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품 이벤트보다 더욱 중요한 것.
#Intro.
얼마 전, 동생이 출산을 했다. 혹독한 입덧과 출산과정이 서서히 머릿속에서 잊혀갈 즈음이었는데. 잊을만하면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튼살 크림은 뭐 썼어?", "언니, 조리원은 2주 있었어?", "언니, 출산 가방은 언제부터 쌌어?". 신기하게도 정확히 기억이 나는 게 없었다. 정말 출산과 동시에 뇌를 낳은 것인가. 겨우 온이는 28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질문을 받을 당시는 더 개월 수도 어렸는데. 신기했다.
#. 1.
기억을 더듬더듬 떠올려보면, 임신 이후 가장 먼저 한 것은 병원에 가서 '임신이 확실합니다'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받고 산모수첩을 받은 거였다. 입덧이 워낙에 심했으니. 직장에 휴가를 내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서류였다. 그리고 보건소에 가서 관련 서류를 또 받고(이게 뭐였더라), 임산부 배지를 받았다. 디자인이 요즘도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찐 핑크색의 동그란 배지. 3호선을 주로 이용했었는데 오히려 20대 아가씨들의 배려를 많이 받았다. "어머, 죄송해요. 임신하신 줄도 모르고." 임산부석에서 일어나 주실 때 어찌나 감사하던지. 출산을 겪어 보았을 법한 중년 아주머니(?) 분들은 눈만 감고 계셨던 안 좋은 기억이 있다.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그리고 맘 카페에 가입을 했다. 논문 아동을 모아야 했던 터라 진작에 가입되어 있었던 곳도 있었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맘 카페를 더 많이 이용하게 되었다. 랜선 친구를 만나고 싶은 바람보다는 당시에 핫했던 '산모교실'과 '경품 이벤트'에 당첨이 되고 싶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산모 교실이 거의 중단된 것 같지만, 당시는 거의 매달 다른 업체에서 산모 교실이 진행되었고, 경품도 정말 다양했다. 그리고 1등과 2등에게는 고가의 육아용품이 전달되었다. 카드 할부를 긁어야만 소장할 수 있었던 최고급 육아용품들. 일도 곧 쉴 것 같은데 이렇게 살림에 보탬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2.
기대에 부풀어 갔던 산모교실은 마치 레크리에이션 행사에 참여한 것 같았다. 대학생 시절 엠티에 가면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초빙해서 행사가 진행되는데 그때가 생각이 났다. 각 부스마다 육아용품, 전집,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업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판매를 하려 오나보다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경품, 홍보 업체, 이러한 것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보험 상품에 대한 판매 강의를 듣는데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하시는 듯했지만 '이 곳에 와서 보험 상품에 가입하는 분들도 몇 계시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경품에 당첨된 것은 없었다. 방문한 누구에게나 주는 양말, 손수건, 기저귀들.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육아용품 박스를 또 채울 수 있었으니까.
#3.
시간이 지나서 아이가 돌이 지나고 일이 바빠지면서 맘 카페를 들락날락할 시간이 많이 나지 않았다. 특별히 아프거나 열꽃이 필 때 외에는 굳이 맘 카페에 sos를 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도움을 주실 분들도 계셨다. 가끔 신랑과 말다툼을 하던 날은 '같이 욕 좀 해주십시오'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4. 산모 교실에서 꼭 알려주어야 할 것.
매사에 시간이 지나서야 아쉬움이 느껴지듯이 출산 전에 단단히 준비해두지 못한 것들에 대해 아쉬움이 들었다. 출산용품보다는 '마음의 준비'에 있어서. 임신했을 때도, 직업적인 감각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주로 독서나 언어발달 관련 책을 읽었고, 정서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전에 EBS에서 진행되었던 <부모 60분> 프로그램이나 현장에서의 아이들을 보고 상담해왔던 터라. 그리고 아이의 정서적인 부분을 크게 다루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육아의 과정에 깊이 들어가고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많을수록 문제는 아이의 정서가 아니라 '나의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괜한 분풀이를 애먼 곳에서 하고 있었다. 임신했을 때 이런 일을 겪에 될 거라고 아무도 나에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신체적인 고통도 있었지만 정서적으로 오는 혼란의 과정을 이겨낼 힘이 점점 없어졌다. 아이로 인해 내 시간,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할 때 나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일을 나가는 신랑을 어떻게 지지해주어야 하는지, 일을 못하고 있을 때 주변에 대한 괜한 자격지심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이건 단순히 기도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기도 이외에 실질적인 교육을 따로 받아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매일이 새롭고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몰려왔다.
