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엄마도 빛나는 전문직이다.

회사로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엄마는 '일'을 하고 있다.

by 말선생님

온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나의 출근 일수는 주 이틀이었다. 어린이집에 가기 두세 달 전부터는 시어머님께서 잠시 도와주신 적이 있어서, 주 3일.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나가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가 나가고, 요즘같이 날이 더울 때는 이른 아침을 먹고 함께 산책을 나갔다.

철마다 변하는 나뭇잎 색, 동네 가게 주인 분들의 넉넉한 인심, 아이의 성장을 나보다 더 세밀하게 보시는 시선이 너무 좋았다. 신랑은 나에게 우리 동네 카페 유지가 될 것 같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 아이와 보내는 동네 산책 시간은 일을 쉬고 있다는 생각을 잊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지난 주말, 신랑 찬스로 잠시 카페에 나와서 생각해보았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려고 했을까?. 늘 정답은 알고 있었다. 언어치료사로서 내 자식을 잘 키우는 것만큼 성공한 것은 없다. 치료실을 오는 아이들과 부모님을 볼 때마다 나의 육아를 돌아보기도 하고 어머님들을 통해 알게 모르게 배우는 것들도 있었다.

특히,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기업을 다니시다가 아이가 발달이 늦은 것을 알고 퇴사를 하신 어머님들을 보면 괜스레 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온이와 주고받는 대화가 통하기 전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왜 여자가 전담을 해야 하는 사회 구조인 걸까. 아무리 개방적인 시부모님이더라도, 정작 우리 친정 부모님조차도 아이의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는 (옛날) 인식이 크신 것 같다.

요즘은 그러한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면 사회적으로 비난을 당할 수도 있지만, 우리 앞 세대이신 부모님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는 어떤 틀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육아에 있어서. 그러한 틀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명절 2~3주부터는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고민 글이 맘 카페를 가득 채운다.


학부 때 나는 선교단체에 들어가서 3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졸업을 하던 해는 교회 일이 너무 바빠서 동아리는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되었지만. 선교단체에는 나의 '내면, '자라온 과정'에 대해 묻는 언니, 오빠들이 많았다. 특히, 공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은 편이었다. "왜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셔!"

그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한 1학년 말을 지나면서 깨닫게 된 것은 공부 또한 나의 낮은 자존감을 포장하는 도구였다는 것. 그 포장지를 놓지 않으려고 4년을 열심히 달려왔다. 대학 성적이 좋아야 서울에 있는 이름 있는 대학원에 갈 수 있고, 그래야 대학병원 정규직으로 근무할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나만의 법칙을 계속 만들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출산 이후 6개월 만에 주 1회 씩이라도 출근을 고집하고 계속 구인구직 사이트를 드나들며 '정규직' 자리를 알아보았던 것도 아직 그 포장지를 놓지 않고, 오히려 더 덧 씌우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주중에 아이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엄마의 자존감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오히려 내가 아니라 아이가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 오는 아이들과 내 아이의 개월 수가 점점 비슷해진다. 오히려 내 아이 개월 수가 더 많은 경우도 이제 종종 있다. 현장에서 아이들과 장난감을 가지고 역할놀이를 하고, 블록으로 집을 만들고, 뽀로로 유치원을 만들고, 아기자기한 만들기를 하면서 점점 나의 아이가 생각났다.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내고 있는 내 아이의 모습, 친구들이 하나둘씩 집에 간 뒤에 남아있을 아이의 모습.


매일 피곤하다는 핑계로 아이와 고작 놀아주는 시간은 산책하는 시간, 그리고 저녁거리 설거지를 하고 난 이후에 한 시간도 안 되는 그때가 전부인데. 과연 내 아이에게는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놀아주었을까. 코로나로 인해 한 달 정도 기관 휴관을 했을 때 이후로, 아이와 함께 색종이를 자르고, 색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리고, 아이의 작품을 방 문과 벽에 붙여주면서 아이를 칭찬해주었던 적이 몇 번이나 될까.



모든 엄마가 다 겪어야 하는 시간일까. 모든 워킹맘이 다 겪어야만 하는 시간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서 진짜 중요한 것과 조금 중요한 것들을 수첩에 하나둘씩 적어보았다.

출산 직후,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토록 근무해보고 싶었던 소아정신과에서 근무도 하고 있고, 프리랜서라 시간 조정도 유동적인데. 나는 뭐가 이렇게 또 힘들까?.






집에서 온전히 아이와 함께하는 전업맘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또한 나의 낮은 자존감에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드라마 속에서, 언론 속에서, 워킹맘의 이미지는 그 안에 내적인 갈등이 있지만 그래도 옷차림도 전문직스럽고 피곤함 가운데 그래도 전문성을 겸비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이름도 '워킹맘'. 영어 이름이어서 그런가 고급스럽기도 하다.


'전업맘'에서의 '전업'은 딱히 무언가로 바꿀 용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드라마 속 전업맘은 억척스럽거나, 후줄근하게 늘어난 티에 고무줄 바지를 입었거나, 혹은 아이를 키우면서 기가 세진 듯한 모습을 그려내는 경우가 많다.

몸은 아이와 함께 집에 있지만 원격으로 회사 업무를 볼 수도 있고,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을 수도 있고, 온라인 기업의 CEO일 수도 있고, 어떠한 한 분야의 전문가일 수도 있는데. 그러한 모습들이 3년 전만 하더라도 방송에서 많이 나타내 주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한 생명을 양육하는 것만큼 귀한 직업은 없다. '전업주부', '주부'는 누구보다 현명하고 똑똑하고 섬세함을 가지고 있다. 전업주부라고 해서 매일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다거나(아르바이트를 무시하는 건 또 아니지만), 경제적인 지식이 얕아서 사기를 당한다거나, 허름한 옷을 입고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사회적으로 '엄마'에 대한 이미지가 더 아름답게 그려졌으면 좋겠다.


물론, 특히 돌 전까지는 거의 사람이기를 포기해야 할 것만 같았고, 출근하는 남편이 부러웠던 적도 많지만. '엄마'만큼 세상에서 아름다운 일을 하고 있는 직업이 또 있을까?.



오늘은 일찍 퇴근하는 요일이니까 오래간만에 아이와 동네 산책을 하고 싶어 졌다. 이제 더 이상, 동네 상점 사장님들께도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어서요"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엄마'라는 것 그 자체로 나의 자존감이 이전보다는 높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아이가 잠든 이후에 교재 작업을 하는 것도, 나의 이후의 삶을 그리며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당장의 수익은 없지만, 하루하루가 너무나 값진,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평범했지만 '사치'가 되는 곳,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