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육, 코로나가 좁힌 우리의 거리.

사실은 가정보육이 두려웠다.

by 말선생님


2020년 2월, 코로나 19가 터졌다. 정확히는 1월 말. 설 연휴를 보내고 2월 첫 주를 보내면서 잘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메르스가 그랬으니까. 그런데 3월이 통으로 날아갔다. 나의 일, 수입, 아이의 어린이집도.

3월 언젠가, 신랑이 일찍 퇴근해서 잠시 나온 카페.


#3월 첫 주.


직업이 아이들을 보는 전문직이라지만 내 아이를 평일에 온전히 돌보는 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밖에 아직 날이 쌀쌀하고, 춥다. 꽃샘추위가 찾아온 것 같지는 않지만 외출을 하려면 단단하게 입고 나가야 한다. 한 번 밖에 나가려면 다녀와서 해야 하는 빨래가 한 짐이다. 아이와 집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놀이는 그림책 읽어주기였다.

이때, 온이는 산출할 줄 아는(말할 수 있는) 단어가 '아빠, 엄마, 물, 띠띠(애착 인형 이름), 쁘띠 띠(비타민)' 이 정도였다. 언어치료사 엄마의 24개월 아이의 언어 수준은 어림잡아 18개월 정도로 산출되지 않았을까. 여기에 대해서 아이를 닦달해가며 말을 빨리 트이도록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인지가 크게 늦되지 않으면 따라잡으리라는 생각으로 출퇴근을 했다. 주말에 놀아주기도 버거웠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찾아보면서 장바구니를 가득 채워갔다. 그런데 정작 주문 버튼을 누를 만한 것들은 눈에 그다지 들어오지 않았다.


현재 30개월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이 책을 거의 외워서 이야기한다.


#3월 둘째주.


언어치료실 안에서 아이들과 그룹 수업 때 손쉽게 했던 활동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큰 전지만 있다면 나무도 만들고 바다도 만들고 넓은 들판도 만들 수 있었다. 온이와는 단 한 번도 그런 활동을 집에서 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에게 미안함이 앞섰다. 근처 문구점에서 큰 전지와 집에 있는 크레파스, 그리고 색종이만 사용해서 봄 나무를 꾸며보았는데 온이가 좋다 못해 흥분하는 게 느껴졌다. 그룹수업 때는 이 활동이 다소 아이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질 거라 생각했었는데, 나의 아이는 엄마의 작은 노력을 읽어주고 반응해주었다. '네가 엄마의 상호작용 시도를 오히려 높이는구나.'


말을 따라 하도록 시킨 건 아니었는데, 온이가 산출하는 단어 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꽃, 나무, 나비/. "온이야, 그---려 주세요, 그---려" 문장을 들려주면, /그여/ 즉각적인 모방이 나왔다. "우와, 우리 온이 정말 최고다!" 엄청난 리액션과 박수, 그리고 높은 어조의 칭찬을 쏟고 있었지만 마음속에 깊이 드는 죄책감도 아닌 반성도 아닌 그 애매한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왜 내 아이에게 이렇게 하루 30분도 집중해주지 못했을까.' 부모상담을 할 때 내가 강조했던 그 30분, 1시간은 대체 어디에 간 걸까. 나의 육아에는 내가 상담한 부모상담 내용은 존재하지 않았다.


#3월 셋째주.


엄마의 놀이가 점점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활동이 sns에 자랑할 만큼 좋은 아이템이라기 보다는 '온이의 관심'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커지고 있었다. 온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리고, 온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그리고, '온이가 좋아하는','온이가 이야기하는' 주제가 놀이의 아이템이 되었다. 이전에는 '엄마가 생각한' 무엇인가가 놀이의 주제였는데, 엄마가 생각한 것과 아이가 생각한 것의 차이를 점점 좁혀나가기 시작했다.

온이가 24개월이 지나면서 이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모든 문장의 주어는 온이가 되었다. 나도 온이가 이야기하는 주인공을 매일 따라가 주고 반응해주어야 했다. (내 기분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날은 "제발 엄마 좀 그만 힘들게 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생각한 활동에서
온이가 좋아하는 활동으로.


함께 만들었던 작품으로 방 문을 꾸며보았다. 그동안 숱하게 아이들의 작품을 내 치료실 안에 붙여보았지만 온이와 만든 작품을 벽에 걸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나 내 아이의 육아와 내 아이의 관심사에 무지했었다니.


온이가 산출하는 단어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탄천을 나갈 때도, 집에서 엄마와 함께 그림을 그릴 때도, 온이에게 익숙한 사물의 이름이 하나둘 씩 온이의 목소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99% 그린 뽀로로.



#3월 마지막 주.


뉴스에서 교육부의 발표가 새로 날 때마다 소식을 기다렸지만 아이들의 정상 등교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어린이집에서 긴급 보육은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기관 또한 다시 희망자에 한해 수업 진행이 가능해졌다. 최대한 오전으로 수업을 몰아서 진행하고 오후 12시 이후부터는 온이와 함께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다시 온이와 함께 낮 시간을 보내던 18개월 이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때 우리 참 좋았는데.
야, 겨우 24개월밖에 안 지났는데 이렇게 거리가 생겼냐.
어린이집에 간지 겨우 6개월 만에?'



3월, 4월의 탄천은 참 아름다웠다.



온이는 산책을 가장 좋아한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엄마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엄마 손 잡고 가자." 문득, 힘들어서 탈출하고만 싶었던 돌 이전의 산책길이 생각이 났다. 이제 온이는 자신의 의사가 분명해져서 내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가지 않는다. 아기띠에, 디럭스 유모차에 가만히 있는 아기가 아니다.


일을 하다 보니 내 아이는 저절로 잘 크기를 바라는 마음에 중요한 것들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굉장히 많이 놓치고 있었다.


육아 전문 업체 홈페이지나 sns 안에서도 가정 보육을 위한 챌린지를 진행하고 있었다. 많은 엄마들 또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왜 진작 그렇게 해주지 못하였을까. 코로나가 가져다준 것 중 하나였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구분하기 애매한 무언가를 코로나는 육아하는 가정 안에 계속 던지고 있었다.





다,시 2020년 3월과 같은 상황을 마주한다면,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는 '글쓰기'라는 나만의 일이 생겼고(감사하게도 벌써 구독자 수가 70명이 넘었다.), 육아를 우선으로 하면서 배우고 있는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누군가 나의 글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기대하고 있지 않더라도, 이 순간에 충전을 하고 아이를 마주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물론 글을 쓰며 100%가 충전되어도 자고 일어나는 순간 육아 에너지 배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핸드폰과 마찬가지로 95%로 줄어들어 있을 때가 많다.(아이 옆에서 잠만 잤을 뿐인데.)


이 글을 왜 이제야 꺼내느냐고 물으신다면! 2020년 어린이집 여름방학 안내문이 왔다. 우리 부부는 각자 하루씩 휴가를 쓰고, 이틀은 친정 엄마께 sos를 하기로 했다.


온이야, 결코 너와의 시간이 힘겨워서
이렇게 힘들게 조정하고 있는 게 아니야.
엄마는 너와의 시간을 기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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