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밤이 되면 주방이 서재가 된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글쓰기, 브런치 작가 공모전.

by 말선생님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도 초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글짓기 상도 받았었는데.'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그만큼 글쓰기는 모두에게 낯설지 않은 존재인 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알기 위해서는 글을 읽어야 한다. 하루 종일 컴퓨터 작업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 또한 '초등학생 때는...' 그 멘트를 자주 이야기하곤 했지만 글과 나의 거리는 거의 '싸이월드' 세상 속에서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전체 공개 일기장은 점점 일촌공개 일기장이 되어갔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싸이월드에 최근 올린 게시물은 아마 온이가 100일 무렵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사진을 다 받아두기는 했는데 글을 쓰려고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로그인이 되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




내가 적은 글을 '글'이라고 하기 점점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그즈음에 이사를 했고 구직을 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당시 인스타그램에서 한창 육아용품 후기 글이나 이벤트가 뜨던 시기였는데 '언어치료'에 대한 소개글이나 교구를 홍보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육아용품 이벤트는 글을 올리면 육아용품을 받는 시스템이었는데 나는 대부분 내 돈 주고 구입한 후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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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방문자수가 많을 때는 하루 300명 이상이지만(내 기준에서는 엄청 많은 수인데! 그런데 이 글을 보시고 방문했을 때 방문자수가 100 미만일 수도 있겠다.), 당시는 하루 50명 정도 방문해주셨던 것 같다. 지금 보면 문장 열도 맞지 않고 다소 촌스러운 부분이 많다. 그래도 하나둘씩 기록해가는 재미가 있었다. 아주 가끔 교구 홍보 문의를 주시기도 했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임신을 하고 입덧이 너무 심해서 아파트 복도조차 나가지 못할 지경까지 왔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시는 프리랜서가 아니라 계약직으로 아침 8시 반부터 5시 반까지 특수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던 터라 파트타임으로 일을 구하려고 계획해보아도 그야말로 '무리수'였다. 어느 원장이 나 같은 임산부를 채용해줄까? 이제 중기에 접어들었는데 배가 나오는 건 순식간에 있을만한 일이었다.


가지고 있는 콘텐츠는 블로그 하나였다. 또 글을 올렸다. 그동안 언어치료를 하면서 느낀 것들, 그리고 혹시 후배 치료사 분들께 도움이 될만한 주제가 있을지 찾아보고 떠오르는 대로 글을 썼다. 2017년도는 온라인으로 만난 분들과 인연을 만든 소중한 해였던 것 같다. 나의 글로 포천에 계신 선생님(지금은 서로 거리가 가까워져서 베프가 되었다지.), 수원에 계신 선생님, 아무튼 당시 일산에 살았던 내가 거리가 멀어서 가지 못하는 곳에 계시는 분들과 인연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정작 문제는 출산 이후였다. 감사하게도 임신을 했을 때 좋은 원장님께서 임산부인 나를 채용해주셔서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출산 이후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우선 몸이 허락해주지 않았고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본능에 의해 울고 웃고 자신만의 성장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필요했다. 아이가 잠이 들었을 때 점점 내 시간이 나기 시작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20180321_161656.jpg 50일 무렵의 온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틀을 점점 잡아가기 시작했다. 눈이 너무 아파서 출산 직전에 샀던 블루라이트 안경을 쓰고 글을 썼다. 사실 이 때도 글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언어치료 관련 이야기, 나의 산후우울증을 알아달라는 호소글이 대부분이었다. 감사하게도 이웃 수나 방문자 수가 늘어났다. 이런 수치적인 것보다는 나의 이야기에 공감해주시는 댓글이 참 고마웠다. 시간을 내서 누군가의 글에 댓글을 단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육아서에서도 엄마가 글을 쓰는 것은 산후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거나 갑자기 힘이 솟는 건 아니었지만 온라인 공간을 통해 소통이 가능하다는 게 여전히 신기했다. 그리고 나보다 선배 엄마들의 이야기를 읽고 아이를 바라볼 수 있었다. 상담심리사 엄마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관련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림책에 대해 온라인 안에서 공부를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다.



블로그 안에 글을 쓰다 보니 인스타그램 공간 안에서 육아 이야기뿐 아니라 그림책 소개글을 올리고 싶어 졌다. 인스타그램 또한 팔로워가 100을 넘기가 초반에는 쉽지 않았지만 언제부터인가 언어재활사들 사이에서 sns 안에 자신의 치료 자료나 좋은 교구를 공유하는 하나의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이렇게 내가 몸 담고 있는(?) 온라인 공간 안에서 글을 쓰고 나에게 맞는 공간이 어디인지 내 글을 어느 독자 분들이(이렇게 쓰니 정말 대단한 작가인 줄.) 좋아해 주시는지 나름 분석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가 두 돌이 되었을 무렵, 나의 꿈은 병원 정규직으로 입사하는 것이었다. 1급 시험에 합격도 했겠다, 이제 10년차겠다, 내가 이력서만 내면 당연히 서류합격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2급이었을 때 서류 합격조차 되지 않았던 곳에서 합격이 되는 했지만 이제 면접이 관건이었다. 40분 이상 단체로 면접을 본 곳도 있었다. 그만큼 경쟁률이 높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육아를 하면서 병원까지 출퇴근은 무리였다. 채용이 된 다한 들 아이 등원은 누가 할 것이며 이제 중년에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해 드리는 게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이 되는 친정엄마께 어떻게 부탁을 할 것이며 머리가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나의 불안감을 이야기하면 10명 중 8명은 "선생님은 블로그가 있잖아요!"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블로그요? 산후우울증 때문에 시작했죠... 나를 알아봐 달라고 막 외치는 것 같지 않아요?" 나는 10명 중 5분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2020년을 맞이하고 1월이 왔다. 난독증, 학령기 언어치료, 그림책. 이 세가지만 붙들고 올 상반기를 보내면 나의 전문성이 커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 19가 왔다. 금방 떠나갈 줄 알았던 바이러스는 웬 말. 오늘도 군부대에 많은 확진자를 전염시킬 만큼 센 녀석이었다.


