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추억하며.
#Intro.
지난 5월, 우연치 않은 기회에 '서촌'에 갈 일이 생겼다. 참, 오래간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나와 신랑은 온이를 임신하기 전, 그리고 임신했던 해, 2017년 전체를 삼송에 있는 신혼부부 아파트에서 살았다. 지금은 번화가가 되어 간다고 소문을 들었는데 당시는 집 근처에 작은 마트 하나 조차도 없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일산 쪽으로 가거나 서울 쪽으로 나와서 데이트를 했다. 3호선 라인이 정말 재미있다는걸 매 주말 느꼈다. TV에서만 보았던 경복궁, 광화문, 그리고 기업, 신문사들의 본사가 모여있는 곳을 이렇게나 자주 올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1. 임신과 동시에 모든게 바뀌었다.
그런데 그러한 신기함과 들뜨는 시간들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입덧이 너무 심했다. 나의 입덧은 임신 초기에는 음식으로 반응이 오다가, 막달이 되어갈 때까지 각종 향수, 디퓨저, 샴푸냄새를 견디지 못하는 독특한 입덧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향수 냄새가 가득하던 합정역의 기억이 좋지 않다.)
한창 주말에 캘리그라피를 배우러 경북궁역에 갔었는데 임신을 한 뒤로 몇 개월은 지하철에서 내리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음식냄새와 직장인들의 향수냄새가 가득했던 그 곳. 곳곳에 아기자기하고 한옥스러운 카페나 식당들도 있었지만, 속에서는 하루종일 멀미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곳들을 찾을 여력이 없었다.
임신 중기에서 후기로 가고 있을 무렵에야 다시 서촌의 공기가 맑게 느껴졌다. 여전히 신기한 곳. 당시에 그림책에 관심이 있었다면 매일 들렀을 작은 서점들도 보이기 시작했고, 시장 안 곳곳에서 서서히 다시 '사람 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신기한건 '학교'가 많이 보이지 않았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종종 보였는데. 신랑의 말에 의하면 이전에는 학교가 몇 개 있었으나 점점 없어졌다고 했다.
우리 부부도 슬슬 다시 분당으로 올 준비를 하고 있었고, 캘리그라피 수업도 서서히 마무리 되었다. 그렇게 배가 불러오며 서촌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 언젠가는 아이와 함께 오겠노라고.
#2. 다시 찾은 곳, 그리고 바뀐 신분.
다시 찾은 서촌은 변한게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출구 번호는 기억이 나지 않아서 찾아보았지만, 출구를 빠져나오니 어디쯤 스타벅스가 있었는지 기억이 날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이 곳은 입덧으로 인해 힘들기만 했던 곳은 아니었다. 신랑과 마지막 '단 둘만의 시간'을 보냈던 곳이기도 했고, 퇴근 이후에 함께 만나서 늦은 시간까지 데이트를 즐기던 곳이었다. 멀지 않은 곳의 광화문은 여전히 아픈 잔재들이 남아있었다. 신랑과 주말에 말다툼을 할 때면 혼자 나와서 머리를 식힌 곳이기도 했다. 참 신기한 매력을 가진 곳이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처음 내 시선에 들어왔던 예쁜 카페, 방송국 촬영 차량, 뉴스에서만 보았던 기업의 본사 건물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낯선 땅을 찾아온 외국인들, 이 곳에서 오랫동안 거주하셨을 것 같은 연세가 있어 보이셨던 할머님들.
아, 생각해보니 이 곳은 2016년 11월, 다니던 직장이 있음에도 남몰래 면접을 보았던 직장이 있던 곳이기도 했다. 어차피 이사를 할 예정이니까, 이력서를 넣고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았는데 '합격'이 되었다. 하지만 기존 기관에서 1달의 계약 기간이 남아있었고 밀린 서류와 이끌어가고 있었던 개별, 그룹수업을 나의 이직으로 인해 버릴 수는 없는 터였다. 올 때마다 '그 때 그냥 바로 이직을 할껄' 이런 생각도 많이 했었지만. 이직을 말린 건 신랑이었다. 기간을 채우고 나오는게 나중에 훨씬 좋을 것 같다고. 선택은 나의 몫이지만 본인의 생각은 그렇다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의 선택에 후회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 자신에게 남아있을 찜찜함이 줄어든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 선택 덕분에 몸도 마음도 고생을 좀 했지만.(그 다음으로 들어갔던 직장은 통근거리가 1시간 30분이었다.) 전 직장 동료분들에게 연락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다시 분당에 오게 되었으니까. 사람의 일이라는건 참 모르는거다.
그 때는 신혼이었고, 아이도 없었고, 뱃속에 있었고, 자유를 누릴 수 있었는데, 2020년 5월에 나의 모습은 아이의 하원 전에 모든 일정을 마쳐야만 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지나가던 아이들이 다르게 보이고, 아기띠를 하고 가는 엄마의 얼굴에 땀이 보인다. 한 건물 사이로 붙어있는 '임대문의' 안내문이 보인다. 이 곳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아픔을 왠지 가지고 있을 것 같았는데.
그리고 나는 이 곳에 '그림책' 관련 일을 펼치고자 찾았고, 아직 명확하게 세워진 바는 없지만, 이후의 나의 인생 시나리오에 무언가 하나 추가를 하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통인스윗'에서 구입한 에그타르트를 양손 가득 들고.
#3. 다시 돌아온 일상에서.
'추억'이라는건 참 신기한 것 같다. 부질없다고 생각 되다가도 다시 그 추억으로 인해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우리 부부에게도 그런 신혼이 있었고, 온이를 뱃속에 품고 열심히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광화문 야경을 구경할 여유가 있었고 신랑과 말다툼을 하면 찜찜한 기분을 나 스스로 해소할 공간이 있었다.
아직은 온이의 양육, 그리고 나의 일을 위해 친정 근처인 분당에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이쪽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처음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막 지어진 도시에서 느꼈던 외로움, 무언가가 새로 생기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기다림, 새로운 곳에 모인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낯설게 느껴졌는데. 언젠가 온이가 자라서 분당을 떠나게 되면 그 때는 조금 더 성숙하게 그 시간들을 극복해나가고 채워나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