서 키운 케이스라서요. 저희 아이에게는 그렇게 하기가 싫더라고요. 엊그제는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엄마와 거리가 떨어져 있었더라면 조금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을 하는 이상 친정엄마에게 나의 아이를 맡겨야 했고, 양육 방식의 '다름'을 인정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터치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어린 시절에 나를 통제했던 엄마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었고, 나는 그 스트레스를 남편과 아이에게 풀고 있었다.

언제가 읽은 책에서도 그랬는데 말이다. 사람은 가장 약자에게 스트레스를 풀게 된다고. 가장 약자는 '아이'인데 그 약자인 아이는 누군가의 스트레스를 감당해낼 수 없다. 그래서 그 아이가 그 감정을 쏟아내지 못하면 일탈 행동을 하게 되는 거라고. 알면서도 잘 되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아이들에게 "야!" 소리 한번 내보지 않았는데. 내 아이에게는, 작고 소중한 내 아이에게는 그게 왜 잘 되지 않을까? 단지 '일이니까 그렇지'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4. 아프지만 읽어나가야 하는 시간.

특히, 와 닿았던 부분은 자기애에 빠진 엄마의 모습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준 사랑과 관심은 타인에게 와 닿지 못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 사람은 누구나 자기애의 상태에 있어야 하지만, 때로는 생존을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그 상태가 과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80p.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의식은 I am perfect. 하지만 자기를 사랑하다 보니, 남을 사랑할 줄 모른다.

자기 사랑에 갇혀 있다.

하지만 무의식에는 반대의 신념이 있다. I am not perfect.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완벽한 척한다.


나의 학창 시절이 이러했기 때문에 나는 대학교에 와서야 진정한 사랑을 경험했다. 동아리 모임을 할 때 언니, 오빠들이 자신의 가정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보일 때도 겉으로는 공감하는 것 같은 행동을 했지만 깊이 공감하는 방법을 몰랐다. 배우자의 기준 또한 '안정적인 직업, 그리고 내가 갖지 못한 학벌'이었다. 대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나는 누군가가 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이 또한 출산을 하고 나서야 알았던 사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 그때 너 되게 불편했어."


집안이 망해서 시골로 온 것은 아니지만 한창 또래관계가 중요해지는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시골로 이사를 왔다. 결혼 전까지 내 아이는 결코 시골에서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할 만큼 그곳이 너무 싫었다. 친구들과의 인연을 끊어낼 수만 있다면 뭐든 단절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조금 더 큰 읍내에 있는 학교로 진학을 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사실, 엄마의 자리가 그립지는 않았다. 자유와 해방감이 더 좋았다. 하지만 나는 계속 누군가의 인정을 갈급해하고 있었다. 그 수단이 공부였고, 대학교 때도 내가 학점을 잘 받아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5. 독서모임을 통하여 얻은 것들.


그리고 독서모임을 할 때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나왔다. "아이가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하는 걸 보면 나를 약 올리는 것만 같아요." 진행하시던 선생님은 그 포인트를 잡아주셨다. "선생님 이전에도 그런 말을 종종 하셨던 것 같아요. 남편과 싸울 때, 남편이 선생님을 약 올리는 것 같다고요. 돌아가셔서 한번 그 이유를 찾아보세요."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지만 계속 생각이 나는 부분.)

모임에 참석한 선배 엄마들의 이야기도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 저희 아이가 6살인데요. 그 당시에는 아이가 말도 잘하고 내 말을 다 이해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지금 다시 그 영상을 보면 아이의 말이 굉장히 어눌하더라고요. 나는 내 아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6. 마음이 건강한 엄마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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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면 아직까지도 남을 의식하며, 남의 인정을 받는걸 가장 인생의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의 하루 일과가 내 목표대로 진행이 되어야 하고. 집이 지저분하다는 친정 엄마의 지적이 스트레스고. 아가씨 시절처럼 깨끗하고 틀이 갖추어진 내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은 걸까?


<진정한 챔피언> 그림책의 주인공 '압틴'은 정통 있는 스포츠 가문에서 태어나지만 운동을 잘하지 못한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가지고 있는 점도 없다. 하지만 압틴은 진정한 챔피언이 되어가는 과정을 찾아간다. 그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정말 많은 충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육아에도, 일에도,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압틴처럼. 마음이 건강해야 육아도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는 엄마가 하는 말을 따라 하고 엄마의 행동을 따라 한다. 보이지 않지만 엄마의 말과 행동을 모두 자신의 머릿속에 담아둔다. 엄마의 마음은 무조건 건강해야만 한다는 법칙은 없지만, 적어도 건강하게 가꾸려는 노력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원가족,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들은 종종 고개를 내밀 것 같다. 그때마다 약자인 아이에게 목소리가 향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나의 인생그래프를 그려보는 건 어떨까. 계속하다 보면, 아픈 시간만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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