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 토닥토닥'이라는 말 대신에...
2023년은 7년 동안의 결혼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이면서도 감사했던 한 해였다. 아빠가 소방관이셨지만 크게 아파서 입원하신 적도 거의 없었고, 생각해보면 결혼 전에는 가족이 아픈 것을 경험해본 기억이 없다. 엄마는 어렸을 때 내가 아팠다고 하셔는데, 사진 속에서만 보았지 그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신랑은 결혼 초부터 뇌질환 증상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수술이 아닌 약물치료가 잘 되고 있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내가 일을 그만 두면서 경제적인 부담감도 꽤 컸을 터였다. 아주 가끔 증상이 나타나다가, 그 빈도가 잦아졌고, 담당 의사는 그게 그 질환의 모습이라고 했다. 정신을 잠깐 잃다보면 마치 공황장애처럼 때로는 치매처럼 보였다.
곁에서 잘 다독이고 안아주었던 기억보다는 아이가 더 어렸을 때였기에, 다그쳤던 미안함이 남아있다. 가장 나를 힘들게했던 방해는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했나' 이 생각이었다. 그 생각과 동시에 항상 결혼식 서약 장면이 떠올렸다. 신이 떠올리게 해주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 또한 죄책감의 원인이 되었다.
결론은 신랑은 수술이 잘 되었다. 지독하게 더웠던 8월, 온 가족의 노력과 헌신으로. 신랑이 수술하고 입원해있는 동안 주변 사람들의 위로와 도움도 많이 받았다. 형식적이지 않았던 '기도해줄게' 부터, 힘내라는 말까지. 너무나 감사했다.
그런데 '힘내, 토닥토닥'이라는 말은 힘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는 크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위로의 경중을 나의 잣대로 따지고자 함은 아니지만, 상대방이 힘을 낼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일상을 챙겨주는 것이 훨씬 더 나았다. 언젠가 이와 관련된 영상을 한석준 아나운서의 채널에서 본 적이 있는데 너무나 공감되었다.
물론, 누군가를 생각하고 챙겨주는 말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가. 나를 생각해주었기에 잠시나마 시간을 내어서 챙겨준 말이기에, 판단할 자격은 없다. 다만, 누군가를 위로하고자 한다면, 힘내라는 말보다는 '내가 상대방이라면 어떤 말이 듣고 싶을까?' 고민을 한번 더 해보는 것은 어떨까.
남편이 아픈 상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동안 만나왔던 아이들의 부모님이었다. 나는, 특히 20대 때의 나는 얼마나 자만했던 걸까. 아이를 양육하면서도, 남편이 아픈 상황에서도, 나는 내가 상담 때 전해드렸던 조언을 지켜내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이성의 끈을 잡고 있는 것조차도 너무 버거웠다.
언젠가 sns에서 금쪽이 방송 중 일부를 편집해서, 자신의 장애를 친구들에게 공개하는 것을 권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의견에 찬성할 수 없다. 한 가족에게는, 그 가족의 이야기에는 가족 구성원의 장애와 아픔이 드러내고 싶을 만한 것이 아닐 수도 있기에. 주변에서 함부로 아픔과 아픔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하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아픔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좋은 차도, 명품도, 내 자식의 똑똑함도, 건강 앞에서는 한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인생에서의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도. 어쩌면 노년에 경험했을 일을 30대 중반이 걲이는 이 즈음에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다.
늘 언어발달 이야기를 남기다가, 한 해가 지나가기 전 꼭 남기고 싶었던 2023년 뜨거운 여름의 기록. 그럼에도 나는 남편의 아픔을 주제로 콘텐츠나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크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