이러한 상황들에 마주하면서 브랜딩 공부가 시작되었고 코로나로 인해 기관이 휴관을 할 때마다 나를 브랜딩 하는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사실 읽은 책 권수는 많지 않다. 그런데 <프릳츠에서 일합니다> 책을 읽으며, <오늘의 브랜드 내일의 브랜딩> 책을 읽으며, <기록의 쓸모> 책을 읽으면서 그때그때 나에게 필요한 메시지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영감'이라는 단어도 <기록의 쓸모> 이승희 작가님의 책 안에서 알게 된 단어다. 이만큼 좋은 단어를 왜 그동안 알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던 건, '내가 진부한, 재미없는, 지루한' 사람으로 비추어질까 봐. 그래서 점점 숨기려고 했던 것 같다. 글 쓰는 걸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면 주변의 반응(그렇다고 내 주변에 주변 인물들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닌데)은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 혹은 노래를 잘 부른다고 했을 때의 반응보다는 목소리 톤이나 반응이 훨씬 가라앉은 것 같았다. 약간 무미건조하다고 해야 맞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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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했다. 글을 올렸는데 조회수가 50,000을 넘다니! "오빠, 내 글 조회수가 이만큼 되었어." 신랑이 오히려 더 무미건조하게 이야기했다. "것 봐, 자기는 글이 잘 어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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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럴싸한 서재도 없고 그냥 전세살이를 하는 평범한 아이 엄마다. 아이 둘을 낳아야 아파트 청약이 더 쉽게 된다고 하는 말에 혹하다가도 현실이 두려워서 온이 하나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아이 엄마다. 큰 책꽂이를 놓으려고 해도 집에 마땅한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잠시 신랑을 한번 더 끌어들이자면 둘 다 정리하는 재주가 없다.


신혼 때는 그래도 책상은 있었는데 온이가 뱃속에 있던 시절 과감하게 처분했다. 다시는 미련을 갖게 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식탁은 어느덧 밤에는 책상이 되어 있었다. 신랑이 제발(앗, 한번 더 소환) 정리 좀 하라고, 밥 먹는 공간에서 책이 뭐냐고 이야기하는 식탁.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식탁 위에 책이 있다는 것에 대해 크게 뭐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마지막으로 소환할게요. 좋은 의미로). 이 공간이 나에게 유일한 독립된 시간이고 충전을 얻는 시간이라는 것을 몇 번의 말다툼 끝에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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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엄마로 살아갈 때에 가장 힘을 주는 충전소인 것 같다. 그리고 아이를 양육하면서 가장 아이의 옆자리를 채워주면서 나의 일을 할 수 있는 재료이기도 하다.




얼마 전 집 근처 종합병원에서 정규직 채용공고가 났다. 이전 같았으면 악착같이 서류를 준비하고 NCS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준비를 했을 텐데. 공고를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무하게 되면 이렇게 글 쓰기나 브랜딩 작업은 점점 멀어지지 않을까?'.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Personal branding 전문가분의 workbook(뭐해먹고살지, 김인숙 저)을 보니 가장 앞 장이 <지금 나의 우선순위>였다. 대부분 브랜드를 이야기하는 책에서 먼저 묻는 질문 또한 '우선순위'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우선순위는 온이가 24개월까지는 '일> 육아' 였는데, 요즘 들어 '일 <육아'가 되어가고 있다. 남들은 24개월 이후로 우선순위가 조금씩 바뀌어가는데. 나는 왜 반대로 되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나의 우선순위인 온이를 지켜가면서 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 나에게는 '글쓰기'가 딱이지 않을까. 물론 글쓰기를 나를 드러내거나 상품화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언젠가 이전 직장 상사분께서 기관 감사를 앞두고 해 주시던 말씀이 있다. '나의 깨끗함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이 문서, 서류라고.' 어떻게 생각하면 글은 그런 존재인 것 같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이야기를 그대로 흡수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 내가 적은 것들이 결과물이 되어 다시 상기시키고 계속 삶을 변화시켜가는 것.


사람들에게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때로는 위로가 되지만 그위로는 나를 100% 만족시킬 수가 없다. 하지만 글쓰기를 통해 때로는 나를 위로하고 때로는 나에게 힘을 주고 때로는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얻는다. 그리고 엄마로서 살아가는 나도, 식탁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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