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들.
온이는 잠 패턴이 일찍 잡힌 편이었다. 100일 이후로는 잠으로 힘들게 한 적은 거의 없었다. 주변에서 아이 수면 비결에 대해 물어볼 때도 있었는데 어떠한 비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패턴'을 잘 아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이의 수면 패턴이 깨지기 시작했다. 특히, 주말은 더 그랬다. 엄마와 아빠가 모두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은 낮잠을 거의 자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어제가 유독 그랬던 것 같다. 이른 아침부터(7시 전) 깨서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이야기하면서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유독 주말이면 일찍 일어난다고 들어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냥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러한 시간들이 몇 달째 지속 속되다 보니 나도, 신랑도 지쳐 있었다.
내가 일을 해서 그럴까?
갑자기 종일반으로 늘려서 그런 걸까?
이 생각이 나를 본격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에이, 아닐 거야. 주변 봐도 아이들이 주말이면 패턴이 깨진다고 하던데.' 이제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주기에는 아이가 뭔가 변해있는 것 같았다.
* 최근 온이의 변화.
1) 요구 사항이 즉각적으로 수용되지 않으면 심한 짜증을 낸다.
2) 한 가지 요구사항을 들어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다음 요구사항을 이야기한다. 어떤 경우는 요구사항을 들어주었을 때도 짜증을 낸다.
3) 밤에 늦게 자기 시작했다. 주말에 낮잠을 거의 자지 않는다.
자라는 과정이어서 그런 걸까?
이것도 항문기와 관련이 있는 걸까?
어제, 신랑이 교회에 간 사이, 결국 온이에게 쏟아내버리고 말았다. 얼마 전에 그림책 모임에 다녀온 뒤로, 그리고 육아/심리 관련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침대에 누워서 낮잠을 자려고 하는데 아이가 내 얼굴을 때렸다. 어떤 공격성을 가지고 때린 것 같지는 않았다. 엄마가 나와 놀아주지 않고 재우려고만 하고, 핸드폰만 보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현인 것 같았다.
순간, 너무 아파서, 아이의 손을 잡고 "너, 안돼! 한 번만 더 그래 봐!" 마치 더 큰 아이를 다루듯 29개월이 되어가는 아이에게 협박을 했다. 속에서 '내가 왜 이러지' 생각을 했지만, 이미 아이에게 쏟아내 버린 나의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다들, 뱃속이 더 좋은 때라고 이야기하지만, 임신했을 때는 더 그랬고, 아이를 낳은 이후에도 그 말은 결코 공감할 수 없었다. 입덧이 워낙에 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너무 지쳐갔다. 나의 삶이라는 것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갔을 때, 친정엄마가 가끔 와주실 때, 출근했을 때에만 존재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아이가 자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 삶이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는 걸까?
출근을 할 때, 이제 아이는 더 이상 엄마가 "잠깐 나갔다 올게", 혹은, "쓰레기 버리고 올게"라고 하는 말에 속지 않는다. 직감적으로, 엄마가 늦게 올 거라는 것을 안다. '나는 엄마가 오기 전까지 아빠와 보내야 하는구나.'
내가 부모님들께 상담을 했듯이, "엄마, 출근하고 올 거야. 끝나고 바로 올게. 아빠랑 재미있게 시간 보내고 있어."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 엄마의 거짓말은 아이를 더 불안하게 하니까. 그런데, 정말 내 자식에게는 그게 잘 안 된다. 뭐라도 사 온다고 이야기해야 아이에게 안심을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가장 마음이 무너질 때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때다. 오후 시간이 지나면서 3시 반 이후가 되면 수업을 하지만 나의 눈은 계속 시계에 가 있다. 잘 있을까, 친구들의 엄마가 데리러 올 때 뛰어나가서 우리 엄마가 아니라는 걸 알면 얼마나 속상할까.
**이 언니 엄마가 데리고 갔어.
**이 엄마가 데리고 갔어.
점점, 이러한 아이의 말이, 단순한 경험 전달이 아니라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엄마, 그래서 나 많이 속상했어요." 이 말로 해석되었다.
