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육아한다고 안타깝다고 느끼지 마세요.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금요일은 늘 한 주간 참았던 감정이 쏟아져 나온다. 20대 때 아니, 아이를 출산하기 전까지는 주말은 '일'에서 해방되는 시간이었다. 직장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살이 3kg 정도 빠진 적도 있었지만 주말에 데이트를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 보면 어느 정도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 있었다. 그리고 월급날을 기다리며 버티고 버티다 보면 휴가를 쓸 수 있었고 주변 친구들에게 나는 직장에서 이렇게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 맛에 전화통을 붙들기도 했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느꼈던 것은 육아는 육체적인 피로도 있지만 감정 노동이 훨씬 크다는 것이었다. 100일 이전, 이후, 그리고 돌 이후, 아이가 말이 트이기 전 후로 감정적인 부분을 부모가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면 아이와 남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안에서 육아를 하기에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넉넉하게 살아가기 힘에는 힘에 부친다. 이 말 또한 굉장히 조심스럽다. 남편의 수입을 무시하는 의미가 포함되어서도, 여성의 사회적인 역할과 지위를 무시하는 의미가 담겨서도 안된다.
한 때, 언어치료사 직업을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좋은 일 하시네요."였다. 대학을 갓 졸업해서 사회에 나왔을 때는 그 말을 들으면 사회적으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아서 내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때가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좋은 일'에 대한 함축적인 의미가 왠지 '좋은 일이긴 한데 돈은 안 되는 일인 것 같다'는 의미로 들리기 시작했다. 사회 물을 어느 정도 먹고 나니 나의 마음 밭이 척박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육아'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에 대한 나의 마음 또한 그때와 비슷한 것 같다. 아이를 출산하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또한 "정말 값진 일이다, 가장 의미 있는 일이다"였다. 그런데 그 말을 너무 자주 들으니까 신뢰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값지다'는 의미 안에 어떤 게 담겨있을까? 동정심까지는 아니겠지만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 같이 느껴졌다. 몸이 고되고 힘든 건 사실이지만 육아가 사회적으로 안쓰러운 일은 아닌데. 이 또한 내 마음이 척박해져 있기 때문인 걸까?
'육아'는 힘든 일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쓰럽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어가는 일이 아닌데 세상은 육아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보고 그 여운이 일주일이 넘게 갔지만 미디어는 평범하게 육아하는 엄마에 대한 이미지를 때로는 처량하게 만들어버린다고 느껴진다.
"요즘 뭐 하고 지내? 아이 키우느라 바쁘지? 아이 정말 예쁘더라. 조금만 더 힘내면 다시 일할 수 있을 거야." 이런 안부보다는 "아이 잘 크고 있는 모습 예쁘더라. 요즘 온이는 뭐 좋아해? 새로운 말도 많이 해?" 이런 안부인사가 때로는 엄마에게 더 힘이 된다. (나만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을 하고 사회적으로 복귀를 해야만 내 삶이 정상화된 것이 아니라는 걸 왜 그동안 깨닫지 못했을까.
일을 하고 온 엄마의 마음은 척박해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치료실 안에서 "어머님, 하루에 10분만이라도 자극 주세요. 놀아주세요."라는 말도 사치스럽게 들릴 수도 있다. 내가 치료사와 마주하고 있는 엄마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치료 선생님이 아직 보아하니 싱글 같은데. 그래서 이 육아 현실을 모르시는구나.' 혹은, '이 못난 엄마를 만나서 우리 아이는 언어 자극도 제대로 못 받았네.'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작년 이맘때였다. 매번 할머님이랑 같이 오던 아이가 어머님이랑 치료실에 왔다. 곧 둘째 출산에 들어가셔서 육아휴직을 하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어머님, 우리 oo이가 어머님이랑 같이 이 곳에 오니까 뭔가 더 안정되게 느껴져요. 가정에서도 더 좋아하지요?" 내가 아이를 보며 느낀 것들을 자연스럽게 말씀드렸는데 어머님께서 "선생님 그런 말씀 하시면 저 죄책감 들어요. 주변에서 다들 그래서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을 하는 엄마도, 일을 하지 않는 엄마도 (워킹맘, 전업맘으로 엄마를 구분 짓는 것도 어찌 생각하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늘 마음 한편 아니 마음의 가장 큰 부분은 '아이'인데, 사회는 '엄마'를 '임신, 출산, 육아, 일, 워킹맘, 전업맘, 육아휴직' 이러한 딱딱한 단어들로 정의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육아'에 대한 시선이 조금 더 무뎌졌으면 좋겠다. 동정, 응원, 지지를 받아야만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인데, 그런데 지금 아이를 키우는 중이다' 이렇게 조금은 더 평범하게 인식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엄마들의 대화 또한 변화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일 하세요? 전업이세요? 아이 전집 어떤거 있어요? 영어 유치원 보내세요? 이번에 그 아파트 청약 넣으세요?" 이러한 대화 보다는, "제가 어제 온이랑 산책할 때 보았던 것들을 전지에 그리고 붙여주었거든요. 정말 좋아하더라구요. 앞으로 온이랑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놀아줄 수 있을지 고민되요." 이러한 다소 교과서 같은 이야기도 가끔은 오간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