요즘은 산모교실도 프로그램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코로나 이전에) '엄마 마음 읽기', '아이 마음 읽기' 등의 다양한 주제의 강연도 많이 진행했던 것 같다. 유명한 육아서의 저자 특강도 곳곳에서 열리고 그림책 소모임 안에서 엄마가 힐링받을 수 있는 공간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내가 갔던 산모교실에서도 그러한 프로그램을 만나 보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진부하기도 하고, 대학교 때 동아리에서(아, 10년도 더 지났구나!) 했던 프로그램, 중고등부 때 수련회에서 밤에 했던 프로그램들 같은 옛스러운 냄새가 나지만.
엄마의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갖는 거다. 아이를 출산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는 여지를 두는 그런 시간을 마련하는 것.
나는 누구인가요? 임신 사실을 언제 알게 되었나요?
내가 자라오면서 가장 기뻤을 때는 언제였나요?
가장 슬픔을 겼었던 때는 언제였나요?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나는 무엇을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나요?
나는 무엇을 하면 가장 에너지를 얻나요?
나에게 가장 기쁨이 되는 존재는 누구인가요?
아이가 자라면 어떤 엄마가 되어주고 싶나요?
육아로 힘들 때 나는 무엇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까요?
아주 식상하지만 생각해보지 못했을 질문들에 대해서 답을 하나씩 적어나가다 보면, 육아에 있어서 힘듦을 견딜 수 있는 스펀지를 마음속에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5. 출산 전, 출산 이후, 가장 중요한 것.
'자존감'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정말 중요하다. 주변에서 '저 사람은 질투가 참 많아. 저 나이가 되어도'라는 평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나도 그런 평가를 받고 있을지도), 낮은 자존감을 숨기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출산 이후는 내 마음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외모를 꾸미는 시간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시간인데.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아이와의 전쟁 이후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면 내 마음도 평화가 찾아온 것 같은 착각으로 덮어 버리게 된다.
그리고 다시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그 이전의 상황보다 감정의 소용돌이와 분노를 표출하는 크기와 정도가 더욱 커진다. 그것도 아이 앞에서. 작고 연약한 아이는 그걸 받아들일 힘이 없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조차 돌보지 못한 상황이었던 터라 아이의 마음과 두려움에 떠는 눈빛이 보이지 않는다.
출산과 육아를 겪기 전에는 현장에서 주의집중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거나 예민한 기질의 아이들을 만날 때 나 또한 부모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어쩌다가 대기실에서 아이를 혼내고 계시는 엄마를 보면, '아이가 저렇게 혼나니까 정서가 불안정할 수도 있겠다'라는 교만한 생각을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 부끄럽고 죄송하다.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요즘은 서서히 그림책 모임이나 화상(zoom프로그램)을 이용한 모임이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 꼭 육아로 인해서가 아니더라도, 나의 어릴 적 상처가 가끔 날 괴롭히는 것 같다고 생각되거나 나에게 죄책감을 스스로 주고 있다면,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누구나 다 처음 겪는 '엄마'의 과정인데.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더군다나 우리 80년대 생들은 부모님들이 '내 자식만은 대학도 보내고 전문직으로 잘 키워야지'라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공부나 하고 싶은 일을 지원받으며 자란 경우가 많다던데('90년대 생이 온다' 책에서 보았던 것 같다). 아무리 자식이라지만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는 과정이 쉽다면 그건 신이 아닐까.
오늘 출근 전, 아무리 치워도 깨끗해지지 않는 거실을 보며 결국 참았던 화를 쏟아내 버렸는데. 퇴근 이후, 아이에게 미안했다고 사과해야겠다. 거실에 교구장을 튼튼한 녀석으로 바꾸어 놓았으면 진작에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돌아서서 생각하니 더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