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쓰고, 또 쓰고!
지독했던 더위가 지나갔다. 올 여름은 정말 더워도 더워도 너무 더웠다. 습함, 폭염, 그리고 폭우. 자연 앞에서는 그 어떤 힘도 부릴 수 없다는 것을 늘 닥쳐서야 깨닫게 된다. 책 출간 계약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크지만, 무더위 속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나 고된 작업이었다. 유명한 작가 분들이 작품이 나오는 것을 왜 '산고의 고통'이라고 하는지 (겨우) 한 권의 책을 쓰면서 공감하게 되었다.
나는 언어에 능한 사람이 아니다. 이 생각이 책을 쓰는데 첫 번째 걸림돌이었다. 논문보다 책 쓰기는 더 어렵게 느껴졌는데,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맛있게 요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논문도 (겨우) 한 편밖에 쓰지 않아서 감히 뭐라 말할 자격은 되지 않지만. 논문이 재료 그대로가 들어간 비빔밥이라면 책은, 먹기 쉽게 야채도 다지고, 고소한 참기름도 버무리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먹는 과정도 친절하게 알려주고, 먹을 수 있도록 맛있는 냄새를 풍겨야 했다.
그래도 서점의 향기는 언제나 리프레쉬가 되었다. 유사한 주제가 나왔을까 해당 코너에 떨리는 마음으로 기웃거리기도 해보고, 수 천권, 수 만권의 책들을 볼 때마다 얇은 책이라도 출간한 작가님들이 너무나 존경스러웠다. 역시 사람은 그냥 볼 때는 교만해지기 쉽지만, 직접 부딪치는 과정을 통해 깎이고, 깎이고, 겸손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글을 쓰는 것은 그래도 강력한 힘이 있다고 확신한다. 꼭 출간을 앞둔 원고가 아니더라도, 나의 공간에 나의 글을 써내려가는 것. 원고를 쓰면서 떠오른 추억이지만 나는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는 것을 즐겼다. 일기장, 러브장(이불킥이다), 기도노트 등등.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싸이월드 다이어리, 네이버 블로그, 2020년부터 시작한 브런치.
그런데 신기한 점은, 자기 만족일 수도 있지만 글은 쓰면 쓸 수록 실력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꼭 잘 쓰는 실력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어떤 색의 글이 잘 어울리는지 독자들은 어떤 글을 편하게 읽는지, 내가 쓴 글 중 어떤주제의 글을 읽고 싶어 하는지. 이러한 것들을 보는 실력도 늘어난다.
글을 쓰면서 나를 알리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일 때도 있었지만, 가장 큰 장점은 엄마도 치료사도 아닌 그냥 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것. 그냥 나는 나인데. 글을 쓰는 공간을 벗어나면 척을 해야한다. 친절한 척, 다정한 척, 좋은 아내인 척, 좋은 엄마이자 언어자극을 잘 주는 엄마인 척. 글을 쓰면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척 하지 않아도 되니까.
아이를 출산한 후, 글쓰기 관련 책을 읽다가 내 입맛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책을 덮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작가님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감히 예측해본다. 글을 쓴다는 것이 꼭 명상의 느낌이 아니더라도, 나를 발견할 수 있고, 그 시간이야말로 엄마에게는 가장 필요한 시간이니까.
육아를 하면서 나를 발견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그리고 그럴 이유를 찾느니 육퇴 이후에 보고 싶었던 영상을 보며 잠이 드는게 더 나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그 시간이 쌓이면 분명 어떠한 선물을 건내준다.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만족감이 높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요즘 나는 '나'에게 관심이 많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잘 맞지 않는지. 이러한 관심은 20대 때 갖고 더 성찰했어야하는데. '이제서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나와 내가 염려하는 것들을 서서히 분리해가고 있다.
아이가 자라는 것, 남편, 주변 가족들, 그리고 일. 나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리해보는 작업.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아닐까. 잘되든 잘못되든 나의 탓이 아니라는 것. 나는 나라는 것. 글을 쓰는 시간은 이러한 분리를 도와준다. 앞으로도 볼 수 있는 눈, 타이핑 할 수 있는 손, 건강이 허락된다면, 꾸준히 써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