폭풍 같은 오후를 보내고 신랑이 교회에서 왔다. "얘, 안자!" 분풀이를 괜히 신랑에게 했다. 억지로 자는 게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데. 아이는 엄마와 함께 노는 시간이 즐거워서 자지 않는 것 같았다. "온이야, 이제 아빠랑 블록놀이해봐. 아빠 집 잘 만들어." "엄마랑 만들 거야. 집 엄마랑 만들 거야!".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교재 작업을 하면서도 계속 생각해보았다. '일을 한 곳은 정리해야 하나?' 단 한 번도, 내가 이러한 고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는 일이 하고 싶었다. 육아에 있어서 나의 유일한 탈출구는 '일터'였기 때문에. 그리고 일을 하면 내가 '여자, 애 엄마' 이런 수식어가 아닌, '전문직' 여성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어쩌면, 아무도 나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데, 혼자만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을 하든, 하지 않든, 당장은 내 아이의 정서를 잘 돌보는 게 우선인데. 엄마가 일을 한다고 해서 아이이 정서가 불안정하다는 말은 지금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어떠한 정확한 근거가 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제는, 내가 벌려 놓은 일이 너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나를 신뢰해 주시는 기관 부모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참, '부모'라는 건 내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장 우선이구나. 그래서 어머님들도 내가 하원을 빨리 해야 한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당신의 아이들을 하원 이후 시간에 맡기셨겠지.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퇴근이 늦어지면,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 만큼은 아이에게 올인하면 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내 일이 프리랜서가 가능한 직업인 만큼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제는 아이에게 '엄마, 아직 50점 이하예요!'라는 평가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답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보아서도, 앞으로는 출근을 해서 대면 수업을 하는 것은 'on-tact' 체제에 비해 오히려 더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 팬데믹이라는 게 언제 끝날지 모르고, 새로운 전염병은 계속 나올 거라고 모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어제 신랑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오빠, 꼭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 일은 하나 정리해야 할까 싶어. 근데 일을 정리하면서 온라인 쪽으로 뭔가를 시작해야 하나 싶어. 당장 온이가 어린이집에서 아프다고 연락 오면 나 또 일 못하잖아."
임신했을 때에도 아이가 100일이 되면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친정에 맡기고 하고 싶었던 내 일. 누군가가 나를 '일 하지 않는 사람'으로 볼까 봐 일부러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온이야, 엄마 오늘 출근하면 할머니랑 재미있게 놀고 있어."라고 말하던 내가. 일을 점점 줄여나가는 건 어떨까. 온라인으로 하나를 마련해보는 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다니.
이러나저러나 온이에게는 참 미안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내 생각들이 부질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은 경력이 오래 단절되지 않은 이상은, 심지어 경력이 조금 단절되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데. 뭐가 그렇게 급했던 걸까? 오히려, 나중에 온이가 정서가 정말 불안해져서 정말로 내가 일을 정리해야 할 때가 오게 된다면, 그게 더 슬프지 않을까.
몇 달 전, 동생이 다니던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퇴사를 하셨다.
엄마가 옆에 있어줘야만 하는 일이 생겨서.
이게 퇴사 이유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의사라는 직업도 자식 앞에서는...' 이런 생각과 함께 나도 그런 날이 올까? 질문을 던졌다. 불과 몇 달 전인데. 교만했고, 자신감이 넘쳤던 것 같다. 나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내 직업은 프리랜서가 가능하니까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일을 포기하는 게 오히려 아이를 양육하는데 더 스트레스가 되거나 나중에 아이에게 "엄마는 너를 위해 이것도 포기했는데, 넌 왜 그걸 못 알아주니!"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일은 계속 유지하는 게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아직 나도 겨우 29개월 차 엄마가 되어가고 있기에 초등학생, 청소년 자녀를 두신 선배 어머님들에 비하면 애기에 불과하지만. 나도 감정이라는 게 있고 나도 내 맘대로 세상을 살아왔지만. '육아'라는 시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내 마음이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아. 어제서야 깨달은 사실 : 온이가 주로 "요구르트 줘", "치즈 줘", "비타민 줘" 이 쓰리콤보 요구사항을 연달아서 할 때는 나와의 놀이 상황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내가 어떤 일에 집중하려고 할 때. 집안일을 할 때. 스마트폰을 볼 때. 주로 이런다는 것.
아이가 짜증을 낼 때도 아직은 언어로 수정이 가능하다면, 알려주어야 할 것 같다. "비타민 줘어어어어어, 으에에엥" → "온이야, 엄마한테, 엄마랑 놀고 싶어요. 설거지 그만 하고 놀아 주세요. 이렇게 말해봐"
세상에 워킹맘, 전업맘, 이렇게 두 종류의 엄마가 있다고 만들어버린 사회도 조금은 (많이) 원망스럽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가고 있는데. 지난 글에도 적었지만, 집에서 아이만 본다고 해서 허름한 티에 지나가는 20대 아가씨들을 부러워하는 그런 이미지로 단정 지어 버리는 건. 엄마의 아름다운 모습을 철저하게 가려버리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